침묵하는 바이오텍, 무너지는 신뢰

2025-08-28

바이오 산업을 취재할 때마다 드는 생각이 있다. 이 분야는 '확률 1%의 마라톤'이라는 점이다. 신약 하나 개발하려면 수년, 길게는 10년 이상이 걸린다. 개발 도중 후보물질이 탈락할 확률은 99%. 버티려면 결국 돈이 필요하다. 마라톤을 완주하려면 '자금'이 숨통이다.

하지만 비상장 바이오 벤처에 자금줄을 대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실적은 불확실하고, 기술은 말뿐인 경우도 많다. 그래서 많은 기업들이 기술특례상장이라는 우회로를 통해 주식시장에 진입한다. 일단 상장만 하면 투자자와의 접점도 생기고 자금 확보도 수월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바로 그다음이다. 상장은 했지만 투자자와의 '신뢰'에는 무관심하거나 무책임한 기업이 수두룩하다.

최근 한 바이오 벤처 대표는, 해외 투자자의 선급금 규모를 묻는 질문에 "계약 체결 자체가 대단한 일"이라고만 말했다. 구체적인 내용은 없었다. 질문을 불쾌하게 여긴 듯한 태도도 감지됐다.

또 다른 기업은 임상시험이 계획보다 늦어지고 있었지만 아무런 공지조차 하지 않았다. 관련 질의에 "진행 중으로 안다"는 답변이 전부였다. 시간이 지나도 후속 설명은 없었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이 회사가 정말 임상을 하고 있는지조차 알 수 없는 상황이다.

물론 모든 것을 공개하긴 어렵다. 오해를 살 수도 있고, 사업적 판단이 필요한 시점도 있다. 하지만 바이오 산업은 특성상 결과보다 과정이 더 중요하다. 신뢰는 정보를 통해 쌓인다. 말하지 않으면, 시장은 외면한다.

해외 바이오텍은 다르다.

임상 실패, 연구 중단 같은 소식조차 숨기지 않는다. 분기마다 IR 자료를 공개하고, 파이프라인 진척 상황과 향후 계획을 설명한다. '악재'를 전략의 일부로 만드는 정교함이 있다.

하지만 국내 바이오텍은 여전히 '침묵이 상책'이라는 착각에 빠져 있다. 그 결과는 신뢰 상실, 주가 급락, 자금 조달 실패다.

상장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회사는 상장과 동시에 시장과 소통하겠다는 책임을 진다. 주주는 단순한 돈줄이 아니다. 회사의 공동 소유자이며, 성장의 동반자다.

말하지 않는 기업을 시장은 믿지 않는다. 바이오 산업은 긴 호흡의 산업이다. 그만큼 투자자와의 신뢰는 생존의 기반이다.

성공하는 바이오텍은 묻지 않아도 먼저 설명한다. 이제 물을 차례다. "당신의 회사는 시장과 대화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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