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내년 1월 열리는 세계 최대 전자·정보기술(IT) 전시회인 ‘CES 2025’에 방문한다.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을 앞두고 격변하는 시장 환경과 글로벌 기업들의 첨단기술을 확인하겠다는 목표다.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구자은 LS회장도 미국행을 확정 지으면서 미래 전략을 모색하려는 국내 기업들의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29일 완성차업계에 따르면 정 회장은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개최되는 CES 2025을 찾아 글로벌 기업들의 모빌리티 혁신 기술을 확인한다. 장재훈 현대자동차 부회장 내정자, 호세 무뇨스 현대자동차 최고경영자(CEO) 내정자도 동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 회장이 CES를 방문하는 배경에는 미국 시장의 불확실성이 자리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내년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 따른 전기차 보조금 폐지, 보편관세 등을 공언하는 트럼프 행정부 2기 속에서 글로벌 경영을 해야 한다. 미국 공장에서의 하이브리드차량 생산을 늘리는 등 현지 전략 수정이 불가피해진 만큼 정 회장이 직접 나서 상황을 파악하는 셈이다. 정 회장은 전시장을 방문한 뒤 미국 내 현대차그룹의 공장을 찾아 현장 점검에도 나서는 것으로 전해졌다.
지금까지 정 회장은 급변하는 미국 시장에 대응하기 위해 접점을 늘리는 방식으로 공을 들여왔다. 세라 허커비 샌더스 주지사와의 최근 회동이 대표적이다. 샌더스 주지사는 도널드 트럼프 당선인의 최측근으로 트럼프 1기 때인 2017년부터 2019년까지 백악관 대변인으로 활동한 바 있다. 연말 사장단 인사에서는 미국 외교 관료 출신인 성 김 고문을 그룹의 싱크탱크 수장으로 임명했다. 부시 행정부부터 오바마·트럼프·바이든 정부에 이르기까지 핵심 요직을 맡은 인물인 만큼 미국 내 리스크에 대응하는 목적으로 읽힌다.
글로벌 완성차들의 협력 강화도 CES 참석의 주요 목표다. 내년 CES에는 메르세데스벤츠·폭스바겐·BMW·혼다·도요타·미쓰비시 등 완성차 글로벌 기업들이 총집결한다. 현대차는 9월 제너럴모터스(GM)와 기술 개발부터 생산까지 포괄적인 협력을 약속하는 양해각서를 체결한 데 이어 일본 도요타자동차와 인공지능(AI) 등 분야에서 손잡으며 파트너십을 강화한 바 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도 SK하이닉스와 SK텔레콤이 CES에 참여하는 만큼 미국에 머물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서는 젠슨 황 엔비디아 설립자 겸 CEO가 기조연설자로 나서는 만큼 최 회장과의 만남을 주목하고 있다. 최 회장은 4월 미국 엔비디아 본사를 방문해 황 CEO와 면담을 했고 4일에는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SK AI 서밋’ 기조연설에서 영상 대담을 나눴다. 두 사람이 다시 만난다면 고대역폭메모리(HBM)4 공급 등에 대한 추가적 논의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SK하이닉스의 미국 낸드플래시 자회사인 솔리다임을 방문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솔리다임은 2021년 SK하이닉스가 미국 인텔의 낸드플래시 사업부를 90억 달러에 인수해 설립한 회사다. 최 회장은 9월 솔리다임 이사회 의장을 맡으며 직접 낸드 사업을 이끌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SK는 CES 기간 중 최 회장의 구체적 일정을 현재 조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구자은 LS그룹 회장도 명노현 ㈜LS 대표이사 부회장은 물론 LS전선·LS일렉트릭 등 주요 계열사 임원들과 함께 내년 CES에 참가한다. 구 회장은 2018년부터 꾸준히 CES를 방문하며 AI, 모빌리티, 가상현실(VR) 등 기술 동향 변화를 꾸준히 추적해 왔다. 그는 임원 외에도 계열사 일선에서 우수 신사업을 이끌고 있는 ‘LS퓨쳐리스트’ 10여 명을 대동할 계획이다. 구 회장은 취임 직후인 2022년부터 LS퓨처리스트를 꾸준히 대동하며 신사업을 첨단기술의 흐름을 파악하도록 지원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