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인의 하버드 대학교” [김태훈의 의미 또는 재미]

2024-11-06

미국 수도 워싱턴에 있는 하워드(Howard) 대학교는 1867년 개교했다. 미국 사회가 흑인 노예 제도의 존치 여부를 놓고서 둘로 갈라져 싸운 남북전쟁(1861∼1865)이 끝난 지 2년 뒤의 일이다. 국립대학이 아닌 사학인데도 미국 연방의회의 설립 인가를 거친 끝에 만들어졌다. 지금도 연방정부로부터 학교 운영에 필요한 재정 일부를 지원받고 있다. 남북전쟁에서 노예제 폐지를 주장하는 북부가 노예제 존치를 원하는 남부를 이긴 데 따른 결과로 탄생한 것이 바로 하워드대이기 때문일 것이다. 애초 하워드대의 설립 목표 자체가 흑인 지도자의 육성이었다.

처음에는 흑인 성직자 양성을 염두에 두고 신학 교육에 비중을 뒀던 하워드대는 이후 인문학, 자연과학, 사회과학, 의학, 약학, 공학, 법학 등 다양한 전공을 개설하며 명실상부한 종합대학교로 성장했다. 재학생도 흑인 일변도에서 벗어나 제2차 세계대전 이후로는 백인들이 대학원 과정을 중심으로 하워드대 입학의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2016년 5월 비록 하워드대 졸업생은 아니지만 미국 최초의 흑인 국가원수인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이 학교를 찾아 졸업생들을 상대로 연설했다. 오바마는 장차 미국 사회를 이끌 흑인 지도자가 될 이들에게 “인종 간 격차 해소의 옹호자가 되어 달라”며 미래의 도전에 대비할 것을 당부했다.

하워드대의 역사는 곧 미국 내 흑인 인권 신장의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67년 미국 사법사상 최초의 흑인 연방대법관이 된 서굿 마셜(1908∼1993)은 하워드대가 배출한 가장 유명한 졸업생이다. 그는 1991년까지 24년간 대법관으로 재직하며 흑인 등 소수자의 권익을 옹호하는 판결을 내렸다. 1993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소설가 토니 모리슨(1931∼2019)도 이 학교 동문이다. 무엇보다 미국 최초의 여성 부통령이자 아시아계 흑인 부통령인 카멀라 해리스(60)를 빼놓을 수 없다. 캘리포니아주(州)가 고향인 해리스는 1980년대 하워드대를 졸업하고 로스쿨에 진학해 검사가 되는 것으로 공직 경력을 쌓기 시작했다.

5일 미국에서 제47대 대통령을 뽑기 위한 선거가 실시된 가운데 민주당 대선 후보인 해리스가 모교인 하워드대에서 개표 방송을 지켜보기로 해 눈길을 끈다. 미 언론은 하워드대를 “흑인의 하버드 대학교”라고 소개하며 “해리스가 인생의 중요한 순간마다 찾은 곳”으로 소개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당선되면 흑인 중에선 오바마에 이은 2번째 미국 대통령, 흑인 여성으로는 최초의 대통령이 된다는 점을 부각하려는 의도라고 분석했다. 해리스와 공화당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워낙 박빙의 승부를 펼친 탓에 대선 결과를 속단하긴 이르다. 누가 백악관의 주인이 되든 한·미 관계를 뒤흔드는 일만을 없기를 고대할 뿐이다.

김태훈 논설위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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