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대중교통은 깨끗하고 지하철에서 데이터도 잘 연결되는 게 신기했지만 별도의 교통카드를 구매해야 하는 게 너무 번거롭다”
한국 음식에 빠져 일 년에 한 번은 꼭 한국을 찾는다는 영국인 애런(29)은 왜 서울에서는 도쿄나 싱가포르처럼 쓰던 신용카드를 교통카드로 버스나 지하철을 왜 못 타는지 늘 궁금했다.
한국은 편리한 대중교통 인프라를 갖춘 나라로 꼽히지만, 여전히 오픈루프 결제가 도입되지 않아 외국인 관광객에게는 불편이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오픈루프결제는 신용·체크카드 등 기존 결제 수단을 활용해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방식이다.
29일 업계에 현재 서울 지하철과 버스는 교통카드(티머니, 캐시비 등)나 후불교통카드가 내장된 신용·체크카드로만 이용할 수 있다. 해외에서 발급받은 카드는 사용이 불가능하다. 외국인 관광객은 티머니 등의 교통카드를 별도로 구매하거나 1회용 승차권을 이용해야 하는데, 이마저도 현금 결제만 가능해 불편함을 가중시킨다는 지적이다.
반면 뉴욕, 런던, 싱가포르, 도쿄 등 주요 관광 도시들은 이미 오픈루프 결제 시스템을 도입해 해외 이용자들이 별도의 카드발급 없이 비자·마스터 등 글로벌 신용카드로 교통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한국에서 발급받은 카드로는 해외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다. 마스터카드는 2022년 10월, 비자는 2023년 4월 이후 출시되는 모든 카드에 ‘콤비카드’(컨택·컨택리스 기능이 모두 탑재된 카드) 적용을 의무화했다. 이에 따라 최근 국내에서 출시한 카드를 발급받은 소비자는 하나의 카드로 국내외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다.
한국은 글로벌 국가 중에서도 선제적으로 카드를 활용해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시스템을 도입했다. 하지만 오픈루프 도입이 지연되면서 ‘교통 결제 갈라파고스’로 전락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국내 오픈루프 결제 도입이 지연되는 이유는 교통정산사업자(티머니, 이동의즐거움 등)와 카드사 간의 이해관계 때문이다.
현재 후불교통카드 결제 시스템에서 교통정산사업자는 운송업자(지하철·버스 운영사)와 카드사 사이에서 ‘중개자’ 역할을 한다. 교통정산사업자는 건별 승인이 아닌 월 단위로 거래 내역을 정산하고, 이에 대한 대가로 카드사로부터 교통수수료를 받는다. 동시에 운송업자를 대신해 카드사에 가맹점 수수료를 지급하는 방식이다.
문제는 교통수수료율이 가맹점 수수료율보다 높아, 카드사 입장에서는 ‘역마진’이 발생하는 구조라는 점이다. 오픈루프가 도입되면 카드사가 교통정산사업자를 거치지 않고 직접 결제 시스템을 운영할 수 있게 된다. 오픈루프의 도입은 기존 교통정산사업자들의 수익 구조와 직결되기 때문에 각자의 이해관계에 따라 협의가 지연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오픈루프가 도입되면 해외 결제 카드뿐 아니라 EMV(국제 표준 비접촉 결제) 방식이 확산돼 애플페이 교통카드 사용도 가능해질 것”이라며 “관광객뿐 아니라 국내 소비자들에게도 혜택이 클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백호 서울교통공사 사장은 “편리한 대중교통은 정부가 내건 외국인 관광객 2000만 명 달성에 필수 요건”이라며 “오픈 루프가 도입되면 해외에서 발급된 실물 카드뿐 아니라 애플페이 등 간편 결제로도 승차할 수 있어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위해 오픈 루프 도입 논의가 조속히 시작돼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