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침마다 치과 문을 열면 제일 먼저 마주하는 것은 텅 빈 대기실이다. 의자와 유니트 체어는 늘 그 자리에 있지만, 새벽의 정적 속에서 바라보면 낯설고도 묘한 고요함이 감돈다. 그때 나는 잠시 멈춘 듯한 시간을 즐긴다. 책을 펼치거나 음악을 틀어놓거나, 혹은 아무 생각 없이 멍하니 앉아 있기도 한다.
마음이 무거울 때면 네덜란드 거리에서 노래하던 마르틴 후르켄스의 You raise me up을 찾아 듣는다. 꾸밈없이 성실하게 불러내는 그의 목소리는 지쳐 있는 영혼을 다독여 준다. “When I am down and, oh my soul, so weary…”라는 가사가 흘러나올 때면, 마치 내 지난날과 지금의 삶을 함께 노래하는 듯하다.
책상 위의 화분들은 묵묵히 곁을 지켜준다. 손끝으로 잎을 만지면 물이 필요한지 알 수 있다. 내 방의 녹보수는 몇 해째 노란 꽃을 피우고 있다. 환자들은 신기하다며 비결을 묻지만, 사실 나는 그저 바라볼 뿐이다. 햇살과 흙과 물이 제 몫을 다했을 뿐, 나는 다만 곁에 있어 주었을 뿐이다. 환자와의 관계도 이와 다르지 않다. 정성껏 살피되, 지나친 욕심을 부리지 않고 지켜봐 주는 것, 그것이 의사의 몫일 것이다.
요즘 후배들이 종종 묻는다. “선배님, 언제 은퇴하실 건가요?” 그들의 질문 속에는, 자신들의 미래를 비춰보고 싶은 불안과 호기심이 함께 담겨 있다. 나는 늘 웃으며 대답한다.
“건강이 허락할 때까지.
나를 찾아오는 환자가 단 한 사람이라도 있을 때까지.
그리고 하루 수입에 만 원의 흑자라도 남을 때까지.”
그러고는 농담처럼 덧붙인다. “집에서 세끼 밥 먹고 있으면 아내가 날 미워할 테니까.”
1991년 4월 27일, 이 자리에서 첫 진료를 시작했다. 다섯 명의 환자, 첫날 수입은 4만 7천 원이었다. 그 돈을 주머니에 넣고 집으로 돌아가던 발걸음은 세상을 다 가진 듯 가벼웠다. 하지만 세월은 치과라는 공간을 무겁게 바꾸어 놓았다. 보험 제도의 변화, 늘어가는 행정 업무, 환자와의 갈등, 직원 문제까지. 치과의사는 환자의 아픔을 보듬는 손길이자 동시에 경영의 무게를 짊어지는 어깨여야 했다. 그 무게는 해가 갈수록 더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마음에 가장 선명하게 남은 순간들은 ‘버팀목이 되어주었던 시간들’이다. 앞니를 잃고 울던 아이가 환히 웃음을 되찾았을 때, 새 틀니를 끼우고 “스무 살은 젊어진 것 같다”며 환하게 웃던 할머니와 농담을 주고받았을 때, 나는 내가 더 많이 받은 사람임을 깨달았다. 환자가 내게 준 웃음과 눈물, 그리고 그 순간의 진심이 내 삶의 의미를 다시 일깨워 주었다.
인생은 한 권의 책이라 한다. 여행은 그 책을 읽는 행위라 했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 어느 장쯤을 넘기고 있는 것일까. 시작은 정해져 있지만 끝은 알 수 없는 책, 하루하루의 문장은 이제 더욱 귀하다.
마지막 시간이 다가온다면, 창밖에는 벚꽃이 바람에 흩날리고, 베르디의 나부코 속 ‘노예들의 합창’을 메트로폴리탄 합창단의 목소리로 듣고 싶다. 누구도 눈물 흘리지 말라 부탁하며, 평온히 눈을 감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가라, 내 마음이여. 금빛 날개를 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