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안 처리 지연에 ‘하원 패싱’ 결정
좌파 야당 반발…정부 불신임안 제출
프랑스 정부가 3일(현지시간) 하원 승인 없이 2025년도 예산을 뒤늦게 처리하기로 했다. 이에 반발한 야당이 곧장 정부 불신임안을 제출하면서 프랑스 정부는 또 한 번 붕괴 위기에 놓였다.
로이터통신과 르몽드에 따르면 이날 프랑수아 바이루 총리는 하원 본회의장에서 열린 2025년도 예산안 심사에 출석해 “헌법 조항을 발동해 정부가 책임을 지고 예산을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프랑스는 헌법 제49조3항(정부가 긴급한 상황이라고 판단하면 국무회의 승인을 받은 법안을 총리 책임으로 의회 투표 없이 통과시킬 수 있다)에 따라 이를 허용하고 있다. 앞서 상하원 대표자들로 꾸려진 합동위원회도 이번 예산안에 합의한 만큼 하원에서 별도로 표결하지 않아도 된다는 게 바이루 총리 입장이다.
바이루 총리는 “어떤 나라도 예산 없이 살 수 없다. 2월이 됐는데도 프랑스에 예산이 없는 건 5공화국 역사상 처음”이라며 예산 처리가 시급한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바이루 정부는 지난해 국내총생산(GDP)의 6%를 기록한 재정 적자를 올해 5.4%로 낮추기 위해 공공 지출을 대폭 줄이고, 대기업·부자 증세 등을 통해 세수를 마련하는 내용의 예산안을 마련했다.
하원 승인 없이 예산안이 처리되자 극좌 굴복하지않는프랑스(LFI)는 즉각 정부 불신임안을 제출했다. 교육·건강·생태 분야 예산을 대폭 삭감했다는 이유도 들었다. LFI는 엑스(옛 트위터)에 “25년 만에 가장 긴축적인 예산안”이라며 “이 불법적인 정부는 불신임을 받아야 한다”고 적었다. 하원은 오는 5일 정부 불신임안을 표결할 예정이다.
최근 프랑스에서는 예산안 처리를 둘러싼 여야 갈등이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해 12월에도 2025년도 예산안에 대한 의견 차를 좁히지 못하면서 미셸 바르니에 내각 불신임안이 통과됐다. 이에 따라 예산안 처리도 미뤄져왔다.
다만 이번 불신임안이 하원을 통과할 가능성은 낮다. LFI가 소속된 좌파연합 신인민전선(NFP) 4개 정당 중 온건 성향인 사회당의 지지를 얻지 못하면서다. 사회당은 바르니에 내각 출범 이후 정부에 협조적인 태도를 보여왔고, 이번 불신임안 표결에 불참하기로 당론을 정했다. 66석을 가진 사회당이 빠진 상태에서는 극우 국민연합(RN)이 합세한다고 해도 정족수(289표·전체 577석 중 과반)를 채울 수 없는 상황이다. 정부 불신임안이 하원에서 부결되면 바이루 정부 예산안은 상원에서 승인 절차를 밟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