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음식 하면 딤섬부터 떠오른다. 홍콩에서 보니 웬걸, 훠궈(火鍋) 판이 더 컸다. 홍콩의 밤거리를 훤히 밝힌 훠궈집 간판을 궁금해 하다가 뜻밖의 통계와 맞닥뜨렸다. 2024년 현재 ‘오픈라이스(홍콩 최대 식당 정보 앱)’에 등록된 딤섬 전문점은 676곳인데, 훠궈 전문 레스토랑이 1000개가 훌쩍 넘었다. 9월 19일 홍콩백끼는 ‘홍콩은 딤섬의 도시’라 선언하고 출발했었다. 오늘 수정한다. 홍콩은 훠궈의 도시다.
훠궈를 향한 홍콩의 이상 열기는 홍콩백끼에 돌발변수 같은 것이었다. 하고한 날 푹푹 찌는 홍콩에서 맵고 뜨거운 훠궈를 씩씩대며 먹어치우는 식성이라니. 홍콩에서는 ‘얼죽아(얼어 죽어도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아니라 ‘더죽훠(더워 죽어도 훠궈)’란 말인가. 애초의 취재 계획을 엎고 훠궈 판에 뛰어들었다.
아시다시피 훠궈는 홍콩 음식이 아니다. 홍콩 음식의 뿌리라는 광둥 요리도 아니다. 훠궈는 중국 서쪽 끄트머리 쓰촨(川菜)에서 출발했다. 쓰촨은『삼국지』에서 조조에게 중원을 빼앗긴 유비가 숨어들었던 중국의 서쪽 변방이다. 중국 최남단의 섬 홍콩과 하등 관계가 없다. 그렇다고 연결고리가 없는 건 아니다. 쓰촨성은 덥고 습한 내륙 산간지역이다. 예부터 이 지역에서는 매운 음식으로 모진 기후를 버텼다. 그 전통이 훠궈에서 꽃을 피웠다. 홍콩도 덥고 습하다. ‘맵부심’으로 똘똘 뭉친 우리네 대구도 덥고 습하다. 훠궈로드를 잇는 매개는 의외로 이열치열(以熱治熱)의 정신이다.
중국 본토를 비롯한 아시아 여러 나라가 훠궈의 알싸한 맛에 중독됐고 열광한다. 하여 지역마다 훠궈가 조금씩 다르다. 쓰촨식 훠궈는 마라(麻辣)·고추·산초를 아낌없이 때려넣어 몹시 맵다. 처음 먹어보면 따귀를 맞은 것처럼 정신이 번쩍 든다. 대만의 훠궈는 순한 맛이 대세다. 버터·과일·한약재 등을 넣어 맛이 덜 자극적이고 고소하다. 내륙지역 쓰촨의 훠궈는 육류가 주재료지만, 섬나라 대만은 해산물을 십분 활용한다.
홍콩의 훠궈는 한마디로 자유분방하다. 동서양의 음식 문화가 뒤엉킨 도시답다. 쓰촨식 마라맛 훠궈는 물론이고, 동남아시아 땅콩 소스를 가미한 훠궈에 싱가포르에서 건너온 글로벌 훠궈 브랜드까지 다국적 훠궈가 각축 중이다. 종류는 셀 수 있는 영역을 넘어선다. 홍콩 훠궈는 토핑만 100가지라고 하는데, 육수도 수십 가지에 이른다. 개중에 X냄새 나는 열대 과일 두리안을 넣은 훠궈도 있고, 피부 미용에 좋다는 훠궈도 있다. 당신이 무엇을 상상하든, 홍콩 훠궈는 그 너머에 있다. 참, 홍콩에서는 훠궈를 훠궈라 부르지 않는다. ‘포워’라고 한다. 영어로는 ‘Hot Pot’이다.
홍콩 사람은 훠궈가 몸뿐 아니라 마음도 덥히는 음식이라고 말한다. 원탁에 동그랗게 모여 앉아 뜨거운 냄비(火鍋) 속 음식을 나눠 먹다 보면 없던 정도 들게 마련일 테다. 이번 주 홍콩백끼의 주제는 ‘홍콩 훠궈 열전’이다. 당부의 한 말씀. 훠궈는 꼭 여럿이 같이 드시길 권한다. 그래야 더 맛있고, 그래야 더 다양한 먹거리를 맛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