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자 마이클 샌델(72) 미국 하버드대 정치학과 교수가 저명한 사상가에게 수여되는 제9회 베르그루엔 철학 및 문화상(이하 베르그루엔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비영리 싱크탱크인 베르그루엔 연구소는 14일(현지시간) “샌델이 사회와 공적 담론 속에서 도덕, 존엄, 공공선의 의미를 탐구한 영향력과 범위는 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라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독일계 미국인 투자자이자 억만장자 자선사업가인 니콜라스 베르그루엔(64)이 2016년 제정한 베르그루엔상은 ‘철학계의 노벨상’으로 불린다. 베르그루엔은 지난해 5월 파이낸셜타임스 인터뷰에서 “우리는 철학적 사상이 물리학이나 화학만큼이나 중요하다는 점을 인정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상금 규모도 노벨상(1100만 스웨덴 크로나·약 16억 4000만원)과 맞먹는 100만 달러(약 14억 3000만원)다.
1953년 미국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 태어난 샌델은 1975년 브랜다이스대를 졸업한 뒤 로즈 장학생으로 선발돼 1980년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정치철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당시 그의 지도교수가 초대 베르그루엔상 수상자인 캐나다 출신 철학자 찰스 테일러다. 샌델은 같은해 27세의 나이로 최연소 하버드대 교수에 임용됐다.
샌델의 업적은 1982년 출간된『자유주의와 정의의 한계』를 통해 존 롤스의 『정의론』(1971)을 비판적 시각으로 다루는 데서 출발한다. 개인의 이해 관계를 배제해야만 정의의 원칙을 세울 수 있다는 롤스와 달리 샌델은 개인이 속한 역사와 공동체적 맥락 또한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기서 더 나아간 성과가 학계를 넘어 일반 독자들에게도 큰 반향을 일으킨『정의란 무엇인가』(2009)다. 국내에서도 ‘정의’ 열풍을 일으킨 이 책은 전 세계적으로 200만부 이상 판매됐다. 그는 아리스토텔레스, 제레미 벤담, 임마누엘 칸트, 존 스튜어트 밀 등 유명한 사상가의 이론과 철학들이 실생활에서 나타나고 적용되는 사례를 살폈다.
베르그루엔 연구소는 “이 책을 통해 도덕적 성찰이 담긴 공적 논의를 제안했다”며 “오늘날 도덕적·정치적 논쟁이 공허하고 종종 적대적으로 흐르는 현실을 고려할 때 절실히 요구되는 사유의 틀”이라고 평가했다.
샌델은 이후 저서인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2012)에선 모든 것을 돈으로 사고 팔 수 있는 세상이 된다면 시장이 원래 지향해야 할 사회적·도덕적 가치가 훼손될수 있다고 경고했다. 최근 저서 『공정하다는 착각』(2020)을 통해선 능력주의가 재능과 노력을 보상하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엘리트층에 대한 분노를 초래한다고 비판했다.
샌델의 저서들은 30개국 이상의 언어로 번역됐으며, 그의 하버드대 수업 ‘정의’는 온라인과 TV를 통해 무료로 공개돼 전세계에서 4000만명 이상이 시청했다.

올해 심사위원장을 맡은 홍콩 출신 철학자인 육 후이 네덜란드 로테르담 에라스무스대 철학과 교수는 “샌델의 연구는 전 세계 지적 지형에 깊은 발자취를 남겼다”며 “그의 신자유주의, 능력주의 이데올로기, 포퓰리즘에 대한 비판은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가장 시급한 질문들에 답하고 있다”는 심사평을 내놨다.
상을 제정한 베르그루엔도 “샌델의 방대한 연구 업적은 최고 수준의 지적 사고와 전세계적 영향력을 지닌 사상가에게 수여되는 베르그루엔상 수상자로 인정받기에 충분하다”며 “그가 보여준 ‘좋은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통찰과 이성적 사고를 공적 담론 속에 불어넣은 작업은 이 시대에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고 말했다. 시상식은 내년 봄 매세추세츠주 케임브리지에서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