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피터 하윗(79) 미국 브라운대 명예교수가 한국이 경제 혁신을 계속하려면 대기업들이 이를 가로막지 못하게 하는 강력한 반독점 정책을 실시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하윗 교수는 13일(현지 시간) 노벨경제학상 수상 발표 직후 브라운대가 연 온라인 기자회견에서 한국 경제가 혁신과 성장을 지속할 수 있게 하는 정책 환경에 관한 취재진 질문에 “선도 기업들이 혁신을 계속할 유인을 가질 수 있도록 독점을 규제하고 경쟁적 시장 환경을 갖추는 게 중요하다”고 이 같이 답했다. 하윗 교수는 “만약 어떤 산업에서 기존의 선도 기업들이 경쟁에서 벗어나는 것보다 이를 억누르는 것이 더 쉽다고 판단한다면 그들은 당연히 후자를 선택할 것”이람 “혁신 유인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반독점 정책이 필수”라고 강조했다.
하윗 교수는 캐나다 태생으로 미 샌타바버라대와 브라운대 등을 거치며 거시경제학을 연구한 학자다. 1987년 매사추세츠공과대(MIT) 방문교수 시절 이번에 함께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필리프 아기옹(69) 콜레주드프랑스 경제학과 교수와 의기투합해 1990년대 초부터 ‘창조적 파괴’ 이론으로 잘 알려진 오스트리아계 미국 경제학자 조지프 슘페터의 ‘내생적 성장 이론’을 계승 발전시켰다. 특히 창조적 파괴 개념을 현대 수리경제 모형으로 부활시켜 기업 간 경쟁과 혁신이 장기 성장의 원동력임을 이론적으로 증명하는 데 성공했다. 스웨덴 왕립과학원은 이 공로를 인정해 이날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로 하윗 교수를 비롯해 조엘 모키어(79), 아기옹 등 3명을 선정했다. 하윗 교수는 하준경 대통령실 경제성장수석의 브라운대 박사학위를 지도한 인연도 하다.

하윗 교수는 “이번에 상을 받은 아이디어는 슘페터가 75년 이상 전에 처음 제시한 오래된 이론”이라며 “기술 발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혁신의 물결이 인류에 큰 혜택을 주는 동시에 기존 기술·자본에 의존하던 사람들에게 막대한 손실을 가져온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연구의 핵심은 새로운 기술은 기존 질서를 흔들려는 ‘외부의 파괴적 혁신가들’에 의해 도입된다는 점”이라며 “그러나 그들이 성공하면 자신들이 곧 새로운 질서가 돼 이후의 혁신을 막는 경향을 보이는데 반독점 정책, 경쟁정책, 무역정책 등 이를 막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하윗 교수는 또 기술 발전이 경제 성장을 이끌기 위해서는 대학 연구, 기업의 연구 개발(R&D), 정부 지원이 반드시 함께 해야 한다며 “농업혁명, 2차 산업혁명, 정보기술혁명 등 역사적 기술 도약의 순간마다 정부·대학·기업 간 협력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하윗 교수는 자유무역체제를 저해하는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정책에도 비판적인 입장을 내비쳤다. 하윗 교수는 “관세가 올라가 무역이 제한될수록 시장 크기가 줄어들기 때문에 혁신을 할 동기가 줄어든다”며 “개방적인 무역 정책을 유지하고 기존 산업 선도 기업을 너무 보호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고 덧붙였했다.

최근 인공지능(AI) 투자 열풍과 관련해서는 1990년대 말∼2000년 초반 이른바 ‘닷컴 버블’ 시대와 유사하다고 고집었다. 하윗 교수는 “우리는 현재 1990년대 통신 부문 붐과 유사한 성격의 투자 붐의 한가운데 있다'며 “수많은 기술 붐은 결국 붕괴로 끝났다”고 말했다. 하윗 교수는 그러면서도 “AI가 전기, 증기기관, 정보혁명처럼 인류의 또 다른 ‘범용 기술 혁명’이 될 것”이라며 “AI의 승자가 누가 될지는 아무도 모르고 그 창조적 파괴 효과가 어떻게 될지도 모르지만 엄청난 기술 잠재력 만큼 일자리 파괴 효과도 크다”며 “너무 많은 '패자(loser)’를 만들어내면 기술 진보 자체가 정치적으로 저지될 위험이 있으므로 사회 전체의 이익을 위한 규제가 필요하다”며 “기술이 노동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유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하윗 교수는 노벨경제학상 수상 소식을 받았을 당시 “자고 있었다”며 결과를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는 뒷얘기도 선보였다. 하윗 교수는 “아내의 전화로 스웨덴에서 온 전화를 받았는데 처음엔 장난 전화인 줄 알았다”며 “하지만 곧 진짜라는 사실을 알고 충격과 혼란에 빠졌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