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지는 농산 부산물, 순환자원으로 활용 ‘이구동성’

2024-10-21

“이게 뭐 더러운 것도 아니고 지금 막 수확한 양배추에서 뗀 겉잎들이거든요. 이 많은 걸 다 폐기물로 취급해서 버려야 하니 너무 안타깝죠.”

재활용할 수 있는 농산 부산물이 폐기물로 분류되지 않도록 법령을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들 대부분이 퇴비는 물론 식품 원료로도 사용할 수 있는 것인 만큼 관련 규제를 완화해 자원 순환율을 높이고 산지로 집중되는 부산물 처리 부담을 덜어줘야 한다는 지적이다.

현행 ‘폐기물관리법’은 농산물을 전처리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잎·줄기·껍질 등 부산물을 식물성 잔재물로 구분해 폐기물로 규정하고 있다. 특히 하루 300㎏ 이상을 배출하면 사업장폐기물로 분류돼 엄격한 폐기 요건을 준수해야 한다. 아무리 깨끗한 부산물이라도 그대로 밭에 퇴비로 주는 등의 행위는 금지된다.

그러나 산지에선 이치에 맞지 않는 규제라고 입을 모은다. 양배추나 배추 겉잎, 브로콜리 밑동 등 주변 밭에서 충분히 거름으로 쓸 수 있는 것들도 규정상 모두 폐기물로 처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농가 단위에서 작업하면 자체적으로 활용돼 쓰레기로 배출되지 않을 부산물이, 농가 편익과 효율성 증대를 위해 거점 사업장에 모아 작업하면 사업장폐기물이 돼 쓰레기로 버려야 하는 모순이 발생해서다.

김진복 강원 평창 대화농협 조합장은 “감자·양배추·고추·단호박 등등 다 밭에서 가져온 농산물인데 거기서 나온 잎과 줄기를 다시 밭에 뿌리지 못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며 “소비자가 바로 먹기에 좋은 것만 작업해서 보내려다보니 발생하는 부산물이고, 여기에 약품 처리를 하는 것도 아닌데 폐기물 딱지를 붙이는 건 적절하지 않다”고 꼬집었다.

농산 부산물 폐기 비용 부담이 점점 커지고 있는 것도 문제다. 기존에 소비지 유통업체가 담당하던 농산물 전처리와 저장 역할이 점차 산지 쪽으로 이동하고 있어서다. 깔끔하게 소포장된 농산물을 바로 공급받길 원하는 유통업체가 늘면서 농산물산지유통센터(APC) 등에서 감당해야 할 농산 부산물의 양이 갈수록 많아지고 있다.

곽민준 대화농협 유통팀장은 “최근엔 하루 평균 4t 정도, 작업량이 많을 땐 8t이 넘는다”며 “한해 동안 폐기물을 관리하고 처리하는 비용만 1억∼2억원”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농가 수취가를 높이고자 소포장에 주력하고 적극적으로 판로를 개척할수록 폐기물 처리 비용이 덩달아 느는 구조”라고 하소연했다.

김광현 강원 화천농협 중앙지점장은 “우리 농협에서도 1년에 약 4000만원의 농산 부산물 폐기 비용이 발생한다”며 “워낙 많은 돈이 들다보니 내년부턴 건조기를 설치해 부산물을 말린 뒤 폐기하는 등 비용을 낮출 방법을 고심하고 있다”고 전했다.

농산 부산물을 재활용할 길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부산물 발생 사업장이 자체적으로 적법한 기준에 따라 설비를 갖춰 재활용하거나 특정 외부업체가 가져갈 수 있도록 재활용환경성평가를 받는 등의 절차를 거치면 된다.

그러나 적지 않은 비용이 발생하는 탓에 현실적으론 접근하기 어려운 방법들이다. 가령 농산 부산물로 퇴비를 만들려면 보관 용기나 탱크를 갖추고 분쇄·탈수·건조 설비, 미생물 배양과 발효 시설, 오염물질 처리, 악취 저감 설비 등을 도입해야 한다. 여기에 추가적으로 발생하는 유지·관리비까지 고려하면 폐기물 처리업체로 보내는 비용이 저렴한 수준이다.

외부업체와의 협력도 쉽지 않다. 재활용환경성평가를 받는 데만 1∼2년의 시간이 드는 데다 만들려는 재활용 품목마다 별도의 환경성평가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농산 부산물을 가져다 쓸 의향이 있는 업체로선 본격적으로 재활용을 시작하기도 전에 지쳐 다른 길로 눈을 돌리기 쉬운 구조다.

따라서 법령상 농산 부산물을 폐기물이 아닌 순환자원으로 인정하는 한편, 외부업체에서도 부산물 재활용을 더욱 쉽게 할 수 있도록 규제 장벽을 낮춰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된다. 최근 환경부와 농림축산식품부가 규제샌드박스 제도를 통해 양파 껍질을 단미사료 원료로 활용할 수 있게 하는 등 일부 빗장을 풀고 있지만 법령 개정을 통해 보다 근본적인 구조 혁신이 필요하다는 제언이다.

김진숙 농촌진흥청 국립농업과학원 기능성식품과장은 “농산 부산물을 사용하기까지 거쳐야 하는 복잡한 절차에 답답함을 호소하는 업사이클링(새활용) 업체들이 적지 않다”며 “현행 ‘폐기물관리법’에 따라 쓸 수 있는 자원도 버려지는 측면이 있어 규제를 완화하는 방향으로 개선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평창·화천=이현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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