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향칼럼] 신탁 혹은 두려움

2024-12-29

종종 생각지 못한 함정을 만나면

주술에 의존해 불안 떨쳐내려 해

두려움을 정면으로 맞닥뜨려야

축복으로, 평안으로 바뀌게 될 것

칼로 일어난 자는 칼로 망하듯이 주술에 의존하는 자는 주술로 망한다. 이들을 움직이는 가장 큰 동력은 두려움이다. 그 두려움이 권력을 잡으면 무도해진다. 위협으로 느낀 것을 처리하는 방식이 합리적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럴 수밖에 없다. 위협이 대부분 실재가 아니라 망상에 기인해 있으니.

손바닥 왕(王)자부터 이상했지만 그래도 그것은 개인의 취향으로 넘어갈 수 있었다. 그런데 청와대를 대통령실로 이전하는 과정은 정말 이상했다. 청와대, 그전부터 말이 많았던 곳이니 합리적인 논의의 과정을 거쳐 옮길 수도 있다. 그런데 한 나라의 심장을 옮기는 일을 너무 조급하게 처리하는 것이었다. ‘소통’의 실력이 아예 없어 보이는 권력이 ‘소통’을 내세워 부랴부랴 용산에 대통령실을 꾸며 옮기는 것을 보며 의아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루라도 청와대에 살면 안 되는 것처럼 행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이비 신탁을 받은 것이라는 소문이 무성했지만 소통에 전혀 관심이 없어 보이는 권력은 그 민심조차 무시해버렸다.

살면서 우리는 종종, 생각지도 못한 함정을 만나 ‘어떻게 할 것인가’를 고민한다. 그 와중에 사주 카페에 들르기도 하고, 점집을 찾아가기도 하고, 타로를 보기도 한다. 그것이 자신의 불안과 두려움을 돌보는 한 방식이고 취미라면 그것이 뭐 그리 나쁘겠는가. 그런데 매번 중요한 일을 주술사에게 의존해서 결정하고 처리하는 사람이라면 적어도 그는 민주사회에서는 공적인 일을 해서는 안 된다. 민주주의의 핵은 바로 합리적인 의견 수렴 과정, 의사 결정 과정이기 때문이다.

점을 치는 일은 그리스 신화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테베의 왕 라이오스는 태어날 아들에 의해 살해될 것이라는 신탁을 받고 아들이 태어나자마자 살해할 것을 명한다. 그 아들이 그 유명한 오이디푸스다. 아르고스 왕 아크리시오스에게는 다나에라는 아름다운 딸이 있었다. 그런데 그 왕도 신탁을 받는다. 사랑하는 딸 다나에가 아들을 낳을 것인데, 그 다나에의 아들에 의해 그가 살해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그는 두려웠다. 그리하여 다나에를 아예 청동의 탑에 가두어버렸다. 다나에가 누군가를 만나 사랑할 수 없도록!

그런데 어떻게 되었을까. 우리가 알듯 라이오스는 오이디푸스에 의해 죽고, 아크리시오스는 외손자 페르세우스가 던진 원반에 맞아 세상을 뜬다. 팔자 도망은 못한다는 뜻일까. 아니라면 그리스 신화에서 신탁의 역할은 무엇일까. 정해진 미래가 있다는 뜻으로 읽으면 문득문득 삶에 대한 두려움이 크게 크게 일어나 사고를 친다.

그리스 신화에서 신탁은 그것 자체가 중요한 변수가 되어 삶을 만들고 미래를 만들어간다. 라이오스가 수태한 아내 이오카스테가 낳을 아이에 관해 묻지 않았더라면 테베 일가의 몰락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고, 아크리시오스가 쌍둥이 형제 프로이토스를 견제할 수를 신탁에 묻지 않았더라면 그는 손자 페르세우스를 피해 그렇게 도망 다니지 않았을 것이다.

신탁은 주인공이 두려워하는 주인공의 그림자다. 주인공은 자기 그림자에 놀라 신탁이 던진 말의 미끼를 무는 것이다. 라이오스와 아크리시오스가 원했던 것은 영원한 권력이고, 두려워했던 것은 ‘몰락’이었다. 기대와 실망이 짝이고, 집착과 통제가 짝이듯이, 영원한 권력에의 동경과 몰락에 대한 두려움은 기막힌 짝이다. 이 두려움이 신탁으로 이끌고, 망상을 만들고 망상을 키운다. 그리고 마침내 함께 살아야 하는 이들을 망상 속에서 적으로 만들어 놓고 고립된다. 그 스스로가 몰락의 길을 걸은 것이었다.

누구의 인생에나 함정이 많은 지뢰밭을 건너는 것과 같은 때가 있다. 그 지뢰밭에서 지뢰를 밟지 않기 위해 주술사에게 물으러만 다니면 함정을 만드는 것은 그 누구도 아닌 자신이었음을 결코 깨닫지 못한다. 그리하여 두려움의 노예 노릇을 한다. 우리를 움직이는 그 두려움을 정면으로 마주하지 못하면 누구든 거기서 무너지는 것이다. 내가 두려워하는 것, 그것을 마주할 수 있어야 기대가 실망이 되지 않고 축복으로 바뀌고, 몰락이 평안으로 바뀐다.

이주향 수원대 교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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