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춘추시대 사상가인 공자는 제자인 자공으로부터 정치에 관해 질문을 받고 “식량을 풍족하게 하고 군대를 충분히 하고 백성의 믿음을 얻는 것”이라고 답했다. 약 250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관통하는 정치의 본질을 꿰뚫은 이 명언은 ‘논어’에 소개돼 있다. 자공이 ‘어쩔 수 없이 포기해야 한다면 어떤 순으로 해야 하느냐’고 묻자 공자는 첫째 군대, 둘째 식량을 포기해야 한다면서 ‘무신불립(無信不立)’을 역설했다. 백성의 믿음이 없으면 나라가 바로 서지 못한다는 뜻이다.
500여 년 전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 외교관이자 사상가였던 니콜로 마키아벨리도 ‘군주론’을 통해 군주가 백성의 사랑과 신뢰를 얻는 것이 통치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군주가 자신의 말을 반드시 지킬 필요는 없지만 신뢰 받는 인물로 남아야 하는데 멸시와 증오를 받으면 치명적”이라는 게 마키아벨리의 조언이다. 19세기 후반 통일 독일제국의 초대 총리로 독일을 유럽의 최강국으로 올려놓은 오토 폰 비스마르크도 군비 증강을 강조하는 ‘철혈(鐵血) 정책’을 펴면서도 사회적 신뢰 제고를 위해 세계 최초로 건강·산재·근로자연금 보험 등의 복지 정책을 도입했다.
실패를 줄이려면 역사적 교훈을 배워야 한다. 그러나 윤석열 대통령은 정치를 멀리하고 검치(檢治) 등에 의존하며 독선적으로 국정을 운영하다가 신뢰 상실을 자초했다. 군대를 동원해 민주주의를 훼손한 비상계엄 선포로 인해 내란 우두머리 및 직권남용 혐의를 받고 있다. 국민의힘도 계엄 비호와 윤 대통령 탄핵 저지에 나서며 자유민주주의·법치주의 등 보수 가치를 흔들어 스스로 신뢰를 무너뜨렸다. 국무위원들도 계엄 국무회의는 물론 국정 수습 과정에서 혼란을 막지 못해 신뢰를 저버렸다. 1952년 이승만 대통령이 부산 정치 파동을 이유로 비상계엄을 선포했을 때 김성수 부통령은 “반란적 쿠데타”라고 주장하면서 직을 내던졌다. 현 내각에서는 그런 인물을 찾아보기 어렵다.
최근 179명의 소중한 목숨을 앗아간 최악의 여객기 참사도 공직 기강 해이와 국정 혼돈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거대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헌정 질서 회복과 민생 살리기를 내세우고 있으나 아직까지 국민들에게 ‘수권 정당’이라는 믿음을 주지 못하고 있다. 여야가 당리당략적 ‘치킨게임’에 몰두하는 바람에 정치는 정상 궤도를 벗어났고 경제는 추락하고 있다.
지도자들의 신뢰 상실 위기 속에 국정 리더십 공백과 정치 불안 증폭에 따른 국가 신용등급 강등 위험이 커지고 있다는 점이 우려된다. 세계 3대 신용평가사인 피치가 크리스마스 전날 보고서에서 “한국의 정치 위기가 장기화하거나 지속적인 정치 분열로 정책 결정의 효율성, 경제 성과, 재정이 악화될 경우 국가 신용등급 하방 위험이 커질 수 있다”고 경고한 게 심상치 않다. 원·달러 환율 폭등, ‘코리아 엑소더스’ 가속화, 내수 침체, 수출 둔화에 대외 신인도 하락, 국채 등 금리 상승, 산업·경제 위축이 이어질 수 있다. 실제 외국계 투자은행(IB) 관계자들은 요즘 한국의 신용등급 강등 시나리오에 따른 대처 방안에 관해 내부 검토 중이라는 경고를 잊지 않는다.
유럽 강국들의 신용등급 위험도 예외가 아니다. 지난달 14일 세계 3대 신용평가사인 무디스에 의해 프랑스의 신용등급이 한 단계 강등됐다. 독일도 신용등급 강등 위험에 처한 것으로 알려졌다. 프랑스는 사회보장 축소 등 긴축정책, 독일은 경기 침체와 연정 내 불협화음으로 각각 지난달 의회에서 총리가 불신임 당했다. 정치적 신뢰 상실이 경제 충격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비스마르크는 “바보는 경험에서 배우고 현인(賢人)은 역사에서 배운다”고 말했다. 이 말처럼 역사에서 교훈을 얻어 국가적 신뢰를 회복하는 게 시급하다. 다행히 우리는 국난기마다 의병·독립 투쟁, 권위주의 정권 종식과 민주주의 회복력, 금 모으기 운동 등으로 높은 시민의식을 보여줬다. 우리가 식민지 고난과 전쟁을 겪고도 선진국으로 도약한 것은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사례다. 미래를 비관적으로만 볼 게 아니다. 을사(乙巳)년 ‘푸른 뱀의 해’를 맞아 뱀이 허물을 벗듯이 국가 리더십 재정립과 신뢰 회복에 나서면 외려 위기를 기회로 바꿔 기적의 역사를 다시 쓸 수 있다. 국가 신뢰 회복과 신용등급 강등 위험 제거를 위해 정부와 여야 정치권이 머리를 맞대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