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톡] 공허한 'AI강국' 구호

2025-04-13

“서울대 컴퓨터공학과 학생 절반이 '서울대 의대를 못 갔다'는 패배감에 젖어 있습니다.”

얼마 전 국회에서 열린 인공지능(AI) 관련 토론회에서 나온 이 발언이 뇌리에 깊이 남았다. 국내 최고 명문대의 최상위권 이공계 학생들이 '기술 발전'보다 '의대 진학 실패'를 먼저 떠올리는 현실. 이들 중 상당수는 결국 다시 의대에 도전하는 '반수생'이 된다고 한다.

국내에서 길러낸 박사급 인재들이 줄줄이 해외로 빠져나가는 악순환도 계속된다. 미국 스탠퍼드대 인간중심인공지능연구소(HAI)가 이달 7일 발표한 'AI 인덱스 2025'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지난해 AI 인재 이동 지표에서 -0.36을 기록하며 이스라엘, 인도, 헝가리, 튀르키예에 이어 AI 인재 유출국 5위에 올랐다. 일본 역시 우리와 비슷한 상황이었지만, 과감한 인재 육성·유치 정책을 펴며 순유입국으로 전환한 상황이다. 업계에서는 윤석열 정부의 연구개발(R&D) 예산 삭감이 이 같은 흐름에 기름을 부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6·3 조기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은 'AI특위'를 앞다퉈 출범시키며 정책 경쟁에 나섰다. 후보들은 너도나도 'G3 진입'을 내걸고 투자 확대를 약속하지만, 정작 구체적인 로드맵이나 통찰력 있는 전략은 아직까지 아니다.

이번만큼은 공허한 'AI 강국' 구호에서 벗어나야 한다. 특히 이번 대선의 핵심은 2030세대 민심이다. 이들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현실적이고 지속 가능한 '인재 양성 정책'이다.

우수 인재가 기술을 포기하지 않도록, 그에 걸맞은 사회적 처우를 제공해야 한다. 학문과 산업을 매끄럽게 연결하는 유연한 교육 시스템, 민간이 중심이 되는 혁신 생태계도 함께 구축해야 한다. 그리고 이 모든 논의의 출발점은 분명하다. '이공계 인재를 존중하는 사회'를 다시 세우는 것. 그 믿음을 회복하지 않는 한, 'AI 강국'은 구호로만 남을 것이다.

성현희 기자 sunghh@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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