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오전, 고창 고인돌 마라톤에 참가했다. 가슴에 번호표를 달고 출발선에 서자 긴장과 설렘이 동시에 몰려왔다. 달리는 내내 숨이 가빠지고 다리가 무거워질수록 ‘왜 이걸 시작했을까?’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완주 후의 상쾌함은 그런 생각들을 단숨에 날려버렸다.
마라톤에 참가한 사람들은 번호표에 적힌 숫자뿐 아니라, 색깔로도 코스가 구분되어 있었다. 5킬로, 10킬로, 하프 코스 참가자들이 각기 다른 색으로 자신을 나타내며 달렸다. 사람마다 거리와 목표는 달랐지만, 참가자는 숫자와 색으로만 식별되었다. 현대 사회도 다르지 않았다. 이름 대신 역할과 범주로만 규정되는 우리의 모습과 닮아 있었다.
송길영 작가의 《시대예보: 호명사회》는 현대 사회에서 사람들이 이름 대신 OO 회사 OO 국장 OO 과장 등 역할이나 소속, 직책으로 불리는 현실을 꼬집는다. 자신의 정체성이 조직과의 관계, 직책과 역할로 정의되는 사회에서는 그 소속과 직책이 사라지는 순간만치 본인의 존재가 사라지는 듯한 당혹감을 떨칠 수 없기 때문이다.
‘호명사회’라는 개념으로 이름을 되찾는 일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작가는 우리가 조직과 역할 뒤에 숨지 말고, 자신만의 이름으로 살아야 한다고 역설한다.
시대는 변화하고 있다. 변화되는 사회 속 주체적인 삶을 원하는 각자의 생각이 송길영 작가의 첫 책에서 언급했던 ‘핵개인’의 탄생을 만들었다. 이제는 그 핵개인들이 서로 존중하고 교류하는 선택의 연대가 도래하고 있다. 단순히 부름을 받는 것이 아니라 서로 이름을 부르는 상호 호명의 사회는 수직적 통제가 아닌 대등한 협력의 네트워크를 형성하기 때문이다.
마라톤을 완주하며 느꼈다. 단순한 숫자와 색깔이 아니라, 일요일 오전 각자 달리기하는 이유와 목적 그리고 사람들의 이름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단축마라톤 이후 나는 매일 아침 5킬로씩 달리는 습관을 시작했다. 달리기하며 나만의 속도와 호흡을 찾아가는 시간이, 오늘 하루를 나 자신으로 온전히 어떻게 살아갈지를 되묻는 순간으로 바뀌고 있다. 《시대예보: 호명사회》가 던진 메시지처럼, 우리는 단순한 번호나 역할을 넘어 자신의 이름을 붙잡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
OO 본부장, OO 상무로 불리던 이름이 없어지면 자신이 갖고 있던 것이 대단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무척 힘들고 괴롭다. 이제 조직의 이름 뒤에 숨을 수도 숨을 필요도 없는 사회가 되었다. 자신이 한 일을 책임지고 온전히 자신의 한 일에 보상받는 새로운 공정한 사회가 오기 때문이다. 자신의 이름을 되찾고 살고 싶은 이들에게 꼭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글 = 조석중 (독서경영 전문가)
소개도서
《시대예보:호명사회》 (송길영 지음 / 교보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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