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약했던 전두환의 실수…“내 뒤처리 노태우가 다해”

2024-11-18

전두환 비사

제8부. 전두환의 ‘노태우 대통령 만들기’

1회. 전두환의 ‘절친 노태우’

‘내가 술 마시면 실수를 잘해. 내가 실수하면 노(태우) 대표가 무서운 사람이라 뒤처리를 다 해. 노 대표는 절대 술에 안 취해. 절대 실수가 없어. 나는 대체로 술이 약해. 강단으로 마시는 거지. 나는 술을 맛으로가 아니라 기분으로 마셔요.’ (노태우 회고록)

전두환과 정반대 성격 노태우

전두환 대통령이 1987년 6월 17일 측근과의 만찬 자리에서 노태우 민정당 대표를 칭찬하면서 했던 말이다. 이날 낮 전두환은 대통령 후보 노태우에게 ‘대통령 직선제 수용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6·29선언을 지시한 것이다. 그러나 노태우는 ‘직선제 한다면 후보직을 사퇴하겠다’며 거부했다.

그러자 전두환은 노태우를 위로하고 구슬리기 위해 저녁 술자리를 마련했다. 그리고 ‘내가 오늘 한잔 먹을 거야’라면서 술 얘기를 꺼냈다가 본심을 내비쳤다. 자신이 실수하더라도 절친 노태우가 뒤처리를 다 해준다고. 전두환은 노태우가 자신의 퇴임 후를 가장 잘 처리해 줄 적임자로 생각했다.

전두환과 노태우는 절친이지만 성격은 대조적이다. 군 출신들은 흔히 ‘전두환은 수색형, 노태우는 매복형’이라고 비유했다. 전두환은 선제 공격하며 치고 나가는 스타일이고, 노태우는 뒤에 숨어 적이 오길 기다리는 스타일이란 의미다.

‘전두환은 목에 힘 주는 사람이고, 노태우는 귀에 힘 주는 사람’이라고도 말한다. 전두환이 큰 소리로 떠들기 좋아한다면, 노태우는 싫은 표정 없이 그걸 잘 들어주는 사람이니 궁합이 맞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스타일은 두 사람이 자란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 전두환은 비록 가난했지만 부모님 슬하에서 여러 형제들과 함께 자랐다. 그런데 노태우는 다섯 살 넘기던 해에 아버지를 잃었다. 아버지가 대구에서 공부하던 동생(막내 숙부)에게 등록금을 가져다주러 가다가 교통사고를 당해 29세에 요절했다. 노태우는 자서전에서 ‘아버지 빈소에서 어머니가 홀로 우는 모습을 보고 나도 남몰래 우는 버릇이 생겼다’고 밝혔다.

어린 노태우를 키운 사람은 할머니 ‘소(蘇)보살’이다. 독실한 불교 신도인 할머니는 노태우를 데리고 파계사 성전암에 다녔다. 대구 팔공산 동화사 말사인 이곳에는 고송(古松) 스님이 살고 있었다. 노태우는 고송 스님이 들려준 ‘다 주어라. 그러면 부처님이 너에게 더 큰 것을 줄 것이다’라는 말을 평생 좌우명으로 삼았다.

노태우는 열세 살이 되던 1945년 대구공립공업학교(대구공고 전신)에 진학하면서 본가(당시 경북 달성군 공산면)를 떠나 대구시내 막내 숙부 집에서 더부살이를 했다. 막내 숙부는 자신에게 학비를 전달하려다 요절한 형님의 아들인 노태우의 학비를 지원해 주었다.

노태우는 어머니가 그리울 때면 휘파람을 불었다. 그리고 자신의 신세를 노래한듯한 홍사용의 시 ‘나는 왕이로소이다’를 읊조리곤 했다.(노태우 자서전)

‘나는 왕이로소이다. 어머니의 가장 어여쁜 아들, 나는 왕이로소이다. 가장 가난한 농군의 아들로서 (중략) 어머니 몰래 남 모르게 속 깊이 소리 없이 혼자 우는 그것이 버릇이 되었소이다. (중략) 나는 왕이로소이다. 그러나 눈물의 왕….’

전두환과 노태우는 전쟁 중이던 1952년 경남 진해 피란처에 만들어진 육사 교정에서 만났다. 처음부터 전두환은 같은 대구 출신 노태우, 김복동과 친했다. 노태우의 경우 전두환의 대구공고 2년 선배라는 인연까지 있었다.

나이는 전두환이 더 많다. 빠른 1931년생 (1월 18일생)으로 1932년 8월 14일생인 노태우보다 사실상 두 학년이나 위다. 그러나 가난으로 진학이 늦어져 노태우의 후배가 됐다. 1933년 3월생 김복동은 노태우가 대구공립공업학교를 다니다 편입한 경북중학교(중·고등학교 6년 과정) 1년 후배다. 노태우는 대구시내에 있던 김복동의 집을 들락거리다 동생 김옥숙과 결혼했다.

육사에선 동기생이지만 전두환이 사실상 형 노릇을 했다. 전두환은 회고록에서 ‘노태우나 김복동은 나를 형님처럼 여기며 어렵게 대했다’고 기억했다. 당시 전두환은 나이도 많았지만 스타일이 처음부터 보스였다. 이런 전두환을 가장 잘 따랐던 친구가 노태우였다.

전두환이 노태우에게 물려준 보직 네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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