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쓸비법] 열심히 일한 대가가 '담합'?…필수로 떠오른 '공정거래 자율준수 프로그램(CP) 제도'

2024-12-16

[비즈한국] 기업들은 때론 돈만 가지고는 설명하기 어려운 결정을 한다. 그 속에 숨어 있는 법이나 제도를 알면 더욱 자세한 내막을 이해할 수 있다. ‘알아두면 쓸모 있는 비즈니스 법률(알쓸비법)’은 비즈니스 흐름의 이해를 돕는 실마리를 소개한다.

평범한 사람도 회사에서 업무를 처리하다 보면 법규 위반으로 제재를 받을 수 있다. 그중에는 횡령·배임처럼 형사처벌의 대상이 될지 직관적으로 예상되는 행위도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거미줄처럼 펼쳐져 있는 각종 행정법령상 의무를 모두 이행하거나, 사전에 존재를 예측하기는 어렵다.

공정거래법령상 의무도 마찬가지다. 회사에 소속된 많은 사람들은 사적인 거래에 국가가 개입해 법 위반 여부를 따지는 것을 어색하다고 느낀다. 공정거래 법령 위반 이슈에 “이런 일이 어떻게 문제가 되나”라고 반응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관행적으로 이뤄지던 업무 방식이 법령 위반으로 판단돼 회사에 엄청난 손해를 끼치거나, 본인도 형사처벌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곤 한다.

예를 들어, 입찰공고가 게시된 이후 경쟁업체 관계자와 단가를 논의하는 것은 담합이 된다. 이는 누구나 직관적으로 예상할 수 있는 내용이다. 그러나 △단가 산정의 기초가 될 수 있는 정보를 주제로 경쟁업체 관계자와 대화하는 것 △경쟁업체의 반응을 떠본 후 입찰 참여 여부를 결정하는 것 △합의를 이행할 생각 없이 정보 습득 차원에서 논의 과정에 참여하는 것 등의 행위도 모두 담합이 될 수 있다는 점은 알기 어렵다.

앞서 열거한 행위는 옛날 같았으면 오히려 ‘능동적이다’ ‘기민하게 대응한다’며 칭찬 받았을 일이다. 그런데 공정위 심결, 법원의 판례 등이 쌓이고 법령이 개정되면서 법령 위반으로 판단되는 범위가 넓어짐에 따라 예전과 같은 방식으로 일하면 곤란해지는 사례가 드물지 않게 발생한다.

경영자의 책임은 더 무겁다. 대법원은 영업 담당 임원, 영업 팀장 등이 모임을 통해 지속적으로 가격담합을 한 사안에서, 대표이사가 회사의 업무 전반에 대한 감시·감독 의무를 이행하지 않음으로써 가격담합을 의도적으로 외면했거나 적어도 그 가능성에 대해 어떠한 주의도 기울이지 않았다는 이유로 대표이사 개인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경영자는 실무자가 아니므로 본인이 직접 실행하지 않았음은 물론, 해당 부문 임원이 아니어서 능동적으로 의사결정에 참여하지 않았음에도 감시·감독 의무 위반으로 법적인 책임을 부담하는 사태가 발생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안을 두고 상담하다 보면, 사건 관계자가 답답한 마음에 “이런 식으로 취급된다면 아예 일을 하지 않겠다”거나 “회사 일을 열심히 했을 뿐인데 나쁜 사람으로 매도당하는 것이 억울하다”라고 성토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이러한 반응은 무책임하다. 어쨌든 회사 업무를 처리하면서 법규 위반 소지는 최소화하는 길을 찾아야 하지 않겠는가? 예를 들어 경영진이 회사 정책적으로 법규 준수의 의지를 표명하고, 시스템 구축이나 가이드라인 제정으로 법규 준수 또는 위반 행위를 구분하며, 사전에 실무자에게 이 같은 내용을 교육한다면 신속하고 효율적인 업무처리와 법규 준수가 양립하지 않을까?

이러한 관점에서, 최근 공쟁거래 분야에서 활발히 연구하고 또한 실천하는 분야가 ‘공정거래 자율준수 프로그램(Compliance Program, CP)’이다. CP 제도란, 기업(사업자)이 공정거래 법규를 준수하기 위해 자체적으로 만들어 운영하는 교육·감독 등 사업자 내부의 준법시스템을 말한다.

CP 제도는 2001년부터 민간 주도로 도입된 것으로 내용 자체는 새로운 것이 없다. 그럼에도 최근 CP 제도 논의가 활발하다. 그 이유는 과거 CP 제도의 근거가 예규에 규정돼 CP 도입을 통한 인센티브 효과가 분명하지 않았지만, 2024년 6월 21일 자로 시행된 개정 공정거래법은 CP 도입 및 운영에 대한 과징금 감경 등 인센티브를 법제화함에 따라 보다 확실한 인센티브를 기대할 수 있게 됐다는 점이다. 그래서인지 2024년 CP 등급 평가 신청 기업 수는 전년 대비 2배 이상 증가(58개)했고, 전체 신청기업의 약 66%(38개)가 AA 등급 이상을 받았다고 한다.

최근 공정거래 법령 및 공정위 고시에 따르면 CP 도입 요건을 갖추고, CP 제도를 1년 이상 운영한 사업자는 한국공정거래조정원에 CP 등급 평가를 신청할 수 있고, 위 조정원은 공정위가 고시한 평가 기준에 따라 1차 서류 평가, 2차 현장평가 등을 진행한 후 평가 등급을 공표한다.

평가 사항은 ① CP 업무 기준 및 절차의 수립·운영 △내부 감시체계 구축·운영 △CP 관련 교육 △CP 편람 작성 및 활용 △법령 위반 임직원 징계 △CP 관계자 임명 등 인사제도 운영 등이다. 평가 등급은 D(매우 미흡), C(미흡), B(보통), A(비교적 우수), AA(우수), AAA(최우수) 등으로 구분된다. 사안에 따라 등급이 보류·미부여되거나, 사후 조정, 무효 처리가 될 수도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CP에 대한 인센티브인데, CP 도입 요건을 갖추고 1년 이상 운영한 사업자가 AA 등급 이상을 받으면 유효기간(2년) 내 1회에 한해 10%(AA) 또는 15%(AAA)까지 과징금을 감경 받을 수 있다. 그리고 조사개시 전 CP의 효과적 운영을 통해 당해 법 위반을 탐지·중단했음을 사업자가 입증하면 5%까지 추가 감경이 가능해 최대 20%까지 과징금을 감경할 수 있다.

이러한 내용에 따르면 사업자 입장에서는 CP 등급 신청을 하지 않을 이유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CP 신청을 준비하면서 직·간접적으로 회사의 시스템을 정비해 법규 위반의 가능성을 최소화하는 효과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드는 의문과 걱정도 있다. 첫째 CP 도입 시기가 2001년도라는 사실에서 보듯 과거에도 CP는 있었으나 공정거래 법규 위반 사건은 끊임없이 발생했고, 이는 CP가 형식적으로 운영됐음을 보여준다. 개정 법규는 CP에 대한 인센티브를 명문화했는데, 그렇다면 CP의 실질적 운영을 담보할 수단은 있는가?

둘째, CP 운영을 위해서는 막대한 비용이 필요한데, 대기업은 이를 지원할 여력이 충분하지만 중소기업은 문제의 인식 여하를 떠나 그 여력이 충분하지 않다. 이러한 격차를 해소할 방책은 있는가?

CP 활성화는 기업 운영의 불확실성을 최소화한다는 점에서 환영할 만한 일이다. 다만 위와 같은 의문이 제기될 소지도 있으므로, CP의 실질적 운영을 담보하고 사업자 간의 격차를 해소하기 위한 운용의 묘를 살리는 것이 중요하다.​

정양훈 법무법인 바른 파트너 변호사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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