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행정명령을 내림에 따라 미국에선 이제 ‘멕시코만’이 ‘미국만’(Gulf of America)으로 불리게 된다. 이 이름이 당장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건 아니지만, 미국의 영향력을 고려할 때 500년 가까이 불렸던 ‘멕시코만’이라는 이름의 위상은 흔들릴 수밖에 없다. 당장 구글은 자사 서비스인 구글 맵에서 ‘멕시코만’을 ‘미국만’으로 바꿔 표기하거나 병기할 예정이다.
구글은 27일(현지시간) 엑스(X, 옛 트위터) 계정을 통해 “구글 맵 내의 지명에 관한 여러 질문을 받았다”며 “우리는 정부 공식 자료에 업데이트될 때 지명 변경을 적용하는 오랜 관행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에 따라 미국의 지명정보시스템(GNIS)이 업데이트되면 즉시 미국 내 구글 맵에 '미국만'을 표기할 예정이라는 설명이다. 알래스카주의 최고봉인 ‘데날리’의 이름도 ‘매킨리산’으로 변경된다.
남들이 뭐라하든 ‘미국만’으로 부르라는 트럼프
자국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직후 멕시코의 주권이 미치는 바다처럼 여겨질 수 있는 멕시코만의 이름을 미국만으로 부르도록 했다.
알래스카 데날리는 원래 윌리엄 매킨리 전 미국 대통령의 이름을 딴 매킨리산으로 불리다가 2015년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서 알래스카 지역 토착민이 부르는 이름인 데날리로 변경해 이후 계속 이 이름으로 불려왔다.
구글은 다만 이번 변경에도 공식 지명이 나라마다 다를 때는 사용자가 있는 지역에 따라 각국의 공식 명칭으로 표기된다고 설명했다. 멕시코 서비스에선 멕시코만으로 표시된다는 뜻이다. 미국과 멕시코를 제외한 나라에선 멕시코만과 미국만으로 병기된 이름을 볼 수 있다.
실제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에서 부르는 이름을 변경한다고 해서 국제 수로 기구(IHO)에서 정한 공식 이름이 바뀌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미국이 참여하는 국제회의 등에서,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참석하는 회의에선, 명칭에 대한 노골적인 변경 요구가 예상된다.
1550년부터 ‘멕시코만’ 불려… 팽창주의 발언 행동으로
멕시코만은 멕시코 동쪽 전체와 미국 텍사스주, 루이지애나주, 앨라배마주, 플로리다주, 그리고 쿠바 등으로 둘러싸여 있다. 지금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한 건 47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서양의 일부분으로 미국, 멕시코로 둘러싸인 이곳은 오래전엔 ‘북쪽의 바다’, ‘플로리다 만’, ‘코르테스만’ 등으로 불렸고, 1550년 제작된 지도에서 처음으로 ‘멕시코만’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이후 이 이름은 널리 굳어졌다.
이런 이름이 붙고 굳어진 건, 유럽인들이 북미보다 남미를 먼저 발견한 것과 과거 미국 남쪽 주 일부가 멕시코의 땅이었던 것 등이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보인다. 멕시코만을 둘러싼 미국 텍사스와 멕시코 위 북부 지역은 과거 멕시코 땅이었지만, 멕시코가 19세기 미국과의 전쟁에서 패한 후 미국의 땅이 됐다.
이후에도 멕시코만 표기는 우리나라의 동해와 일본해 표기 문제처럼 첨예한 논란을 일으키진 않았다.
그러다 1999년 미국 지명위원회 의장이 된 존 R. 에보트가 멕시코만의 이름을 ‘미국만’으로 변경하는 제안을 한 개인으로부터 반복적으로 받으면서 명칭 문제가 수면위로 떠올랐다. 일부 코미디언이 이를 유머의 소재로 삼았고, 2012년 관련 법안이 제출된 적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트럼프 대통령이 큰 소리를 내기 전까진 대수롭지 않은 문제였다.
이번 변경 이후에도 논란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멕시코와 인접한 국경의 경비를 강화하고 불법 이민자를 봉쇄했으며, 멕시코에서 생산된 제품에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하는 등 대 멕시코 외교에서 강경 노선을 취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외 정책에 있어 각국을 당혹스럽게 하는 ‘미국 우선주의’, ‘팽창주의’ 발언을 서슴지 않고 있다. 앞서 당선인 시절 트럼프 대통령은 캐나다의 총리 면전에서 “캐나다가 미국의 51번째 주가 되라”고 말하고, 덴마크엔 그린란드를 팔라고 요구했다. 또 파나마 운하의 통제권을 장악하기 위한 군대 투입 가능성을 내비치기도 했다.
엄형준 선임기자 ting@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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