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효율의 미학

2025-11-09

무대 위, 독일에서 온 무용수들이 온통 카네이션으로 뒤덮인 바닥 위를 조심조심 걸어들어왔다. 그들은 꽃잎을 밟지 않으려는 듯 망설이다가, 이내 그 위에서 몸을 던지고 달리고, 돌기 시작했다. 찢기고 흩날리는 꽃잎 사이로 땀과 숨이 섞였다. 피나 바우슈의 작품답게 무용수들의 움직임은 효율과 계산의 언어로는 번역되지 않는 메시지를 전했다. 이 세상에는 이유 없이 해야만 하는 일들이 있다고. “굳이 저렇게까지?”라는 관객의 속삭임이 퍼질 즈음, 머릿속이 환기되었다. 그렇다. 예술은 언제나 ‘굳이’와 ‘기꺼이’의 세계에 산다.

정답 없는 질문 같은 예술처럼

위대한 혁신은 마음 건드려

비효율적인 무모한 확신에서

세상을 뒤바꾸는 혁신 피어나

요즘의 AI 세상은 효율로 돌아간다. AI는 인간의 망설임을 오류로 간주하고 감정의 여백을 불필요한 데이터로 지운다. 한 치의 낭비도 없는 정교한 알고리즘이 ‘최적화’라는 이름으로 우리의 사고를 재단한다. 세상은 그 어느 때보다 똑똑해졌지만, 묘하게도 인간은 점점 더 공허해진다. 속도는 빨라졌지만 인간의 온도는 낮아졌다. AI가 세상을 정확하게 예측할수록, 인간은 더욱 불확실한 감정으로 살아간다. 그 모순이야말로 우리가 여전히 인간임을 증명한다.

예술은 효율, 그 반대편에 서 있다. 인간다움의 회복을 시도하는 예술은 이유 없이 시간을 들이고, 불편함을 감수하며, 답이 없는 질문을 던진다. ‘이유 없는 아름다움’ ‘계산되지 않은 몰입’ ‘결과보다 황홀한 과정’, 이 모든 것이 예술이 위대한 이유다. 효율의 세계가 버린 감정의 틈을 예술은 기꺼이 채운다. 그래서 예술은 언제나 비합리의 언어로 세상을 설득한다. 어쩌면 그 비효율의 용기가 인간다움의 마지막 본능을 지키는지도 모른다. 비효율은 낭비가 아니라 존재의 신호다. 예술은 정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다만 우리를 다시 묻는 존재로 되돌린다.

경영의 세계에도 때때로 예술이 탄생한다. 요즘의 창업 현장에서도 가끔 숨 막히게 아름다운 일들이 일어난다. 숫자표만 들여다보면 이해할 수 없는 과감한 베팅이 있었다. 그 베팅은 소비자의 편의가 아니라, 감정의 결을 바꿔놓는 목표에서 출발했다. 성과와 효율의 잣대로는 도저히 설명되지 않는 결정들이 모여 새로운 경험을 만들었다. 그것은 제품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설계한 예술에 가깝다. 효율로는 세계를 최적화할 수 있어도, 사람을 전율하게 하진 못한다. 진짜 창조는 언제나 비효율의 한가운데서 미친 듯이 아름다운 확신으로 탄생한다. 성과의 논리를 넘어선 그 몰입, 그 무모함이야말로 예술의 다른 이름이다. 경영의 언어로 포장된 예술, 예술의 형태로 드러난 경영, 그 경계에서 혁신은 태어난다.

모두가 그래서는 안 되겠지만, 누군가는 그래야 한다. 우리는 혁신을 숭배하지만, 혁신의 비용을 감수하길 꺼린다. 스티브 잡스의 전설을 흉내 내는 건 쉽다. 그러나 전설은 모방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정작 그들이 보여준 기꺼이 감수하며 버티는 용기는 아무도 내려 하지 않는다. 성과 논리로 설명할 수 없는 가치를 향해 실패를 예견하면서도 굳이 시도하는 그 시간들, 대부분의 사람은 “굳이” 이렇게까지 하지 않는다. 최대한 손실을 피하는 것이 미덕이 된 시대에 감수성은 비용으로 환산되기 때문에 대신 결과만, 상징만 소비한다.

하지만 진짜 혁신은 언제나 그 기꺼이 감수한 비효율 속에서 피어났다. 효율의 논리가 한계에 부딪히면, 세상은 예술가적 감수성, ‘굳이’와 ‘기꺼이’의 미학으로 방향을 틀었다. 위대한 혁신은 언제나 시대의 계산법을 거부한 자의 손에서 시작되었다. 예술이 위대한 이유는 세상의 중심이 아니라, 변두리에 머물며 중심을 비추는 거울이기 때문이다. 굳이 그 길을 택하는 사람들, 기꺼이 불편을 감수하는 사람들, 그들은 우리에게 다른 미래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그들의 존재가 문명사회의 온도를 조절해준다.

오늘도 우리는 효율의 시계 안에서 분주하게 돌아간다. 하지만 가끔은 숨을 고르고 질문해야 한다. “나는 요즘, 무엇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하고 있는가?” 그 질문 하나가, 어쩌면 인간다움을 지켜주는 마지막 예술일지도 모른다. 예술은 우리에게 답을 주지 않는다. 대신 다시 느끼고, 다시 망설이고, 다시 시작하게 만든다.

이향은 LG전자 CX담당 상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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