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국 틈새서 생존 외교하던 韓, 다자무대 중심국 부상 [심층기획-광복 80년, 독립에서 강국으로]

2025-08-04

한국 외교, 국력신장의 역사

美 원조와 군사동맹 기반으로

국가생존 유지 급급했던 전후

유엔 가입도 소련에 가로막혀

1960년대 세계경제 활황 기회로

해외건설 수주·다자무역체제 진입

서울올림픽 계기 개방국가 발돋움

민주화와 글로벌 냉전종식 맞물려

북방외교 문 열고 4강 외교 완성

명실상부 글로벌 규범 제시국으로

해방 직후만 해도 생존 외교에 절박하게 나서야 했던 한국은 어느덧 주요 20개국(G20),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 주요 다자무대에서 규범을 제시하는 국가로 부상했다. 국제사회에서 대한민국의 위상은 비약적으로 격상됐다. 지난 80년은 한국 외교와 국력 신장의 역사로 평가된다.

◆생존 넘어 성장, 개방 국가로 각인

일제 식민지배로부터 1945년 8월15일 광복을 맞았지만 대한민국의 모습은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한반도가 냉전 체제의 최전선에 위치했던 1948년 한국 외교의 1순위 과제는 강대국 틈바구니에서 살아남는 것이었다.

국가 재정 상당 부분은 미국 원조에 의존했고, 유엔 가입은 소련의 거부권에 가로막혀 번번이 무산됐다. 1953년부터 1960년 사이 미국의 원조는 총 17억달러에 이르렀고, 이는 당시 대한민국 정부 예산의 40%를 웃돌 정도였다.

한국은 외교적 도전을 멈추지 않았다. 1949년 한·미 군사고문단 파견과 1953년 한·미 상호방위조약 체결은 신생 국가의 안보 기반을 구축하는 핵심 조치였다.

국토가 잿더미로 변한 6·25전쟁 때 16개국이 한국에 병력을 파견하고 63개국이 지원을 보내온 것은 한국이 국제사회의 연대를 이끌어낸 사건이자 외교 자산이 됐다. 휴전 이후 1955년에는 인도네시아에서 열린 유엔 반둥회의에 옵서버로 참석해 비동맹권 국가들과 외교 접점을 넓혔다. 제한적인 외교 범위 속에서 원조와 군사동맹을 기반으로 국가 생존을 유지해야 했던 시절이었다.

1950년대의 생존외교는 1960∼1980년대에 경제외교로 발전했다. 생존을 넘어 성장을 꾀할 수 있게 된 한국은 이 시기 경제 성장과 외교 확장의 기틀을 다졌다. 1965년부터 약 32만명의 한국군이 베트남전에 파병되며 미국과의 안보 협력이 강화됐다. 이때 확보한 미국의 경제·군사 지원은 산업화에 필요한 외화 조달에 큰 역할을 했다.

중동 건설 붐(1970∼1980년대)에 올라탄 해외 건설 수주와 노동자 파견, 다자무역체제 진입 본격화 등으로 한국은 국가 경제 성장과 외교 입지 강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 이와 맞물려 국제경제 질서에 빠르게 편입했다. 1967년 관세무역일반협정(GATT), 1973년 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 가입에 이어 1988년 서울올림픽 개최로 세계에 강한 인상을 남겼다. 특히 ‘88 올림픽’은 동구권과 서방이 모두 참여한 냉전기 최대 국제행사로, ‘폐쇄적 개발국’으로 인식되던 한국이 개방적 국가로 이미지를 탈바꿈한 중요한 계기가 됐다.

◆민주화·세계화로 원조 공여국 전환

1987년 민주화 이후 한국 외교는 가치와 영역 모두 폭을 넓혔다. 냉전 종식이 바꾼 외교 지형을 한국은 기회로 삼았다. 1990년 한·러 수교, 1992년 한·중 수교 등 ‘북방외교’를 통해 미국, 일본에 이은 4강 외교를 완성했다. 북한의 전통적 우방들과 손을 잡음으로써 우리의 외교적 지평을 한층 넓히고, 한국이 국제사회에서 정치·경제적 신뢰를 동시에 확립하는 토대가 됐다.

1991년 남북한의 유엔 동시 가입은 분단국의 외교적 지위를 공고히 한 사건이자 한국 현대 외교사의 중요한 분기점이었다. 유엔 회원국으로 가입한 지 불과 5년 뒤에는 국제평화와 안전을 위한 가장 강력한 기구인 안보리 비상임이사국 지위 획득으로 이어졌다. 이어 2007년 유엔 사무총장으로 반기문 총장을 배출했다.

1996년에는 아시아에서 일본에 이어 두번째로 OECD에 가입하며 선진국 외교의 문턱을 넘었다. 경제 성장을 바탕으로 한 외교적 위상 변화를 상징한 사건으로 분석된다.

이 시기 경제외교를 다변화한 점도 눈에 띈다. 2004년 칠레와 첫 FTA를 체결한 한국은 2007년 미국, 2011년 유럽연합(EU) 등 주요 경제권과의 협정을 잇따라 체결하며 무역 외교 무대를 확장했다. 2009년에는 OECD 개발원조위원회(DAC)에 가입함으로써 원조 수혜국에서 공여국으로 전환을 공식화하는 역사를 썼다. 1996년 OECD에 가입한 지 13년 만이다. 이는 OECD에서 한국이 유일하다.

6·25전쟁 당시 유엔군의 지원을 받았던 대한민국은 1993년 7월 처음으로 소말리아에 공병대대(상록수부대)를 파견한 이후 레바논, 남수단 등에서의 유엔 평화유지활동(PKO)에도 적극 참여 중이다.

민주주의와 선진화된 시장경제,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은 이른바 ‘모델국가’로 탈바꿈한 한국은 선진국과 개도국의 가교역할을 하게 된 셈이다. 세계무대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운 성공사례로 척박했던 대한민국이 무에서 유를 창조했다는 평가를 받기 시작했다.

2010년 이후 한국은 명실상부한 글로벌 규범 제시국으로 도약했다. 2010년 서울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는 한국이 국제 규범과 질서를 논의하는 무대에서 존재감을 드러낸 계기로 평가된다. 이후 한국은 선진국과 신흥국을 잇는 가교로서의 외교적 위치를 확보하고, 다자무역·경제질서에서 단순 의제 수용국이 아닌 의제 설계국으로서 역할을 확장해 갔다.

2025년 현재 한국은 194개국과 수교를 맺고 있으며, 21건의 FTA를 체결해 59개국과 발효 중이다. 190개국에 무비자 또는 도착비자로 입국할 수 있는 한국의 여권이 가진 위상(헨리 여권지수 세계 2위)은 한국 외교의 신뢰 자산을 드러내는 지표라 할 수 있다.

다자외교와 신흥 의제에서도 한국은 꾸준히 존재감을 높여오고 있다. 기후변화, 디지털 규범, 인공지능(AI) 윤리, 사이버 안보 등 국제적 관심이 높은 미래·기술외교 분야에서 적극적으로 참여함으로써다. 특히 사이버 안보 협력에서 한국은 사이버 공격 대응·정보보호 표준화 관련 국제 협력 논의를 주도하며 기술안보 분야 신뢰를 확보하고 있다.

정지혜 기자 wisdom@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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