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명 중 7명 감기약으로 착각한 '이 약'…내성균 만드는 주범 [Health&]

2025-10-26

세균 감염 치료제, 만병통치약 오해

전체 감기의 약 90% 항생제 불필요

내성균 빠르게 확산…보건의료 위협

항생제 오남용·부작용 심각

가정주부 윤모(39)씨는 여섯 살 아들이 감기로 고열에 시달리자 병원을 찾았다. 아이가 빨리 낫기를 바라는 마음에 항생제 처방을 요청했지만, 의사는 고개를 저었다. 바이러스 감기에는 항생제가 소용없다는 설명이었다. 본격적인 감기 철이 시작됐다. 38도 이상의 발열과 기침, 인후통 등 인플루엔자 의심 증상을 보이는 환자가 늘면서 지난 17일부터 전국에 인플루엔자 유행주의보도 발령됐다. 이 시기 진료실에서는 “항생제도 처방해 주세요”라는 요구가 부쩍 늘어난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이러한 요구가 항생제 내성을 키우는 위험한 선택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항생제는 세균성 폐렴, 중이염, 요로감염, 세균성 부비동염 등 세균 감염으로부터 인류를 지켜낸 덕에 ‘기적의 약’으로 불린다. 하지만 만병통치약으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 항생제는 오직 ‘세균’에게만 작용한다. 감기나 독감처럼 바이러스가 원인인 질환에는 효과가 없다는 의미다. 그럼에도 여전히 많은 이들이 항생제를 감기약으로 착각한다. 고려대구로병원 감염내과 윤진구 교수는 “특히 노인이나 어린이 보호자들이 감기 증상에 항생제를 복용하면 열이 빨리 내리고 기침도 줄어든다며 항생제 처방을 요구한다”고 설명했다.

일반인 70% ‘항생제, 감기에 효과’ 오해

항생제에 대한 잘못된 인식은 조사에서도 확인된다. 2023년 질병관리청이 실시한 ‘항생제 내성 인식도 조사’에 따르면 일반인의 약 70%가 항생제가 감기 등 바이러스 감염 질환에 치료 효과가 있다고 잘못 알고 있거나 정확한 용도를 모르고 있었다. 실제 사용량도 많다. 질병관리청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보건 통계에 따르면, 2023년 기준 한국의 항생제 사용량은 31.8DID(하루 동안 1000명 기준 31.8명이 처방받았다는 뜻)로 OECD 회원국 중 두 번째로 높다.

그렇다면 왜 항생제를 감기약으로 착각할까? 한양대병원 감염내과 김봉영 교수는 “대부분 감기 증상이 자연스럽게 완화되는 시점에 항생제를 복용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라며 “감기의 90%는 바이러스가 원인으로 항생제를 복용해도 효과가 없다”고 설명했다. 감기에 항생제가 필요한 경우는 약 10%에 불과하다. 합병증이 동반되거나 세균성 감기가 의심될 때다.

항생제에 대한 오해는 여러 문제를 일으킨다. 김봉영 교수는 “항생제는 알레르기 반응, 소화불량 등 비교적 가벼운 부작용부터 심할 경우 아나필락시스 쇼크(특정 물질에 대해 몸에서 과민 반응이 일어나는 것)까지 유발할 수 있는 약제”라고 설명했다.

더 심각한 문제는 ‘항생제 내성’이다. 항생제를 불필요하게 복용하면 항생제가 잘 듣는 균들은 죽고 내성을 가진 세균만 살아남는다. 살아남은 균은 약에 적응해 강력한 내성균이 되고 기존 항생제는 더는 효과를 내지 못한다. 여러 항생제에 내성을 지닌 ‘수퍼버그(Superbug)’도 이런 과정을 통해 생긴다. 내성균이 생기면 치료가 어려워지고 입원 기간과 사망률 모두 증가한다. 가족이나 타인에게 전파돼 공중보건을 위협할 수도 있다.

문제는 내성균이 전 세계적으로 확산하고 있다는 점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지난 13일 발표한 보고서에서 “필수 항생제에 대한 내성이 급속도로 증가하며 전 세계 보건 의료에 심각한 위협이 되고 있다”고 경고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 전 세계 감염 사례 6건 중 1건은 항생제 내성균에 의한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대장균과 폐렴간균 내성 위험이 급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들 세균에 감염되면 패혈증, 장기 부전, 심지어 사망에 이를 수 있다. 김 교수는 “2050년 이후에는 항생제 내성균 감염으로 인한 사망자가 암 사망자를 넘을 것이라는 예측도 나온다”고 경고했다.

국내 사정도 다르지 않다. 카바페넴내성장내세균목(CRE) 감염증이 2017년 5717건 발생했는데, 지난해에는 4만2347건으로 7배 이상 늘었다. CRE 감염증은 중증 감염이나 다제내성균 감염증 치료에 주로 쓰이는 카바페넴계 항생제에 내성을 가진 세균이 일으키는 감염이다. 치료가 어렵고 사망률은 26∼75%에 달한다.

의료 현장에서는 이미 내성균의 위협이 현실로 다가왔다. 윤진구 교수는 “내성균 폐렴 환자는 일반 항생제가 듣지 않아 훨씬 강한 항생제를 장기간 써야 하는데, 이 약들은 독성이 강해 간부전 같은 합병증이 생기는 사례가 있다”고 말했다. 치료제가 없는 내성균에 감염되면 패혈증으로 악화해 사망에 이르기도 한다. 김봉영 교수는 CRE 감염 환자 사례를 언급하며 “강한 항생제를 반복적으로 쓰다 신장 기능이 망가져 평생 투석을 해야 하는 환자도 있었다”고 했다. 그에 더해 내성균 감염은 치료 기간을 늘리고 약값을 높여 개인과 사회의 의료비 부담을 가중한다.

항생제 내성 문제를 해결하려면 정책과 현장, 그리고 생활 속 실천이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 정부는 지난해 11월부터 ‘항생제 적정 사용 관리(ASP·Antimicrobial Stewardship Program)’ 시범사업을 시행 중이다. 전담인력이 처방된 항생제의 적정성을 모니터링하고 적정 처방 기준을 마련하며 기관 내 협업체계를 구축하는 등 항생제 오남용을 예방하기 위한 제도다.

의료계는 ASP에 맞춰 대학병원 중심으로 항생제 관리 전담팀을 운영하고 있다. 윤진구 교수는 “의사의 적절한 처방과 더불어 전문가들이 어떤 항생제를 써야 할지, 언제 중단해야 할지 등을 관리팀과 함께 관리하며 항생제 내성을 예방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병원에서는 내성균이 원내에서 퍼지지 않도록 고위험군을 대상으로 항생제 감수성 검사 등을 시행하고, 내성균이 확인되면 즉시 격리한다.

정부·병원·학계·개인 함께 확산 막아야

학계에서는 신규 항생제 개발, 항생제 병용 요법 등 관련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굴의 피(혈림프)에서 기존 항생제 효과를 30배 이상 높이는 물질을 발견한 호주팀 연구, 토양 미생물에서 내성균 성장을 억제하는 항생물질을 찾아낸 국내팀 연구 등이 그 예다. 두 가지 항생제를 조합하거나 항생제 보조제를 사용하는 항생제 병용요법 관련 연구들도 진행 중이다.

개인의 노력도 필요하다. 먼저 감기 같은 바이러스성 질환에 항생제는 효과가 없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김봉영 교수는 “항생제는 잘못 사용하면 자신뿐 아니라 가족의 건강까지 위협한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위생 관리도 빼놓을 수 없다. 항생제 내성은 주로 입원 환자, 중증 환자들에게 많이 발생하는 만큼 병원에서는 되도록 많은 사람의 손이 닿는 물건과의 접촉을 피하고 손을 깨끗이 씻어야 한다. 윤진구 교수는 “병원 내 격리 지침을 잘 지키는 것 역시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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