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허공에서 음성을 듣곤 한다는 미치광이 권력자들은 실은 몇 년 전에 어느 학자가 휘갈겨놓은 낙서로부터 그들의 광기를 흡수하고 있는 것이다.”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일반이론』에서 경제학자의 아이디어가 옳든 그르든 생각보다 큰 영향을 끼친다면서 이와 같이 말했다. 관세가 미국 경제의 만병통치약이라는 돌팔이 아이디어를 논의하려고 한 인용은 아니다. 한국에서 유독 떠들썩했던 4차 산업혁명이라는 뜬구름 아이디어를 버릴 때도 됐다고 생각하다 케인스를 떠올렸다.

발단은 2016년 국내에 번역·출간된 『클라우스 슈밥의 제4차 산업혁명』이었다. 저자 슈밥은 다보스포럼 창립자. 그는 “물리적 기술과 디지털 기술, 생물학 기술이 끊임없이 융합되고 조화를 이루는 4차 산업혁명은 전례 없는 규모와 속도, 범위로 전개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주요국 반응은 시큰둥했다. 독일의 ‘인더스트리 4.0’은 결이 다르다. 한국만 뜨겁게 호응했다. 필자가 2017년 6월 아마존에서 ‘fourth industrial revolution’이 제목에 들어간 책으로 검색했을 때, 슈밥의 책을 포함해 단 두 권만 나왔다. 같은 시점 한국에는 15권이 출간됐다. 국내에서 ‘4차 산업혁명’을 내건 행사가 백화제방하듯 열렸다. 문재인 정부가 봇물을 텄다.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를 구성해 2022년 8월까지 5년간 운영했다. 슈밥 회장이 한국에 고마워할 만했다. 위원회가 낸 굵직한 성과는 알려진 바 없다.
진짜가 나타났다. 생성형 인공지능(AI)이다. 실질적이고 강력하며 빠르고 광범위하게 경제활동을 바꿔놓는 생성형 AI 앞에서 4차 산업혁명은 눈 녹듯 사라지고 있다.
특정 정권 비판은 이 글의 취지가 아니다.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도 말만 많았다. 새 정부는 거창한 융합보다 실질을 장려하기 바란다. 융합을 통한 도약을 정부가 주도한 사례는 극히 드물다.
백우진 경제칼럼니스트·글쟁이㈜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