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주의와 뇌가 관련 있다고? 생물학과 정치학의 과학적 만남[BOOK]

2025-04-18

이데올로기 브레인

레오르 즈미그로드 지음

김아림 옮김

어크로스

도파민은 기분을 좋아지게 하는 신경전달물질로 우리가 보상을 받거나 스릴, 즐거움, 흥분을 느낄 때 방출된다. 신경과학자 레오르 즈미그로드의 연구에 따르면 사고가 매우 경직된 사람들은 뇌의 의사결정 중심인 전전두엽 피질에 도파민이 덜 집중됐다. 그 대신 이들은 즉각적인 본능을 제어하는 중뇌의 선조체에 도파민이 보다 많이 집중되는 유전적 성향을 지니고 있었다.

이게 어떤 의미를 가질까. 즈미그로드는 “사람의 심리적 경직성이 뇌가 도파민을 생성하는 방식과 같은 생물학적 토대에 기반한다면, 굳게 믿는 신념인 이데올로기와 생물학 사이의 연관관계를 이어 주는 경로를 추적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인지과학과 신경과학의 방법론을 활용해 이데올로기적 사고의 기원과 결과를 연구한 최초의 과학자 중 한 사람이다. 그가 지은 『이데올로기 브레인』은 인지 기능 평가와 뇌 스캔 기술을 적용해 이데올로기와의 연관성을 탐구한 독창적인 저술이다.

‘이데올로기’란 용어는 18세기 말 프랑스의 트라시 백작이 그리스어 이데아(관념)와 로고스(연구, 논리, 근거)를 결합해 처음 만들었다. 트라시는 사람들이 어떻게 관념을 갖게 되는지를 이해하고자 했다.

그 후 이데올로기는 많은 개념의 변형을 거쳐 일반적으로 정치적 의견이 한데 모인 신념이란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관념의 과학’이란 뜻으로 출발했을 때와는 달리 지금 이데올로기는 사람의 뇌 구조나 신체와 상관없이 외부의 정치적, 사회적 환경에서 주어지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그래서 보수, 진보, 자본주의, 사회주의, 공산주의, 자유주의, 민족주의, 파시즘 등 온갖 ‘주의’는 인체, 특히 뇌와의 상호 작용보다는 신념의 내용이 중요시 된다.

그동안 대다수 연구자는 이데올로기를 역사적 추세나 사회운동으로 인식했다. 반면, 지은이는 이를 심리 현상으로 파악하는 데 주력했다. 생물학과 정치학을 한데 모으는 일에 관심을 가졌던 지은이는 한발 더 나아가 왜 사람들은 이데올로기적 사고에 빠져드는가에 천착했다. 특히 경우에 따라 타인을 해칠 수도 있고 자신의 목숨을 바칠 수도 있어 그 폐해가 지대한 극단적 이데올로기에 쉽게 빠져드는 사람들의 뇌과학적 특징을 분석하고 여기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집중적으로 연구했다.

경직된 교리를 열정적으로 믿는 것은, 그 교리가 뉴런으로 스며드는 과정이자 우리 몸속으로 퍼져나가는 과정이라고 지은이는 말한다. 이데올로기는 단순히 우리 삶의 외피가 아니라 피부, 두개골, 신경세포로 들어간다는 것. 우리의 뇌는 이처럼 은밀하고도 깊게 이데올로기에 대한 세뇌를 체화하는 법을 배운다.

이념적 성향이 강한 사람일수록 새로운 정보의 수용과 전환에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은이의 카드 분류 인지테스트에서도 보듯 단순한 규칙의 변화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일수록 정치적, 종교적 극단주의에 빠져 있는 확률이 높았으며, 역으로 극단주의에 물든 사람일수록 인지적으로 경직되어 있었다.

현재 한국에선 좌우 이데올로기 진영의 극한 대립으로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대선을 한 달여 앞두고 극단적 분열과 대립은 한층 극심해질 것이다. 이 과정에서 극단주의자들이 설칠 공간은 더욱 넓어질 것이다.

우리 자신을 비춰볼 수 있는 거울일 수도 있는 이 책은 개인들이 극단적인 교조적 이데올로기에 매몰되지 않고 자유의지에 따라 합리적으로 조율할 수 있는 사고의 유연성을 가질수록 더 안정된 사회가 될 수 있다고 시사한다. 우리를 둘러싼 정치적, 사회적 이데올로기 환경이 열악하기는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개인들이 자신을 더 깊게 성찰하고 비합리적 규칙과 권위에 저항하는 능력을 키워나가야 극단주의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이 책은 권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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