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만난세상] 600살 대왕소나무의 죽음

2025-02-13

“이런 말 하긴 그렇지만 별짓 다 해봤습니다.”

경북 울진 소광리 대왕소나무 고사에 대해 산림청 관계자에게 전화해 몇 가지 묻자 이런 답이 돌아왔다. 수령이 600년 넘는 것으로 추정되는 대왕소나무가 고사했단 소식이 전해진 건 지난 설 연휴 중이었다. 2014년부터 대왕소나무를 보호수로 지정해 관리하던 산림청은 지난해 7월 고사 징후를 확인하고 반년 가까이 ‘긴급조치’를 진행했지만 고사를 막지 못했다.

전문가들은 대왕소나무 고사 원인으로 이상 고온과 가뭄에 따른 수분 스트레스를 지목했다. 수분 스트레스는 수목이 토양에서 충분한 수분을 흡수하지 못해 발생한다. ‘그게 이유라면 인위적으로 물을 공급할 경우 고사를 막을 수 있었던 것 아닌가.’ 이런 모자란 질문을 했더니 산림청 관계자가 하소연하듯 그간 했던 물주머니 달기, 물길 만들기, 물 직접 살포 등 ‘별짓’들을 늘어놨다.

밤 늦게 연락이 닿은 국립산림과학원 박고은 연구사는 산림청 측 긴급조치가 고사를 막지 못한 데 대해 ‘결과론적 설명’이란 걸 단서로 달며 “고사 징후가 확인됐던 지난해 7월에 이미 대왕소나무가 어떤 임계점을 지난 상태였던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이미 대왕소나무가 물을 줘도 뿌리부터 잎까지 수분을 이동시킬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마른 스펀지가 물을 빨아들이듯, 수분은 수목 체내에서도 건조한 곳으로 이동한다. 이 원리로 수분이 뿌리부터 잎까지 중력을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 것이다. 다만 이게 잘 작동하려면 하나의 조건이 있다. 잎에 있는 미세한 구멍인 기공이 충분히 열려 상대적으로 건조한 대기와 맞닿아 있어야 한다. 이래야 수목 내 수분이 잎까지 이동하고 기공을 거쳐 수증기가 되는 증산작용이 일어난다.

대왕소나무는 고사 징후가 확인된 시점에 이미 기공 개폐 자체가 원활하지 않았을 것이란 설명이다. 이 또한 결국 기후변화에 따른 이상 고온과 가뭄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체내 수분을 건조한 대기에 빼앗기지 않기 위해 대왕소나무가 기공을 닫은 것인데, 그 상태가 장기간 지속되면서 ‘기본값’이 됐고 그 결과 물주머니나 물길이 소용이 없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런 설명을 늘어놓는 건 대왕소나무 고사 기사에 달린 ‘600년이면 충분히 살았네’ 류의 댓글 때문이다. 죽음 앞 무심한 태도를 지적하고 싶은 게 아니다. 대왕소나무 고사라는 ‘손가락’이 가리키는 ‘달’을 다시 한 번 짚어놔야 하겠다는 마음이 들어서다.

박 연구사는 이런저런 부족한 질문에 답하다 “모든 걸 기후변화로 퉁치는 것 아니냐는 시선이 있을 수 있는데 한반도의 모든 게 기후변화의 압력 아래 있는 게 분명하고 그중 (대왕소나무처럼) 특히 취약한 나무들이 먼저 죽으면서 신호를 보낸다”고 했다. 대왕소나무가 있는 울진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 내에선 금강소나무의 집단 고사가 2015년부터 확인되고 있다.

대왕소나무의 죽음에 대해 묻고 들으며 다시 한 번 확신한 건 두 가지다. 기후위기는 이미 우리 곁에 와 있다는 것, 그리고 우리가 더 늦기 전에 어떤 ‘별짓’이든 해봐야 한다는 것. 신호가 쏟아진 지 오래이지만 우리가 어쩐지 느긋하다고 느끼는 건 기자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김승환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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