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말 하긴 그렇지만 별짓 다 해봤습니다.”
경북 울진 소광리 대왕소나무 고사에 대해 산림청 관계자에게 전화해 몇 가지 묻자 이런 답이 돌아왔다. 수령이 600년 넘는 것으로 추정되는 대왕소나무가 고사했단 소식이 전해진 건 지난 설 연휴 중이었다. 2014년부터 대왕소나무를 보호수로 지정해 관리하던 산림청은 지난해 7월 고사 징후를 확인하고 반년 가까이 ‘긴급조치’를 진행했지만 고사를 막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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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대왕소나무 고사 원인으로 이상 고온과 가뭄에 따른 수분 스트레스를 지목했다. 수분 스트레스는 수목이 토양에서 충분한 수분을 흡수하지 못해 발생한다. ‘그게 이유라면 인위적으로 물을 공급할 경우 고사를 막을 수 있었던 것 아닌가.’ 이런 모자란 질문을 했더니 산림청 관계자가 하소연하듯 그간 했던 물주머니 달기, 물길 만들기, 물 직접 살포 등 ‘별짓’들을 늘어놨다.
밤 늦게 연락이 닿은 국립산림과학원 박고은 연구사는 산림청 측 긴급조치가 고사를 막지 못한 데 대해 ‘결과론적 설명’이란 걸 단서로 달며 “고사 징후가 확인됐던 지난해 7월에 이미 대왕소나무가 어떤 임계점을 지난 상태였던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이미 대왕소나무가 물을 줘도 뿌리부터 잎까지 수분을 이동시킬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마른 스펀지가 물을 빨아들이듯, 수분은 수목 체내에서도 건조한 곳으로 이동한다. 이 원리로 수분이 뿌리부터 잎까지 중력을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 것이다. 다만 이게 잘 작동하려면 하나의 조건이 있다. 잎에 있는 미세한 구멍인 기공이 충분히 열려 상대적으로 건조한 대기와 맞닿아 있어야 한다. 이래야 수목 내 수분이 잎까지 이동하고 기공을 거쳐 수증기가 되는 증산작용이 일어난다.
대왕소나무는 고사 징후가 확인된 시점에 이미 기공 개폐 자체가 원활하지 않았을 것이란 설명이다. 이 또한 결국 기후변화에 따른 이상 고온과 가뭄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체내 수분을 건조한 대기에 빼앗기지 않기 위해 대왕소나무가 기공을 닫은 것인데, 그 상태가 장기간 지속되면서 ‘기본값’이 됐고 그 결과 물주머니나 물길이 소용이 없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런 설명을 늘어놓는 건 대왕소나무 고사 기사에 달린 ‘600년이면 충분히 살았네’ 류의 댓글 때문이다. 죽음 앞 무심한 태도를 지적하고 싶은 게 아니다. 대왕소나무 고사라는 ‘손가락’이 가리키는 ‘달’을 다시 한 번 짚어놔야 하겠다는 마음이 들어서다.
박 연구사는 이런저런 부족한 질문에 답하다 “모든 걸 기후변화로 퉁치는 것 아니냐는 시선이 있을 수 있는데 한반도의 모든 게 기후변화의 압력 아래 있는 게 분명하고 그중 (대왕소나무처럼) 특히 취약한 나무들이 먼저 죽으면서 신호를 보낸다”고 했다. 대왕소나무가 있는 울진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 내에선 금강소나무의 집단 고사가 2015년부터 확인되고 있다.
대왕소나무의 죽음에 대해 묻고 들으며 다시 한 번 확신한 건 두 가지다. 기후위기는 이미 우리 곁에 와 있다는 것, 그리고 우리가 더 늦기 전에 어떤 ‘별짓’이든 해봐야 한다는 것. 신호가 쏟아진 지 오래이지만 우리가 어쩐지 느긋하다고 느끼는 건 기자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김승환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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