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년일보 】 최근 국내 대표격 보일러업체 귀뚜라미그룹에 대한 정부기관의 상반(?)된 행보가 적잖은 빈축을 사고 있다.
공정위는 최근 단가 절감을 위해 하청업체의 기술을 중국 업체에 빼돌린 혐의로 귀뚜라미에 대해 거액의 과징금을 부과하고, 검찰에 고발조치까지 한 반면에 산업통상자원부(이하 산자부)는 귀뚜라미를 품질경쟁 우수기업에 선정(이하 품질우수기업)하면서 적절성 논란이 제기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정부가 기술유출 혐의로 제재를 가하고 검찰에까지 고발, 수사를 의뢰한 기업에 대해 품질경쟁 우수기업으로 선정한 것이 좀 처럼 납득할 수 없는 만큼 뒷말이 나올수 밖에 없을 것이란 분석을 내놓고 있다.
무엇보다 공정위가 하청업체의 기술을 중국에 유출한 혐의로 제재 결과를 공표한 이후 일각에서는 불매운동 등의 주장도 제기되는 한편 야당의 당 대표까지 나서 중소기업의 기술유출 사안에 대해 강하게 질타하는 등 겨울철 성수기를 앞둔 귀뚜라미의 경영 행보에 적잖은 부담이 될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27일 공정위 및 가전업계 등에 따르면 최근 공정위가 귀뚜라미그룹이 하청업체의 기술을 중국에 유출한 혐의로 제재를 받은 가운데 이어 산자부는 되레 귀뚜라미그룹의 계열사를 품질우수기업으로 선정, 뒤늦게 적절성 시비 논란 등 빈축을 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8일 공정위는 하도급법 위반 혐의로 귀뚜라미에 시정명령과 과징금 9억5천400만원을 부과하고 법인을 검찰에 고발하기로 결정했다. 또한 공정위는 귀뚜라미그룹의 지주회사인 귀뚜라미홀딩스 법인도 검찰에 고발한다는 방침이다.
귀뚜라미측은 하청업체로부터 납품받던 부품의 구매 단가를 줄이기 위해 부품 기술자료를 중국 등 다른 업체에 전달, 유출한 혐의를 받고 있다.
공정위에 따르면, 귀뚜라미는 지난 2020년 7월∼2021년 3월에는 보일러의 온도 등을 감지하는 센서를 더 싸게 납품 받기 위해 기존 하청업체의 기술자료 32건을 중국의 경쟁업체에 전달한 것으로 드러났다.
공정위 한 관계자는 "기술자료를 받은 중국업체 등은 개발에 성공해 제품 일부를 실제로 귀뚜라미에 납품하기도 했다"면서 "이는 기술 유용과 관련한 매우 중대한 위반 행위"라고 말했다.
반면, 기술유출에 대해 심각성을 제기, 강한 제재를 결정한 공정위의 판단과 달리 3일 후인 지난 21일 산자부 산하 국가기술표준원이 주최하고 한국표준협회가 주관한 '제50회 국가품질경영대회'에서는 귀뚜라미그룹의 냉동공조 계열사인 귀뚜라미범양냉방과 센추리를 품질 우수기업으로 선정했다.
품질 경쟁력 우수기업이란, CAS(Quality Competitiveness Assessment System) 평가지표를 활용하여 기업 스스로 자체 평가한 품질경영 시스템 및 기법 관련 진단내용을 전문가가 확인하고 품질혁신 및 고객만족 그리고 경영성과가 탁월한 기업을 선정, 산업계의 지속적인 품질경영 활동을 촉진·지원하는 제도다.
심사기준은 품질시스템을 비롯해 전략 및 관리시스템, 기업문화 및 인재육성, 고객 만족 그리고 신뢰성을 주요 요건으로 제시하고 있다.
품질 우수기업에 선정되면 조달청 '납품검사 면제물품 선정공고’에 따라 조달물자 납품검사가 면제되는 혜택을 부여 받는다. 또한 산자부 장관으로부터 선정증서 및 선정패도 수여된다. 앞서 귀뚜라미의 범양냉방의 경우 17년 연속 품질경쟁력 우수기업에 선정되는 한편 지난 2018년 명예의 전당에도 이름을 올리는 등 기술력을 인정 받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번 정부의 엇박자 행보를 두고 때 아닌 잡음이 흘러나오고 있다. 즉 불과 며칠 간격을 두고 하청업체의 기술을 국외로 유출해 공정위에 제재를 받은 기업을 또 다른 정부 부처가 품질경쟁 우수기업으로 선정해 포상한 것이 적절했냐는 논란이 제기되고 있는 셈이다.
가전업계 한 관계자는 "제재와 포상을 받은 사업 부문이 다르긴 하나, 기술유출은 중대한 범죄 사안인데 이같은 행위를 자행한 (귀뚜라미)그룹의 계열사에 정부가 포상한 것이 과연 적절한 것인지 의아스러운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학계 일각에서도 정부의 엇박자 행보에 쓴 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주최측의 명백한 실책"이라며 "상을 수여하기전 공정위 제재가 우선됐는데 담당자가 이를 제대로 검토하지 않아 국가 기관간 엇박자가 초래된 것"이라고 질타했다.
이어 "이는 소비자들 사이에서 해당 기업인지, 좋은 기업인지를 두고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행사를 주최한 한국표준협회(이하 표준협회)측은 시상에 대한 적절정 논란과 관련 모니터링이 부족했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다. 다만 수상 철회는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표준협회에 따르면 품질경쟁 우수기업 선정과 관련 제한 규정을 두고 있다. 우선 선정 제한 및 철회 요건으로 '수사 중이거나 각종 언론보도 등으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켜 선정이 합당치 않다고 판단되는 기업'은 선정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다. 또한 선정 유효기간 중 물의가 일어난 기업에 대해서는 심의를 거쳐 선정을 철회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표준협회 한 관계자는 "포상이 결정된 시기는 지난 10월 중순으로, 당시에는 공정위 제재 소식을 알 수 없었다"면서 "솔직히 24시간 모니터링까지 하기에는 힘들다"고 해명했다.
이어 "다만 국무총리급의 정부포상 지침에서 사회적 무리를 판단할 때 '최근 2년이내 3회 이상 고발 또는 과징금을 받은 단체'를 제한하고 있는데 해당 제도는 정부포상에도 포함되지 않고 엄밀한 의미에서 상은 아니다"라며 "이 제도는 품질에 대한 인정이지 윤리경영 여부를 평가하는 것은 아니나, 필요하다면 검토해보겠지만 현재까지 (시상) 철회를 검토한 바는 없다"고 덧붙였다.
일각에서는 공정위의 기술유출에 대한 제재 발표 이후 귀뚜라미에 대한 여론이 심상치 않다는 점을 제기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불매운동 주장까지 제기되고 있는 등 심상치 않은 분위기도 감지되고 있다. 정치권내 중소기업의 기술 유출 사태에 대한 질타를 두고 귀뚜라미의 기술유출 사태와 무관치 않다는 분석도 내놓고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 20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중소기업의 기술 침해는 기업 생존과 직결된다"면서 "이런 행위는 시장 질서를 무너뜨리는 행태로 엄벌해야 한다"고 질타했다.
한편 귀두라미그룹의 최진민 회장은 무상급식 찬반 논란이 일던 지난 2011년 회사 게시판에 "빨갱이", "좌파" 등 자극적인 글을 남겨 논란이 된 바 있다.
당시 최 회장은 게시판에 "빨갱이들이 벌이고 있는 포퓰리즘의 상징, 무상급식을 서울 시민의 적극적 참여로 무효화시키지 않으면 이 나라는 포퓰리즘으로 망하게 될 것이며 좌파에 의해 완전 점령당할 것"이라고 저격했다.
이어 '공짜근성=거지근성'이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어린 자식들이 학교에서 공짜 점심을 얻어 먹게 하는 건 서울역 노숙자 근성을 준비시키는 것"이라고도 언급, 적잖은 논란을 초래했다. 이후 논란이 확산되자 최 회장은 그 해 10월 그룹 회장직에서 물러났다가 지난해 11월 지주사 대표이사로 복귀했다.
【 청년일보=최철호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