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널View] 세상 모든 장애인의 평범함을 위해 전진한다 강귀만 공인중개사

2025-03-22

부동산이라는 단어는 욕망의 대상이면서 부정적이고 부끄러워해야 하는 어떤 대상으로 취급되기도 한다. 그리고 우리는 월세든 전세든 매매든 부동산 계약 과정의 어딘가에 부동산 중개인의 수작이 들어가 있다는 전제를 두곤 한다. 그러나 울산저널이 만난 강귀만 대표는 시민운동, 사회운동으로 모든 경제 의무를 부인에게 떠넘겼다는 죄책감, 둘째 아들의 장애 돌봄을 전담하기 위한 가장으로서 최선의 의무감으로 선택한 최선의 결과치다.

그는 사람들에게 인정받기를 희구한다. 그리고 그 안에서 삶의 힘을 얻고 만족감과 행복감을 얻는다. 아들의 장애에 관해 장애인과 그 가족과 사회가 장애인을 장애인 아닌 사람들과 똑같은 존엄성을 가지고 인간 세상에 자연스럽게 어울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는 정작 맏아들과 이에 관한 어떤 대화를 한 적이 없다. 둘째 아들을 위해 세상에 소리쳐 오면서도 첫째 아들과는 공유하지 못하고 있다.

두렵기 때문일 것이다. 괜찮을 거야, 라고 스스로 위안을 삼으며 외면했던 수많은 기회와 아들의 피딱지 앉은 마음을 확인하는 게 어느 날 문득문득 덜컥 겁이 났을 것이고, 아들에게 미안한 그 엄청난 감정들을 확인하며 감당하지 못할지도 모를 자기 마음이 두려웠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지금까지 해왔던 장애인의 평범한 삶을 위한 운동을 지속할 것이고, 조만간 마주하게 될 아들과의 대화와 고마움을 전할 부인과의 시간에서 자기 마음을 공유하게 될 것이다. 그의 용기와 가족에 대한 사랑, 장애인을 위한 노력을 응원한다.

※ 2024. 5. 22. (수) 오전 11시부터 진행한 강귀만 님의 인터뷰를 기사와 함께 영상으로도 소개한다.

부동산, 우리 삶과 분리될 수 없는 것

Q. 간단하게, 아니면 길게 소개 부탁한다.

삼성공인중개사무소 소장으로 있다. 울산에서 좀 오래 살았다. 부동산 하기 전에는 학생들 가르친 적도 있고 이런저런 일을 한 적도 있지만, 전적으로 부동산만 한 건 7, 8년 정도 된다.

Q. 울산저널에 칼럼을 쓰고 있다. 어떤 관점으로 쓰는지 말씀 부탁한다.

어떤 관점이라기보다는 처음 쓰게 된 계기가 아이 문제로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학부모 연합, 학교 소식지 등에 글을 썼다. 누군가의 소개로 울산저널에도 이런 글을 써달라고 해서 쓰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부동산 관련 금융에 대한 정책의 혼선이 좀 답답해서 우화 식으로 한두 편 싣기 시작했다. 이제 정기적으로 한두 달에 한 번씩 실어주기를 원했고, 나도 글 쓰는 게 즐겁기도 해서 계속 쓰게 됐다.

보통 부동산 경제 이야기하면 돈 되는 부동산이 어디 있느냐. 제일 많이 받는 질문이 아파트값이 오르느냐 내리느냐, 지금 사야 해 말아야 해, 뭐 이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많다. 나는 우리 삶과 부동산이 분리될 수 없는 것, 그러니까 경제 정의와 자유 경쟁적인 측면에서 보면 부동산이 투기의 대상이고 경제를 왜곡시키는 요소가 있다, 라고 이야기를 하지만 그걸 별개로 떨어트려 놓고 경제를, 사회를, 우리 삶을 이야기할 수 없는 것이라서 부동산에 대한 기준은 누군가 제시해 줘야 하지 않겠느냐.

내가 제시하지는 못해도 꾸준히 질문을 던지고 싶다. 경제 정책을 만들 때 또는 부동산 정책이나 원론을 만들어야 할 때에 나 같은 사람이 이런 질문이 있는데 거기에 답할 수 있는 정책이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 나름대로는 그런 생각으로, 그냥 질문한다는 관점으로 글을 쓰고 있다.

내 아이는 발달장애인이고, 이와 관련한 이야기들을 글로 쓰고 싶었다

Q. 학부모 칼럼을 기회가 있을 때마다 썼다고 했다. 그래야만 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

내 아이가 발달장애가 있어서 장애인 문제를 썼다. 보통 장애인 문제나 그 학부모 문제를 쓸 땐 우리 아이가 당한 억울한 것, 소외, 불평등, 이런 이야기들을 많이 하는데 그게 틀렸다는 것이 절대 아니고, 필요 없는 이야기도 아니고, 그런 이야기를 쓰는 사람들이 많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다. 나는 장애 문제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했다.

많은 경우에 장애인들을 대하거나 장애 자녀들을 대하는 그들의 모습이, 모르니까 이렇게 하는 게 선인 줄 알고 하는 행동이 많다고 생각해서 그들을 이해시킬 수 있는, 혹은 장애인 부모들이나 장애인들 입장에 그들이 우리에게 무례하거나 실수한 것 같지만 그게 꼭 적대적인 감정이어서 그런 건 아닐 수 있지 않겠나.

특히 학교 선생님들. 우리가 볼 때는 부족하지만 학교 교육 현장에서 최소한 그분들의 소명은 믿어주자. 그리고 제도적으로 잘못된 것이 있으면 같이 고쳐 가야지, 말단 직원으로 있는, 정말 피라미들끼리 서로 싸우듯이 선생님들이나 학교 당국을 원망하기 전에, 제도와 전체적인 그림들, 우리가 만들어야 하지 않겠나. 그런 관점에서 하고 싶은 말들이 있어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글을 쓰기 시작했다.

맏아들은 웹툰 작가, 팝송 관련 이야기를 쓰고 있다

Q. 아이들은 몇이고 성별은 어떻게 되나?

아들이 둘이다. 큰아들은 지금 다 커서, 96년생이고. 터울이 있다. 작은아들이 이제 2003년생. 7년 터울이 있는데 작은 아이가 발달장애고, 큰아이는 부산에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웹툰을 그리고 있는데 열심히 그리고 연재도 하고 이렇다.

Q. 웹툰이라면 그림 쪽, 아니면 스토리텔링, 아니면 둘 다?

스토리텔링으로 준비하는 것 같다. 장면 장면의 컷을 그리는 일도 했는데 지금은 작가의 길을 가고 있는 것 같다. 지금 하고 있는 게 팝송, 그 부분으로 지금 인터넷에 연재하고 있다.

Q. 굉장히 희귀한 주제인데?

희귀한데 재미가 없어서. 상업적이지는 않은 거 같은데 큰 애가 주관적으로 작품을 만들어 가고 있다.

Q. 둘째 아들이 96년생이면 이제 스물여덟 살인가?

큰아들이 96년생이고, 둘째 아들은 2003년생이니까 지금 만 20세 됐고, 이제 스물한 살. 고등학교 졸업한 나이다.

발달장애는 어릴 때 구별하기 어렵다, 그리고 부모는 인정하기 어렵다

Q. 둘째 아드님 얘기 좀 해보자. 2003년생이면 이제 스물하나. 처음에 태어났을 때 어땠나?

발달장애 특성상 어렸을 때 발견하기가 좀 힘들다. 특히 우리 아이 같은 경우는 보통 복합 장애라고 그러는데, 발달장애 아이들이 보행이나 그다음에 습성이나 습식이나 이런 부분들이 같이 장애가 오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우리 아이 같은 경우는 뒤집기나 일어나기나 걷는 거 이런 게 남들보다 빨랐다. 오히려 발육은 빨랐지. 아주 빠른 건 아닌데 평균보다. 돌 때 걸어 다녔으니까. 그래서 이 아이가 장애가 있을 것이라고는 판단을 못 했고.

언어가 늦었지. 어린이집에 갔는데 적응이 힘들고 언어가 많이 늦고 그러면서 행동이 다른 아이들하고 좀 차이가 있고. 모든 장애 부모가 겪는 과정인데. 그랬을 때 전문가의 견해를 들어보는데 아이가 어리면 말 그대로 이게 발달장애잖아. 발달장애는 발달이 늦으면 또래의 아이들과 (비교했을 때) 얘가 발달이 얼마나 지체돼 있는지 평가될 것 아닌가.

제 또래가 세 살, 네 살이야. 그러면 암만 차이 나 봐야 2년, 3년밖에 차이가 나지 않지. 그러니까 크게 구분이 되지 않아, 어렸을 때는. 그러니까 그 정도 기준을 가지고 어떤 전문가들은 그런 것 같다, 어떤 전문가는 아닌 것 같다, 좀 더 기다려 봐야 한다. 이랬을 때 부모 마음은 아닌 쪽으로, 정상적인 걸로 가지.

그런데 나중에 모든 전문가가 그렇다, 라고 평가를 내릴 때, 그때쯤이 한 다섯 살, 여섯 살 된 것 같아. 아, 조금 더 늦었겠다. 한 여섯 살, 일곱 살. 학교 들어가기 전에. 그때 (또래보다) 좀 늦으니까 학교에 가는 걸 1년 늦게 유예해 보고 그런 과정인데. 그때쯤에는 모든 전문가가 발달장애가 맞다, 자폐가 맞다, 라고 판단을 했던 것 같아. 그럼에도 부모는 끝까지 그걸 인정을 못 하지.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하는 어떤 반응들. 똑같아.

모든 부모가 처음에는 부인하고, 나중에는 왜 나에게, 그다음에는 나의 자책감, 죄의식이 와. 우리, 나 때문에 우리 애가, 내가 성장 과정에, 임신 과정에, 육아 때, 우리 집안의 어떤 문제? 이런 거에 대한 자책감이 들기 시작하지. 그런 심리적 과정을 거쳐서 그다음에 인정하게 되고. 그런 과정을 겪었던 것 같아.

어렸을 때의 언어장애, 특별한 고집, 밤에 잠을 자지 않는 거. 그리고 자기만의 주어진 어떤 패턴적인, 딱 정리하는 거, 이런 것들이 보였었지.

Q. 방금 말한 건 발달장애 쪽이 아니라 자폐 쪽 아닌가?

발달장애라고 부른다, 자폐를. 그러니까 발달장애의 한 부분인데 병명이 그렇게 나온다. 발달장애 괄호 열고 자폐성, 이렇게. 지금은 발달장애 이러면 자폐를 이야기한다. 발달장애가 아까 말했듯이 학습 능력, 사회 능력뿐만 아니라 신체적인 발달(장애)도 함께 있다. 발달장애 자폐 아이들이 보행이나 습식이나 이런 데에 장애가 같이 오는 경우가 많이 있다. 그래서 전체를 틀어 발달장애라고 하고, 스펙트럼이 좀 넓다.

내 아이의 장애는 극복의 문제가 아니다, 그저 사회에 적응할 수 있게 훈련을 시킬 문제일 뿐

Q. 내 몸에 흉 하나 져도 평생 스트레스받는 건데, 감히 짐작할 수는 없으나 부인과 어떻게 극복했나?

이런 기회를 통해서 일반인들에게 하고 싶은 당부 혹은 지식은, 우리 집 아이가 장애가 있습니다, 아이가 아픕니다, 발달장애입니다, 라고 이야기하면 열이면 열 명, 같이 다 방금 말했듯이 측은히 여긴다. 아이고 어떡하지, 힘들어서?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나는 그런 일이 없어서 다행이다, 라는 생각도 하는지는 모르겠는데, 장애 문제를 우리도 해결하고 극복해야 하지만 일반인들이 우리를 대할 때의 훈련도 필요하다.

예를 들어서, 뚱뚱해서, 눈이 나쁘고 아프고, 책만 좀 오래 보면 모니터만 좀 보면 집중할 수가 없어요, 라고 할 때 눈이 좋고 다이어트에 대한 아무 걱정이 없다손 치더라도 이걸 문제시하지는 않는다. 넌 다이어트에 문제가 있고 시력에 문제가 있는 그런 사람이야, 하면서 같이 있던 거잖아.

장애인 문제도 내가 한쪽 다리를 못 쓴다든지, 내 옆에 있는 누가 장애인이라고 한다는 것이 내 삶의 일부다. 뚱뚱하게 살든지, 말을 더듬는 사람이 있고, 머리가 빠진 사람이 있고, 눈이 나쁜 사람이 있고, 내가 아는 동료 중에 한쪽 귀가 들리지 않는 사람이 있다. 자기는 조금 불편하지만 나는 모르지. 그래, 너는 한쪽 귀가 안 들리는구나, 이쪽에서 얘기하다가 잘 못 들으면 저쪽 가서 얘기를 해주고. 어디 앉을 때 방향을 이렇게 해주는 정도? 그냥 자기네들 문제다.

우리 집에 장애인이 없어요. 그럼, 그 집에 아무 문제가 없나? 빚이 있을 수도 있고, 부부 관계가 문제일 수도 있고. 누구든지 문제를 가지고 살아가는 같은 삶의 형태지.

오히려 나는 이렇게 반문해 본다. 사춘기. 소위 말하는 중2병 하나도 없었다. 지금도 엄마하고 나하고 뽀뽀하고 품에 안기고 이런다. 하는 짓이 꼭 애 같지, 다 큰 앤데. 우리 애가 나한테 거짓말을 한 적이 한 번도 없다. 사실은 자폐 발달장애 애들이 거짓말을 할 수 있다고 하면 얘는 치료가 다 된 거다. 거짓말을 한 번 하려면 얼마나 논리적이어야 되고, 거기에 동원되는 모든 감정이라는 게 사회성, 클수록 중학생 고등학생이 되면 내가 거짓말할 때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하고, 이것까지 다 생각해야 한다. 우리 아이들은 거짓말을 안 한다.

극단적으로 이런 예를 드는데, 삶이 다양하지 않나. 그래서 우리도 이 장애를 극복하고 사회에 적응할 수 있는 훈련을 최대한 시켜야겠지. 그런데 이 사회 공동체는 장애인만 살아가는 건 아니다. 그러면 일반인도 장애인을 대할 때 훈련이 필요하다고 보는 거지.

안경 쓴 사람, 심지어 그 사람이 목발을 짚었다손 치더라도, 눈이 나쁘니까 필요한 안경을 썼듯이 다리가 불편하니까 목발을 짚었다, 휠체어를 탔다, 라고 해서 공감할 수 있는. 지하철에 장애인 이동 문제 때문에 다툼이 났을 때 여러 가지 견해가 있었지만, 경제성의 논리를 따지고 효율성도.

예를 들면 여기에 수만 명이 지나가는데 그 휠체어 시설이 필요한 건 한 명 두 명이다. 수만 명의 한 명 때문에 그 시설이 필요하냐. 그렇게 우리가 (시간이) 지연돼야 하느냐고 이야기할 때 내가 어떤 표현을 썼냐면, 등산로에 로프를 걸어 놓지 않고 계단을 걸어 놓지 않아도 암벽 타서 올라가는 사람이 있다. 암벽에 앵커를 박아서 밧줄을 타고 올라갈 수 있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등산로를 만들지 않아도 된다면 이 산은 앵커를 박아서 올라갈 줄 아는 사람들만이 가지는 거고, 우리가 같은 산을 가지려면 등산로도 준비하고 때로는 케이블카도 준비하고. 그것이 더 경제적이라서 그러느냐. 누군가는 계단이 필요한 사람이고, 로프가 필요하고 손잡이가 필요한 사람이 있어서 만들었듯이 이곳에 휠체어를 쓰는 사람이 필요하다, 만들어야 한다.

그것과 이것이 다르다. 그러나 틀린 것은 아니지 않나? 그러니까 다르다는 게 우리가 다양하게 살아가니. 아이고 얼마나 힘드시겠어요, 그거 어떻게 견뎠어요, 앞으로 어떻게 해요, 라는 질문보다는 정서적으로 그대로 받아주는 것, 그게 일반인들이 가져야 할 어떤 훈련 아니겠나. 쉽지는 않겠지만.

예를 들어서 우리 애가 식당에서 소리를 냈단 말이야. 쟤는 그런 애야, 라고 해서 안 쳐다볼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런데 이상하니까 어? 하니까 한번 볼 수는 있겠지만 계속 본단 말이야. 아무렇지도 않게 보지만 다양하다는 것에 대해 훈련이 안 돼서, 그 경험에 대해 가르침이나 교육이 안 돼서 나타나는 것이지 않겠느냐, 이렇게 얘기한다.

장애인을 대하는 일반인들의 생각과 태도도 교육이 필요하다, 비교하지 말고 판단하지 말고

Q. 어떻게 극복했냐는 앞의 질문은 아이가 장애인이라는 사실을 비극으로 보는 관점이 아니라 아이가 장애 판정을 받았을 때 아니길 바랐던 엄마, 아빠의 입장을 의미한 것이었다.

장애인 부모회, 제일 가깝기는 우리 아이가 특수학교에 다니니까 특수학교 학부모들하고의 교류. 비슷한 감정을 교류한다. 그 속에 있을 때 편한 건 바로 그런 거다. 우리 아이의 장애 모습을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누가 특별히 누구를 더 불쌍히 여기지도 않는다. 그냥 우리 애 이래, 오늘 우리 애가 왜 이렇게 해서, 그러면 야~ 웃기도 하고, 어, 그러네! 그러고 끝낸다. 누가 평가하지도 않고 판단하지도 않는다. 그게 좋다.

그럼에도 그 속에서 비교가 있다. 이게 웃긴 게, 밖에서 보면 다 똑같을 것 같지만 그 안에서 보면 조금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예를 들어서 다운증후군, 발달장애, 그다음에 뇌성마비 이렇게 있으면 뇌성마비 애들은 몸은 못 움직이는데 의사소통이 원활하다. (발달장애인) 우리 애는 몸은 자유로운데 의사소통이 안 되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잖아. 그러면 우리는 저기가 부러워. 말은 통하잖아. 몸은 못 움직이지만. 휠체어 끌고 가면 자기가 원하는 거 싫은 거 얘기하잖아. 얘는 원하는 거, 싫은 거 얘기를 안 해. 근데 저쪽에서는 그게 부러운 거지. 저 혼자 펄쩍펄쩍 뛰어다니는 거. 평생 내가 기저귀를 갈아줘야 하는 거 하고 제가 알아서 대소변 하면서 움직이는 거, 저게 부러울 수 있지.

근데 그 속에서 서로 훈련되지 않으면 비교하고 순위를 매기고 우열을 가리기 시작하면 그 안에서도 힘들지. 그러니까 우리 사회에서도 애들한테 비교하지 않고 판단하지 않으면 다 행복할 수 있는 애들인데 우리 애들을 힘들게 하는, 일반 애들은 비교하고 판단하고 평가하니까 문제가 되고 싸우기 시작하잖아.

우리 장애 문제도 장애 안에서도 그렇고 장애가 아닌 일반 아이들의 모습에서도 그렇고, 또 이게 합쳐진 모습 속에서도 판단하고 비교하고 평가하는 거 빼고 그냥 우리 있는 대로 이렇게. 세상에 특별히 잘생겨야만 살아가는 것도 아니고. 잘생기면 배우하고 모델 하는 직업으로 갈 테고, 그렇지 않고 평범하게 살아도 자기 삶의 몫이 다 있으면서 살 수 있듯이 궁극적으로 우리가 장애 문제 해결을 위해 편견부터 없애야 하지 않겠냐, 이렇게 생각한다.

첫째 아들에게 동생에 관한 이야기를 한 번도 물어보지 못했다…

Q. 첫째 아들은 한창 사춘기에 접어들 때 동생이 장애라는 걸 알았다. 애는 괜찮나? 엄마, 아빠와 같이 초월했나?

한 번도 못 물어봤다. 한 번도 못 물어봤다…. 그러니까 지금까지도 못 물어보고 있다. 이런 마음이 있거든. 나이 차이도 좀 있고. 언젠가는 우리 부모가 가고 가면 네가 동생을…. 그런데 한 번도 얘기해 보지 못했어. 어떻게 좀 네가 책임, 어떻게 좀 되겠니? 이거 못 물어봤고.

혹시 우리가 작은 애 때문에 신경 쓰는 걸로 네가 상처가 있냐, 혹은 너한테 소홀함이나 이런 게 있느냐, 라는 이야기, 혹은 네가 네 동생의 장애 문제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하니? 라는 거에 대해서 솔직히 못 물어봤어. 대화를 해보지는 못했어. 그냥 속으로 괜찮겠지, 라고 생각을 하고 싶어.

Q. 첫째 아들이 웹툰 작가라고 했는데 이러한 서사가 웹툰에서도 많이 다뤄지고 있어서 물어본 거였다. 첫째 아들이 막내아들에게 미안함이 있을 수 있겠다.

있지. 좀 못했다 싶은 게 있으니. 숙제이기도 할 거다. 어느 순간에는 제가 솔직하게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 이해하겠지.

근데 이제 내 입으로 양해 구할 건 구하고 미안하다고 할 때는 미안하다는 거를 이야기해야 하겠지. 그런데 아직까지는 아… 그거 있잖아. 뚜껑 열면, 성적표 받으면 분명히 낙제야. 내가 알잖아. 이거 이렇게 열기가 뭐 그럴 것 같은 그런 심정이라고 그럴까. 아직까진 우리 큰아들하고 그 부분에 대해서 솔직한 감정을 나눠보지 못했다.

부인과 아들들에게, 그저 미안하고 그저 고맙다

Q. 말없이 같이 있어 주면서 격려의 한마디 해주는 것도 엄청나게 위안이 된다. 기회를 가져보는 게 어떨까? 지난 삶의 시간이 큰아들의 스토리텔링에 영향이 있었을 거 같고. 부인과 맏아들에게 한 말씀 해보자.

결혼해서 우리 작은아이가 태어나고 그런 과정이 될 때까지 내가 경제 활동을 제대로 하지를 않았다. 엄청 바쁘긴 바쁜데 돈 버는 일은 안 했지. 나름 폼 나는 일들을 했었다. 나가면 뭐 이런저런 운동, 활동. 우리 집사람이 직장 생활하면서. 경제적인 건 우리 집사람이. 빚은 내가 만들고. 그런 짓을 했지.

어느 순간에 내가 사회적 가치와 어떤 정의, 이런 것으로 살 수 있느냐. 내 꿈이라고 이야기하는 거, 남들한테 이야기하면 세속의 가치를 좇지 아니하고 멋있는 가치, 이렇게 있어 보이는 가치를 향해서 가는 나는 세속적인 가치 이상의 삶을 추구한다고 자랑할 수 있었겠지만, 어느 순간에 내가 그런 질문을 스스로 하게 되고 깨닫게 된 것이 정말 네가 굶으면서도, 정말 네가 끼니가 없으면서도 그 짓 할 수 있냐.

오로지 거기에 대한 희생을 한 명이 지고 있더라는 거를, 사실은 우리 작은애가 아프고 그걸 알게 되면서 깨닫게 된 거다. 내 삶의 전환점이라는 게, 그제야 아,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살 수 있는 세상이 아니다. 또 그렇게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도 아니고 평범한데. 한번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됐던 것 같다.

지금까지 여전히 돈 버는 일보다는 어디 가서 폼 잡는 일, 강의해 달라고 그러면 좋아하고, 글을 쓰는 것도 잘 쓰진 못하지만 그걸 좋아한다. 누가 나한테 물어봐 주고 이러면 이상하게 좋아. 아는 척하고 이러는 것들이. 누가 도와달라고 하면 도와주고. 이러는 게 그냥 좋다. 그러다 보니 여전히 그 무게를 우리 집사람이 가지지.

사실은 우리 집사람이 암 수술을 세 번 했다. 그 와중에 우리 큰아들은, 그냥 객관적으로 보면 잘 컸다. 생각도 깊고. 세상을 보는 관점이나 역사적인 관점에 자기 철학이 있는 것이 참 마음에 들고, 어느 순간에 자기가 하는 전문적인 영역의 이야기를, 내가 못 알아듣는 이야기를 하기 시작할 때 사실은 기뻤어.

이제 자기는 그림으로, 웹툰으로 팝송. 팝송이 그렇게 다양한 줄 몰랐다. 그런데 내용은 다 읽지만 뭔 말인지는 모르겠는데, 그만큼 자기가 연구하고 준비하고, 이제는 자기가 설 수 있는 자기 논리를 가져갈 수 있는 그런 준비하는 것이 그냥 대견해. 작가의 삶이고 창작이니까. 이게 정말 돈이 될지 안 될지, 또 나중에 자기가 어떻게 될는지는 모르겠지만.

처음에 우리 큰아들이 만화를 시작하게 된 과정도 네가 언제까지 만화를 그리고 그림을 그릴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재미있으면 시작하자, 라고 해서 중학교 때 할 수 있도록 시간을 줬던 것 같아. 그런데 여전히 끝까지 자기가 하는 걸 재미있어하고 즐거워하고 또 열심히 하는 거 같아서 장하고 고맙고.

정리하면 우리 집사람한테는 그냥 미안하지만 감사하고, 또한 맨날 하는 사기, 이제 내가 잘할게, 이야기하고 싶어. 큰아들에게는, 언젠가는 이런 내용으로 허심탄회하게 좀 더 이야기하고 싶지만 적어도 지금까지는 제일 잘하고 있는 거 같고, 제 사촌들이나 비교해 봐도 잘하고 있는 것 같고. 그래서 감사하고 대견하고, 이런 말을 하고 싶다.

Q. 주로 어떤 강의를 하나?

부동산 학원에서 강의도 하고, 짧았지만 에듀윌에서도 강의했던 적이 있다. 대부분은 내 사무실에 직원들이 좀 많아. 그러면 새로운 세법이나 정책 같은 거 나오면 같이 이야기하는 그런 정도로 강의를 좀 했었지.

Q. 울산저널 독자와 다른 필진들에게 한 말씀.

울산저널이 울산이 있으니까, 또 우리 한국에 있으니까 어쩌면 우리에게 필요했던 언론 신문이지 않겠나. 화려하지 못하고 또 독자층이 광범위하지 못할지 모르지만, 이런 생각을 해본다. 우리 역사 가운데, 많은 사람이 따라갔던 게 역사에 기록이 되지만 후대에 적은 무리가, 다른 방향이 있었고 바른 방향이 있었다는 기록들이, 그때 다른 소리가 있었다는 기록들이, 우리가 역사를 공부할 때 새로운 시각과 자긍심을 가질 수 있는 계기가 되지.

모두가 천황을 숭배할 때 적은 무리였지만 남았던 사람들의 기록이 있었고, 역사가 있었고, 흔적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가 결코 군사적으로 정치적으로 외교적으로 35년, 6년 동안 빼앗긴 것 같지만 우리의 정신과 역사는 이어져 왔다고 주장할 수 있었듯이, 지금 큰 신문사들 많고 언론사들 많지만, 걔네가 더 화려해 보이지만 먼 훗날에 이렇게 우리의 지면이 있었던 이 기록들이 분명히 남는다.

그래서 그때 많은 사람이 봤던 신문들에서 하는 소리뿐만이 아니라 우리가 정말 하고 싶었던 이야기들, 또 다른 이야기들이 있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자료. 그것을 우리가 같이 만들어 가고 있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너무 많이 거창한가? 난 사실 그런 소망이 있다.

이민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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