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의 가족] 자식을 지킬 것인가, 정의를 지킬 것인가

2024-10-24

자식의 범죄를 마주한 부모들

신념이 무너진 인간 양면성 그려

관객은 어느 선택이 맞는지 고민

자칫 무겁게 다가오는 주제

특유의 디테일로 유연하게 풀어

곳곳 블랙코미디 요소로 환기

뉴스에서는 재벌 2세의 보복 운전 사건 보도가 끊이지 않는다. 재벌 2세(유수빈)는 홧김에 보복운전에 반발하던 상대방 차를 들이박았다. 운전자인 아버지는 그 자리에서 사망하고 차에 있던 어린 딸은 의식 불명에 빠졌다. 온·오프라인에서 이슈인 사건에 자신의 커리어를 위해서라면 돈 많은 살인자의 변호도 마다하지 않는 세속적인 변호사 재완(설경구)이 변론을 맡는다.

재완은 피해자 가족이 수술 자금을 마련하기 어렵다는 걸 알아내 합의를 이끌어 내려고 한다. 재완의 동생 재규(장동건)는 공정함과 원리 원칙을 중요시하는 자상한 소아과 의사이다. 이번 사고로 다친 아이의 주치의기도 하다. 재완은 재규에게 피해자에게 합의를 이끌어달라고 부탁하지만 그에게 통할 리가 없다. 너무나 다른 신념과 가치관을 가진 두 형제다.

전처와 사별한 재완은 필라테스, 요가 등 여러 자격증을 따고 자기 관리에 철저한 지수(수현)와 재혼해 막둥이를 낳았고, 재규는 프리랜서 번역가로 고등학교 자녀 교육, 병든 시어머니의 간병까지 빈틈없이 해내는 연경(김희애)과 가정을 꾸리며 살고 있다.

어느 날, 평온하던 이들의 가정과 일상이 돌연 깨진다. 부부 동반 식사 자리가 있던 날, 재완의 딸 혜윤(홍예지)과 재규의 아들 시호(김정철)가 학원을 빼먹고 술을 먹다 취해 길거리에 잠들어 있던 노숙자를 폭행했다. 며칠 후 뉴스에서는 현장 CCTV 영상이 보도된다. 경찰이 수사에 돌입한 상황에서 별다른 증거가 없어 난색을 표하고 있다. 부모라 알아볼 수 있는 옷차림과 실루엣 외에는 확실한 증거가 없다.

재완은 딸의 미래와 자신의 커리어를 염려해 아이들을 지키려고 하고, 재규는 시호의 잘못을 인정하고 자수시키겠다고 하지만 아내 연경은 극구 반대한다. 개인의 윤리와 부모의 윤리, 그리고 직업윤리까지 모조리 충돌하면서 가족들의 갈등은 점차 깊어진다.

16일 개봉한 영화 ‘보통의 가족’은 청소년 범죄와 이를 마주한 부모들의 태도를 조명하며 인간의 양면성을 그려낸다. 돈과 명예를 위해선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세속적인 변호사 형과 따뜻한 의술을 쓰는 의사 동생. 관찰자처럼 가족의 일에는 한 발 물러서 있는 형의 새로운 아내와 치매 걸린 시어머니를 모시며 간호하는 가족에 헌신한 동생의 아내. 영화는 초중반까지 각 캐릭터를 명확히 보여준다.

이후 두 가족의 아이들이 돌이킬 수 없는 범죄를 저지르게 하고 어떻게 할 거냐고 묻는다. 단단해 보였던 캐릭터의 신념이 변화하는 모습을 관객들은 실시간으로 지켜보며 누구의 선택이 맞을지 고민하게 된다.

이 영화의 바탕이 된 건 전 세계 누적 100만 부가 팔린 네덜란드 장편소설 ‘더 디너’이다. ‘더 디너’는 2015년 이탈리아에서, 2019년엔 미국에서 영화로 만들어졌을 정도로 전 세계에 잘 알려진 작품이다. 원작에선 전채 요리부터 메인, 디저트까지 코스에 맞춰 서서히 가족의 비밀이 드러나는 과정을 그렸다면 영화 ‘보통의 가족’은 세 번의 식사로 표현해냈다.

‘8월의 크리스마스’, ‘봄날은 간다’ 등을 연출한 허진호 감독은 영화 ‘보통의 가족’을 만들며 제목에 충실하게 연출했다. 원작의 입양, 인종 차별 등 유럽 사회의 전반적인 이슈를 학교 폭력, 치매를 앓는 시어머니의 간병, 과도한 교육열 등 한국 사회의 만연한 문제로 바꿔 자연스럽게 녹여냈다. 그 덕분에 관객들은 주인공 중 누군가에게는 감정적으로 이입할 수밖에 없다. 부모라서, 자식이기에 느낄 수 있는 감정이 있다. 영화는 그 감정을 최대한 끄집어내면서 상황이 급변하거나 누군가의 감정 변화가 있더라도 이를 수긍할 수밖에 없도록 유도한다.

영화 초반 관객이 가장 편하게 마음을 주는 건 재규일 것이다. 아들의 입시에 도움이 되고자 병원 봉사 프로그램을 만들어 달라는 요청에도 의사 아빠 찬스는 도통 먹히질 않는다. 재규는 처음 아들의 잘못을 알아차렸을 때 당장 아들을 데리고 자수하겠다고 단호하게 말한다. 그럴 수 없다는 아내와 끝없이 다투며 결국 아들과 경찰서 앞까지 갔지만, 들어가지 못한다.

사실 이게 보통의 부모 마음일 것이다. 결국 재규도 별수 없는 아버지라는 사실을 관객들은 깨닫게 된다. 사실 신문에서 보는 학교폭력 사건이나 전해 듣는 남의 자식 얘기에는 쉽게 정의의 편에 서지만 이게 나의 일, 아직 미래가 창창한 고등학교 2학년 내 자식 일이 된다면 어떤 부모든 이성적인 선택을 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아들의 범죄를 감출 것인가, 자수시킬 것인가를 놓고 연경은 재규에게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그동안 봉사하며 살린 아이들이 얼마나 많은데, 우리는 그래도 돼” 또 그녀는 아이들을 처벌을 받게 해야 한다는 의견에 눈물을 흘리며 “마음의 감옥이라는 게 있는 거예요”라고 말한다. 뻔뻔한 이야기에 기가 차서 웃음이 나오지만 그들의 마음을 작게나마 이해할 수도 있기에 마음이 씁쓸해진다.

자칫 무겁게 다가올 수 있는 주제를 허 감독은 특유의 디테일을 영화 곳곳에 배치해 유연하게 풀어냈다. 블랙코미디 요소가 숨 막히는 심리 공방을 자연스럽게 환기시킨다. 특히 갑자기 생긴 젊은 예쁜 ‘형님’ 지수와 연상의 동서 ‘연경’ 사이의 묘한 신경전은 식사 자리 내내 긴장과 웃음을 동시에 유발한다.

사운드도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이다. 갈등이 극에 달한 순간 오히려 적막을 배치하며 관객들의 긴장감 넘치는 숨소리만 극장에 가득 찬다. 또한 화려한 음악 대신 몇 가지 음으로 표현된 심플한 피아노 테마의 연주곡이 극을 휘몰아친다. ‘뚱, 뚱’ 낮은 음자리와 높은 음자리의 끊임없는 변주가 온전히 각 인물의 감정에 집중하게 만든다.

영화 ‘보통의 가족’은 암전이 내려온 다음 이어가는 질문이 더 긴 영화다. 사실 영화는 밥 세 번 먹으면 끝난다. 하지만 곳곳에 숨겨져있던 암시들이 한꺼번에 터지는 마지막 장면의 충격에 영화관이 밝아져도 쉽게 자리를 뜨기 힘들게 만든다. 영화는 관객에게 명확한 답을 주거나 해결책을 제시하기보다는 묵직한 돌직구를 던진다. 만약 당신이 자식의 범죄를 알았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자식을 지킬 것인가, 정의를 지킬 수 있을 것인가.

김민주기자 kmj@idaegu.co.kr

저작권자 © 대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Menu

Kollo 를 통해 내 지역 속보, 범죄 뉴스, 비즈니스 뉴스, 스포츠 업데이트 및 한국 헤드라인을 휴대폰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