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롯데백화점이 그룹 유동성 위기설 이후 부실 사업 정리에 나섰지만 유일하게 원매자를 확보했던 일산점의 매각 작업이 좌초 위기에 처했다. 주요 점포들의 리뉴얼 작업도 당초 계획보다 늦어지고, 리뉴얼을 완료한 점포에 대해서도 부정적 평가가 잇따르는 등 정준호 롯데백화점 대표의 리더십이 사면초가에 처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16일 유통 업계에 따르면 롯데백화점 일산점 매각의 우선협상 대상자로 선정된 대한토지신탁(대토신)이 KB자산운용과 체결한 우선협상 기간을 이달 말까지 3개월 추가 연장했다. 일산점은 롯데쇼핑이 KB자산운용에 매각한 후 재임대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으며, 지난해부터 KB자산운용이 재매각을 추진하고 있다. 당초 대토신을 우선협상 대상자로 선정하고 지난해 말까지 거래기한을 설정했으나,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올해 3월 말까지 거래기한을 연장했다. 이후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또 다시 기한을 연장한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롯데백화점 측이 구체적인 명도 조건을 제안했지만, 이견이 커 또다시 기한이 연장됐다”며 “사실상 매각이 불발된 셈”이라고 말했다.
롯데백화점 센텀시티점 매각도 용도제한과 공실 우려로 난항을 겪고 있으며, 캡스톤자산운용에 매각 후 임대해 운영 중인 동래·포항점의 재매각도 진척이 없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비핵심 사업과 자산 매각을 통해 점포 효율을 높이는 ‘선택과 집중’을 강조하고 있지만 점포 효율화 작업은 지지부진하다.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5대 백화점의 68개 전국 점포 가운데 매출 최하위 20개 점포 중 14개가 롯데백화점 점포였다. 이 중 대구 상인점, 서울 관악점, 건대스타시티점 등 12곳은 매출이 역성장했다. 롯데백화점은 매출이 부진한 10여 개 점포의 매각이나 폐점, 용도전환 등을 검토 중이다.

역점 사업인 잠실점 리뉴얼 착공도 기약 없이 미뤄지고 있다. 당초 지난해 하반기 공사에 착수할 예정이었으나, 올해 상반기로 조정됐다가 예산 부족으로 재차 하반기로 미뤄졌지만 이마저도 여의치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롯데백화점은 관할 구청인 송파구에 잠실점 리뉴얼에 필요한 인허가 접수조차 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앞서 롯데백화점은 잠실점 전면 리뉴얼 계획을 발표하면서 저층 식품관 재단장을 시작으로 순차적으로 작업을 진행해 2028년 연 매출 4조 원을 달성하겠다고 밝혔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정준호 대표가 잠실점을 더현대 서울을 뛰어넘는 업그레이드 버전으로 만들겠다고 공언했지만, 핵심이라고 볼 수 있는 식품관 리뉴얼은 정작 손도 못 대고 있다”며 “현 상황에서는 리뉴얼 착공 시점이 올해 하반기를 넘길 수 있다”고 내다봤다.
롯데백화점이 미래 먹거리로 꼽은 복합몰 ‘타임빌라스’ 역시 기대 이하의 성과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5월 롯데몰 수원점을 전면 리뉴얼해 새단장해 문 연 타임빌라스 1호 수원점의 경우 푸드코트 일부를 제외하고는 방문 고객수가 기대에 못 미친다는 평가다. 업계 관계자는 “타임빌라스 수원점은 복합몰이라기 보다는 백화점의 확장으로 인식하는 소비자들이 많아 백화점과 쇼핑몰의 경계를 허문다는 컨셉이 아직 정착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오픈 당시 신 회장 장남 신유열 롯데지주 미래성장실장과 김상현 유통군HQ 총괄대표 등이 직접 현장을 챙길 만큼 공을 들였지만, 인근 거리에 있는 스타필드 수원과 격차가 더욱 커지는 모습이다. 스타필드 수원의 올해 1분기 매출은 267억 원으로 전년 대비 11.7% 증가했고 영업이익은 96억 원으로 같은 기간 62.7% 급증했다. 일평균 방문객은 주말 평균 8만 명, 1주년 누적 방문객 1900만 명에 달한다.

이종우 아주대 경영학과 교수는 “롯데백화점은 백화점이 단순한 쇼핑 공간이 아닌 나들이 공간으로 바뀌는 트렌드 변화에 대응하는 타이밍이 경쟁사 대비 늦었다”며 “뒤늦게 타임빌라스 수원을 복합몰로 재단장했지만 위치나 규모가 다소 애매해 평일에 찾는 방문객이 주말 대비 턱없이 적다”고 평가했다. 이어 “백화점 업계 1위 저력이 있는 만큼 과감하게 광역시 이상 대도시에 점포를 대형화하고 소비자 니즈에 맞는 변화를 선도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