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고를 전시하다, 샤울라거 미술관

2025-01-26

아트페어로 유명한 현대미술의 도시, 바젤 근교에 샤울라거 미술관(사진)이 2003년 오픈했다. 독일어 샤우엔(보다)과 라거(창고)가 합성된 명칭은 ‘관람하는 수장고’라는 뜻으로, 작품 창고가 곧 전시장인 새로운 개념의 미술관이다. 에마누엘 호프만 재단은 20세기 전위 작가 150명, 850점의 작품을 수집했으나 95% 이상이 전시되지 못했다. 바젤시는 공공미술관을 건립해 미전시 작품들을 소장하고 재단은 그 운영을 맡기로 영구 임대협약을 맺었다.

현대미술은 장르 간 경계가 모호하고 대형 작품이 많아 전통적인 미술관은 전시도 수장도 어렵다. 대부분 미술관이 전시·수장·연구라는 3대 기능을 분리해 왔으나, 이들의 통합을 원했던 재단 측은 혁신적인 건축가로 바젤 출신의 헤르조그 & 드 뫼롱을 지명했다. 발전소를 개조한 영국의 테이트모던 미술관 설계 등으로 국제적 명성을 얻은 이들이다.

부정형 대지에 맞춰 부등변 오각형 평면을 만들고, 연구실 부분의 뜯긴 듯한 띠 창을 제외하곤 모든 벽은 막혀 있다. 오목한 입구 면만 흰 벽이고, 다른 벽은 기반 공사 때 굴착한 흙과 자갈로 두툼하게 마감했다. 작품 수장을 위해 내부 온습도를 유지하기 위한 발상이었다. 5개 층의 내부는 칸막이벽을 최소화한 넓은 공간들로, 수직으로 관통하는 아트리움을 두어 모든 층을 바라볼 수 있게 했다. 외부를 폐쇄해 수장기능에 충실하고, 내부는 개방해 전시기능을 강조한 결과다. 별도의 작은 집을 지어 현관으로 삼았는데 외부 전시로 외출했던 ‘소장품이 돌아와 쉬는 미술의 집’을 은유했다.

이 창고 같은 전시관은 단순한 형태 속에 많은 혁신적 아이디어를 담았고 뛰어난 개념과 디테일로 완성도 높은 건축을 이루었다. ‘수장고형 전시관’의 아이디어는 전 세계에 유행해 국립현대미술관 청주 분관에도 적용되었다. 이 건축가는 서울의 송은미술관을 완공한 데 이어, 서초구의 ‘서리풀 보이는 수장고’ 현상설계에 당선돼 실현을 기다리고 있다.

김봉렬 건축가·한국예술종합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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