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준부터 김홍도 신윤복까지…고향에 갔다, 미술관에 들렀다

2025-01-27

어두운 방에서 베토벤 소나타 ‘월광’이 울리다가 거리의 소음에 뚝뚝 끊긴다. 벽에는 TV 열 세 대가 높이 걸렸다. 차고 기울어진 달이 화면을 채웠다. 을숙도 부산현대미술관 한 방을 채운 '달은 가장 오래된 TV'(1965). 전시장 한가운데는 백남준 작품 중 가장 널리 사랑받는 'TV부처'(1974/2002)가 놓였다.

‘백남준, 백남준, 그리고 백남준’은 국내 최대 규모의 백남준 회고전이다. 공동기획한 용인 백남준아트센터의 소장품 141점을 비롯해 국립현대미술관, 제주 에코랜드, 프랑크푸르트현대미술관 등 국내외에서 총 168점이 쏟아져 나왔다.

미국에서는 그를 ‘건국의 아버지’에 빗대 ‘비디오 아트의 조지 워싱턴’이라고 했다. 인터넷과 스마트폰, 유튜브로 만인이 미디어가 되는 시대를 예견했다며 ‘디지털의 노스트라다무스’라고도 부른다. 일찌감치 세계 미술의 흐름 앞에 선 ‘원조 한류’, 한국 출신 예술가로 백남준만큼 성공한 사람이 있을까. 전시는 피아노 때려 부수고 머리에 먹물 찍어 그림 그리던 기행이나 구식 브라운관 TV를 쌓아 올린 작품만이 그의 전부가 아님을 보여주고자 했다.

‘얼리 어답터’ 백남준은 많은 것들을 처음 했다. 1963년 독일 부퍼탈에서 연 ‘음악의 전시-전자 텔레비전’은 TV를 주제로 한 첫 미술 전람회다. 1984년 1월 1일엔 최초의 뉴욕ㆍ파리 위성 생중계 쇼 ‘굿모닝, 미스터 오웰!’을 벌였다. 1993년 한국 출신으론 처음으로 베니스 비엔날레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을 받았다. 독일관 대표 작가로 나서면서다. 이를 계기로 1995년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개관, 아시아 첫 비엔날레인 광주 비엔날레 개막에도 일조했다. 이번 전시장에 나온 ‘칭기즈칸의 복권’은 말 대신 자전거 타고, 갖은 기호와 문자가 네온으로 빛나는 TV 케이스를 바리바리 짊어진 마네킹 형상이다. “황색 재앙, 그게 바로 나다!”라고 했던 백남준의 자화상처럼 보인다.

초창기 실험예술 운동인 플럭서스(Fluxus) 일원으로 선보인 1960년대 작품과 자료 사진부터 국내에 처음 선보이는 라이트 형제, 나무 12그루와 TV 모니터의 대규모 설치 ‘케이지의 숲’, 뉴욕 구겐하임 회고전에 나왔던 레이저 작품 ‘삼원소’까지 백남준의 다양한 면모를 볼 수 있다. 강승완 관장은 “부산의 미술관에서는 처음으로 마련한 백남준전으로 누구나 그 이름을 알지만 작품 세계 전반은 덜 알려진 백남준을 두루 보여주고자 했다”고 말했다.

설에 찾을 고향 혹은 휴가지에는 새로 생긴 미술 공간, 새로운 전시가 많다. 연휴 중 여는 국ㆍ공립 미술관 전시를 한데 모았다.

지난해 대구미술관 바로 옆에 새로 개관한 간송미술관은 22만 4000명이 몰린 개관전에 이어 최근 상설전을 마련했다. 국보 청자상감운학문매병과 백자청화철채동채초충난국문병을 중심으로 청자와 백자 18점이 도열하듯 전시된 ‘도자의 뜰’이 미술관 한가운데 배치됐다. 혜원 신윤복의 미인도가 단독 전시됐던 방에는 단원 김홍도의 고혹적인 ‘백매’가 걸렸다.

바로 옆 대구미술관에서는 이집트 미술가 와엘 샤키(54)의 아시아 첫, 최대 규모 개인전이 열리고 있다. 지난해 영국 미술전문지 아트 리뷰에서 ‘세계 미술계 영향력 있는 인물’ 6위로 꼽은 작가다. 우리 구전설화 ‘토끼의 재판’ ‘금도끼 은도끼’ ‘누에 공주’를 새로 작창, 경북 안동에서 판소리로 부르는 영상 설치 ‘러브스토리’를 새로 만들었다. 이탈리아 폼페이 유적지에서 촬영, 그리스 로마 신화와 고대 이집트 종교 사이의 연관성을 들여다보는 ‘나는 새로운 신전의 찬가’(2023)도 공연에 쓰인 세라믹 가면 설치와 함께 관객들의 발길을 붙잡고 있다.

광양 전남도립미술관에서는 ‘오지호와 인상주의’ 전이 열리고 있다. 120년 전 전남 화순에서 태어나 한국적 인상주의의 개척자로 자리 잡은 오지호와 아들 오승우ㆍ오승윤, 손자 오병욱의 그림도 함께 전시됐다. 오지호의 유학 시절 스승인 오카다 사브로스케와 후지시마 다케지의 그림도 일본에서 건너왔다.

서울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는 ‘수묵별미: 한ㆍ중 근대회화’전이 열리고 있다. 우창숴(吳昌碩)ㆍ쉬베이훙(徐悲鴻)ㆍ치바이스(齊白石) 등 중국의 ‘국보급’ 수묵화부터 한국의 김기창ㆍ박래현ㆍ박생광ㆍ황창배ㆍ이종상ㆍ유근택 등 148점이 나왔다. 서울관에서는 ‘이강소: 풍래수면시(風來水面時)’ ‘접속하는 몸-아시아 여성 미술가들’이 한창이다. 모두 놓치기 아까운 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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