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독치료 1달러 투자는 다른 비용 12달러 줄여
“재활 정책 예산 필요…리더들이 결단해야”
“제 삶과 영혼을 구해준 분들, 이 법정에 감사합니다. 전 딸을 되찾았고, 새 삶을 찾았습니다. 요즘엔 학교에 다니면서 계속 A 학점을 받고 있습니다. 살면서 받아본 적 없는 A입니다. 이 감사를 드리는 게 제가 처음이 아니길, 마지막도 아니길 바랍니다.” 법정에서 재활 기회를 얻은 한 여성 중독자가 에리카 유 판사의 약물법정에 보낸 편지다. 여성은 재활 프로그램을 이수한 후 일자리·주거 지원도 받았다. 이 편지는 약물법원 설립 취지와 존재 의의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유 판사는 사람들을 더 많이, 실질적으로 돕고 싶어 훈련과 공부를 거쳐 약물법원에 왔다. 2001년 샌타클래라 카운티 고등법원에 아시아계 여성으로서는 처음 판사로 임명됐다. 캘리포니아판사협회(CJA)에선 첫 여성 회장을 지냈다.
미국 현지에서 본 공공의 전폭적 재활 지원이 어떻게 가능했을지가 궁금했다. 처벌 대신 재활이 필요하다는 기사마다 ‘왜 세금으로 약쟁이들을 돕느냐’는 댓글이 달리는 한국의 여론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윤석열 정부도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투약자 검거에 힘을 쏟았다. 지난달 23일 유 판사를 화상으로 다시 만났다.
-한국에서는 재활 정책을 비판적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미국에서는 대부분이 재활 정책을 지지한다. 응답자의 81%가 재활법원을 지지한다는 여론조사도 있다. 처음부터 모두가 재활법원에 찬성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많은 사람이 자신의 가족, 친구가 도움을 받는 경험을 축적하면서 점차 생각을 바꾸게 됐다.”
-약물법원과 재활 프로그램들이 선의가 아니라 과학적 근거에 기반을 둔 점이 인상적이었다.
“연방정부에서 재원을 지원받으려면 모든 것이 ‘근거 기반’이어야 한다. 정책은 다 실제 연구에 근거를 둔다. 이게 없으면 정책에 권위가 실릴 수 없다. 미국 약물남용 및 정신건강서비스 관리국(SAMHSA) 연구를 보면, 중독 치료에 1달러를 투자할 때 사회는 12달러를 아낄 수 있다.”
미국 국립약물남용연구소(NIDA)의 2018년 보고서는 미국에서 중독자 1명에게 아편류 중독 약물치료를 하는 데 드는 연간 비용은 4700달러, 1명을 교정시설에 수감하는 데 쓰는 비용은 2만4000달러라고 분석했다. 산술적으로 치료가 5배 경제적임을 보여주는 연구다. 치료를 받지 못한 중독자들이 자신의 가족·친구 등 주변인에게 추가로 중독을 유발한다는 연구들도 재활의 당위성을 뒷받침한다.
-한국의 마약 재발률은 높은 편이다. 재활 정책이 없어서라는 분석이 있다.
“미국에서는 재발이 회복 과정의 일부로 받아들여진다. 치료 중에 재발할 수 있다. 아니, 오히려 재발해야 극복할 기회를 얻을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재발을 비난하기보다 원인을 파악하려고 한다. 이유를 정확히 알아야 알맞은 대응책을 처방해줄 수 있다.”
-한국에서도 재활 정책이 제대로 자리잡으려면 어떤 것이 필요할까.
“정치적 리더십이 필요하다. 재활 정책엔 예산이 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중독은 범죄가 아니라, 치료가 필요한 정신질환이라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직접 봐야 믿을 수 있다. 이런 이유로 국내외 법조인을 교육할 때마다 회복 당사자 영상을 보여준다. 유명인의 역할도 중요하다. 예를 들어, 한국엔 인기 연예인들이 많을 텐데, 그들이 목소리를 낸다면 사람들 생각을 더 빠르게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경향신문 ‘다만 마약에서 구하소서’ 시리즈는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