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방의 의무를 지닌 국민 절반이 총을 다룰 수 있는 나라다. 이런 나라에 총이 풀린다면 어떤 반응이 나올까 궁금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트리거’(10부작)의 배우 김남길은 총기 재난 액션 드라마가 한국을 배경으로 만들어진 이유를 이같이 요약했다. 인터뷰는 29일 서울 삼청동에서 진행됐다.
‘갈등이 돈이 되는 세상에, 누구나 총을 쥘 수 있다면?’이라는 도발적인 질문에서 시작된 ‘트리거’는 총기 청정국 대한민국을 배경으로 불법 총기가 퍼지는 혼란 속에서 저마다의 이유로 방아쇠를 당기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영화 ‘미드나이트’(2021)의 권오승 감독이 연출과 각본을 맡았다.
작품은 25일 공개 직후, 한국 넷플릭스 TV 부문 1위에 오르며 단숨에 시청자들의 선택을 받았다. 29일 플릭스패트롤 기준으로는 한국을 포함해 싱가포르, 베트남,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까지 총 5개국 정상을 차지했다.
김남길은 극중 사람을 지키기 위해 총을 든 단 한 사람, 이도 역을 맡았다. 전직 군인이자 현직 경찰인 이도는 자신이 지닌 상처와 트라우마, 정의감 사이에서 고뇌하며 총을 다시 손에 쥔다. 김남길은 액션의 쾌감 대신, 총을 드는 이유와 그 뒤에 있는 현실을 정면으로 묻는 드라마 전개에 끌려 이 작품을 선택했다. 그러면서 “총이 불법인 우리나라에서는 작품의 설정을 판타지라고 보면 그만이겠지만, 그렇지 않은 나라들은 현실적인 고통에 직면한 내용”이라며 무거운 메시지를 담아 만들었다고 강조했다.

이도라는 캐릭터를 어떻게 설정하고 연기했는지.
“분쟁지역을 다니며 총을 쐈던 군인인데 총을 들고 싶지 않아 한다. ‘총 없이 평화를 지킬 수 있다’는 나름의 믿음과 가치관을 품고 경찰이 됐지만, 결국엔 사람을 지키기 위해 총을 든다.”
총을 들고 하는 액션은 무엇이 달랐나.
“총이라는 도구도 있고, 넷플릭스에서 하는 작품이다보니 재난 상황에서의 직접적인 표현이 가능했다. 나는 총 사용을 반대하는 입장에서 절제된 액션을 보여주고자 방어적 액션을 취하려 했다. 총으로 빌런을 제거하는 사적복수로 보여서는 안 된다는 생각으로 임했다.”
완성된 작품을 본 소감은.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가 잘 표현된 것 같아 만족스럽다. 우리 작품은 총을 매개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이에 대해 주변에서도 긍정적인 반응을 많이 들었다.”

사람 사이의 갈등을 총으로 극대화했다고 보면 될까.
“인간은 누구나 욕망을 품는다. 각자 가진 분노, 갈증, 이데올로기가 총이라는 도구를 만났을 때 어떻게 표출되는지를 보여줬다. 사람들이 어떤 일에 분노하고, 어떻게 갈등하는지를 보여주면서 ‘서로 양보하고 배려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앞으로 살아갈 세대들에게 분명하게 전한다.”
일각에선 총을 든 사람의 사연에 더 공감이 간다는 반응이 있다.
“일부 에피소드에 사회적 약자의 시선을 넣어 시청자들이 감정 이입할 수 있게 했다. 실제로 법적으로 해결되지 않는 일들이 많다. 그래서 사람들이 사적 복수 서사에 통쾌함을 느끼고 좋아하는 것 같다. 이 작품은 ‘그것이 옳은가’ 반문한다. 총이란 건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 나중에 성범죄자나 건달 같은 인물들도 총을 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줘 공포심을 느끼게 한다.”
정의로운 인물을 연기하는 건 악인보다 어려울 것 같다.
“정의로운 캐릭터가 고리타분하다는 편견이 있었다. 준법정신이 투철할 것 같고, 정해진 틀을 벗어나지 않아서 답답하기도 할 것 같았다. 그래서 이도만의 성격을 부여하고자 노력했다. 먼저 외형부터 평범하게 가려고 했다. 전직 스나이퍼이니까 관찰력이 뛰어나고, 눈에 띄는 걸 싫어할 것이라 생각했다. 총을 견착할 때도 이도만의 포즈가 있을 것이라 생각해 나름의 포인트를 넣었다.”

문화예술 시민단체 ‘길스토리’를 운영하고 있는데, 본인은 정의로운 사람의 표본 아닌가.
“그렇지 않다. 정의롭다는 건 인물의 가치관보다는 주변 상황이 만든다고 생각한다. 매일 하던 행동이 어떤 환경에선 정의롭게 보일 수 있다. 선역을 맡았을 때도 마냥 착하게만 표현하려고 하지 않는다. 인물의 입체적 성격을 고려해서 연기하는 편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정의로운 사람이거나 착한 사람이라서 시민단체를 운영하는 것이 아니다. 대중문화예술을 하는 사람은 어떠한 형태로든 대중에 사랑을 돌려줘야 한다고 믿는다. 그래서 주변의 작은 것들을 살펴보게 됐다. 요즘은 자립준비청년을 위한 지원에 힘쓰고 있다.”
시민단체를 운영한 이후, 악역보다 선한 역에 관심이 가기도 하나.
“배우 활동과 시민단체 일은 별개다. 악역도 하고 비열한 역할도 하고 범죄자도 연기할 수 있다. 중요한 건 스토리다. 내가 참여하려는 이야기가 세상에 어떤 메시지를 남길 수 있을까 고민한다. 그 다음에 캐릭터를 파악한다.”
차기작도 액션일까.
“‘열혈사제’, ‘악연’, ‘트리거’ 등 연달아 액션을 했다. 어느 순간 액션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가 됐다. 의사 역을 맡는다면 옛날에 합기도를 배운 의사일 것만 같고, 맞는 역을 할 때면 피한다거나 노려본다거나 괜히 자존심을 부릴지도 모른다.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