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12월 대법원 판결로 특정 시점에 재직 중이어야 지급되는 상여금, 명절 휴가비 등도 통상임금에 포함되지만 공공 부문에서 이를 반영하지 않으면서 사회적 갈등이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대법원 판결로 통상임금의 범위를 넓혔는데 이를 지급하지 않는 것은 일종의 임금 체불”이라며 공공 부문에서 적극적인 역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18일 경향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대법원 판결 이후 정부가 개정된 지침을 내놨지만 사회복지시설 종사자들은 여전히 명절 휴가비 등이 통상임금에 포함되지 않은 연장근로수당을 지급받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처우개선위원회에서 사회복지 종사자들의 적정 인건비 기준을 마련하고, 지방자치단체가 이를 토대로 각 시설에 보조금을 지원한다. 복지부는 올해 통상임금과 관련한 지침도 내놓지 않았고, 서울시도 통상임금 산입 항목을 봉급(기본급), 정액 급식비, 조정수당으로만 한정했다.
통상임금은 노동자가 정기적으로 받는 급여로, 각종 수당 및 퇴직금 산정 기준이 된다. 지난해 12월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정기적, 일률적으로 지급하도록 정해진 임금은 그에 부가된 조건의 유무나 성취 가능성과 관계없이 통상임금에 해당한다”며 고정성 기준을 폐지했다. 대법원 판결로 명절 휴가비, 상여금 등도 통상임금에 포함되면서 수당과 퇴직금도 인상된다.
사회복지종사자 4706명은 최근 연서명을 통해 “복지부와 지자체들이 관련 예산을 신속히 추가 편성할 것을 촉구한다”고 했다. 박성우 노무사는 “상여금이나 명절휴가비도 결국은 노동자의 노동 대가로 받는 것인데, 그동안 이를 덜 준 것”이라며 “대법원 판결에 따라 정기적·일률적으로 지급되는 임금은 통상임금으로 보고 수당을 지급해야 하고, 이를 주지 않는 것은 일종의 임금체불”이라고 말했다.
서울버스 노사도 통상임금 문제로 진통을 겪고 있다. 서울버스 노조는 오는 28일 전국 버스 총파업까지 예고한 상황이다. 노조는 통상임금 확대에 따른 기본급 8.2% 인상을 요구하고 있다. 반면 서울시는 시민 부담이 커지니 임금체계를 바꿔야 한다는 입장이다.
김종진 일하는시민연구소 소장은 “버스 운영의 인건비가 올라갈 때 이를 분담하는 방법은 버스 회사가 감당하거나, 지자체가 교통 예산으로 재정을 투입하거나, 소비자에게 부담을 전가해 요금을 올리는 방식으로 구분할 수 있다. 지금 서울시가 택한 방식이 가장 안 좋은 방식”이라며 “버스는 준공영 시스템인 데다, 서울시가 예산 등 통제권을 행사하고 있기 때문에 서울시가 재정 출연하는 게 맞다”고 했다. 공공 부문에서 임금 체계를 흔드는 것은 민간 기업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김 소장은 “특히 노조가 없는 85% 사업장에 더 문제될 수 있다”고 말했다.
대법원 판결로 그동안 기본급에서 상여금 등을 떼어 내 통상임금에 포함시키지 않고 각종 수당·퇴직금을 적게 주던 꼼수를 줄일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신하나 변호사(민주사회를위한 변호사모임 노동위원장)는 “그간 회사들이 퇴직금이나 연장근무수당 등을 줄이기 위해 통상임금을 낮추면서 임금구조가 복잡해졌는데, 노동자들이 받는 임금은 다 통상임금으로 보는 방향으로 가야한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정부와 기업의 과도한 재정 부담을 우려한다. 오민규 노동문제연구소 ‘해방’ 연구실장은 “기업과 정부의 부담이라는 건 추산일 뿐”이라며 “어느 정도 비용 부담이 늘어나는지 구체적인 데이터도 나오지 않았다”고 했다. 오히려 공공 부문이 ‘기준’으로서 모범 역할을 해야 한다는 제언도 나왔다. 오 실장은 “정부가 모범적인 사용자로서의 역할을 통해 강력한 정책 의지를 보여줘야 민간 부문에도 대법원 판결 내용이 잘 정착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