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증외상센터>, 백마 탄 초인 백강혁은 어떻게 퇴행적 복음을 전파하나

2025-02-05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중증외상센터>의 장르는 메디컬도, 히어로물도 아니다. 종교물이다. 예수가 베드로에게 그러했듯, 주인공인 천재 외과의사 백강혁(주지훈)은 수술실에서 이적을 행하며 또 다른 주인공 양재원(추영우)를 외상외과 펠로우로 끌어들이고, 가끔 혼란에 빠진 재원의 믿음을 책망한다. 베드로야, 내가 물 위를 걸어야 나를 믿겠느냐. 열두 제자가 모이듯, 박경원(정재광), 한유림(윤경호) 등 하나둘 추종자가 모이며 교세는 늘어가고, 당연히 그 반동으로 병원 내부의 박해가 시작된다. 하지만 괜찮다. 강혁은 언론 플레이로 자신의 교세를 병원 밖으로 확장하며 재원에게 말한다. “내가 외상센터의 성역, 성자, 성녀(정확히 말해 성녀는 천장미(하영) 간호사)” 삼위일체를 이루노라고. 그래서일까. <중증외상센터>에 대한 언론 리뷰도 분석보다는 차라리 간증에 가깝다. “1화만 보려고 틀었는데, 정신 차리니 끝나버렸다.”(마이데일리) “계속 다음 화를 클릭하게 된다. 후루룩, 8부는 너무 짧다.”(스포츠경향) 이외에 시즌 2를 만들어달라는 요청은 기사마다 거의 기본으로 전제한다. 단순히 작품의 높은 인기에 편승하는 기사가 아닌 정말 재밌게 봤다는 게 느껴지는 간증이다.

비꼬려는 건 아니다. 몰아보기(binge watching)는 넷플릭스의 흔한 시청 형태긴 하지만, 이 작품의 속도감과 몰입감은 단순히 재밌다, 잘 만들었다, 수준을 넘어 아예 다른 단계로 넘어간 느낌이다. 그냥 웹소설 원작 드라마가 아닌, 영상으로 읽는 웹소설·웹툰이랄까. 기본적으로도 짧은 편인 러닝타임이 더 짧게 느껴질 정도의 빠른 호흡과 군더더기 없는 전개, 그것을 가능케 하는 강혁의 전지전능한 문제해결 능력은 확실한 시너지를 낸다. 앞으로 방송, 특히 OTT 시장에서 <중증외상센터>의 서사 구조와 캐릭터, 연출, 편집에 대한 연구와 모방이 벌어질 것이다. 글로벌 시장에서의 호성적이란 가시적 결과까지 뒤따르는 상황에서 이제 강혁의 위대함을 의심하는 건 신성모독이 될지도 모르겠다. 작품 안에서든 바깥에서든. 다만 이 믿음은 그의 능력에 대한 믿음인가, 그가 남긴 윤리적 전망에 대한 믿음인가. ‘성역, 성자, 성녀’ 삼위일체에서 과연 성스러움은 어디에 있는가.

앞서 서사와 연출에 대한 기술적 성취에 대해 이야기했지만, 이런 성취를 위해 <중증외상센터>가 의도적으로 포기한 메디컬 드라마로서의 고증과 리얼리티를 문제 삼는 건 별로 의미가 없다. 원작도 그러하지만 비현실적인 ‘먼치킨’ 주인공을 내세우며 노골적으로 이것은 판타지이며 현실에 대한 대리만족을 주겠노라 선언한 작품에 대해 판타지라고 비판하는 건 번지수를 잘못 찾은 것이다. 중요한 건, 중증외상센터의 현실을 판타지로 그려냈다는 게 아니라, 그 판타지를 통해 충족된 혹은 충족시킨 욕망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가령 “‘저게 말이 돼?’가 아니라 ‘저랬으면 좋겠다’라는 대리만족으로 드라마를 보면 타협 없는 불도저 백강혁의 모든 활약이 짜릿하고 통쾌하다”는 조이뉴스24나, “사람 살리는 것에만 눈이 돌아있는 백강혁은 헌신, 겸손과는 거리가 먼 사람 같지만 사실은 우리가 바라는 유니콘 같은 의사상”이라는 스포츠경향, “싸가지는 없지만, 수술 실력 하나만큼은 월등한 백강혁이 오로지 실력만으로 병원 내 시기와 질투를 가뿐하게 무시하고 중증외상센터를 꾸려나가는 모습은 묘한 쾌감”을 준다는 티브이데일리의 기사는 공통적으로 강혁의 의술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병원 고위층을 향해 들이받는 직진 행보에 속 시원하다는 반응을 보인다.

실제로 그는 안하무인이다. 트레이드마크인 “닥쳐!”를 외칠 때, 재원을 자기 밑으로 데려오기 위해 항문외과장 유림에게 반말로 깐족대거나 재원을 압박할 때, 무엇보다 작품의 메인 악역인 병원 기획조정실장 홍재훈(김원해)을 아예 육탄전으로 들어 매칠 때, 강혁은 조금의 주저함도 없다. 오직 사람 살리는 것만이 중요하다는 그의 대의는 드라마에도 시청자에게도 좋은 알리바이가 되어준다. 문제는 이 판타지의 서사적 쾌감이 결국 강혁의 압도적 능력에 의한 갈등 해소와 돌파로 구성된다는 것이다.

얼핏 <중증외상센터>의 갈등 구도는 윤리적 차원에선 인본주의 대 신자유주의의 대결처럼 보이지만, 실제 서사는 능력자 대 무능력자의 대결에 더 가깝다. 현세에 강림한 수술의 신과 입만 산 행정가의 대결. 결국 이 판타지의 대리만족은 더 나은 철학의 승리보다는 능력자에 의한 응징에 방점이 찍힌다. 이 지점에서 온갖 거룩한 대의에도 불구하고 <중증외상센터>는 흔한 ‘참교육’ 사이다 서사로 소급한다. 첫 만남부터 삐걱거렸던 정형외과 정준수(윤대열)는 강혁이 신장 이식을 24분 만에 끝내는 걸 보고서야 끽소리도 하지 못한다. 애제자 재원을 뺏긴 것에 대해 앙심을 품었던 유림이 중증외상센터의 아군이 되는 건 유림의 딸 지영을 강혁이 살리면서부터다. 누구든 중증외상환자가 될 수 있다는 것, 그렇기에 중증외상센터가 필요하다는 것을 강변하는 에피소드지만, 또한 그동안 강혁과 중증외상센터를 폄하하던 유림이 그 업보를 제대로 돌려받고 강혁 앞에 무릎 꿇는 응징의 메커니즘 역시 작동한다. 드라마는 강혁의 입을 통해 매 순간 생명의 소중함에 대해 말하지만, 정작 생명 그 자체보다는 생명을 구해냄으로써 강혁이 오늘도 우월함을 증명해 1승을 거두는 것으로 각 에피소드를 마무리한다. 그가 모아온 자기가 실린 환자 사진은 그래서 때론 승리자의 전리품처럼 보인다.

심지어 그가 유일하게 생명을 구하지 못한 순간조차 강혁의 또 다른 승리를 위해 소비된다. 재훈이 소방청장을 회유해 환자 헬기 이송을 방해하고 이로 인해 환자가 뇌사 상태가 되자 재훈은 강혁의 과실로 몰아간다. 하지만 강혁의 뒷배인 보건복지부 장관 강명희(김선영)의 도움으로 소방청장의 부당한 개입과 재훈의 만행을 폭로하며 이 역시 쉽고 빠르게 해결된다. 상대가 소방청장을 부르면 나는 장관을 부른다. 자기 잘난 줄 알고 까부는 상대에게 더 잘난 사람이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것. 이것이 ‘참교육’ 서사의 핵심이다. 아무리 천재 의사라도 모두 살릴 수는 없고 그럼에도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윤리의 메시지는 휘발되고, 강혁은 역시 절대 틀릴 리 없으며 감히 강혁을 얕보면 누구든 다 박살 난다는 무한강혁교의 복음만 되풀이된다.

결과적으로 <중증외상센터>는 인물들의 입을 통해 말하는 것과, 실제 서사를 통해 전하는 메시지가 일치하지 않는다. 원작 소설과 이번 드라마가 강혁을 초인으로 설정한 건, 열악한 조건에서도 기적을 일으킬 수 있는 가상의 영웅을 보여주기 위해서지만, 이 영웅담은 사람을 살리는 길에 우리가 어떻게 함께 할 수 있을지에 대한 전망이 아니라 절대자 백강혁 앞의 방해물만 치우면 만사가 해결될 거라는 편하고도 위험한 결론에 이른다. 이 작품에 대해 흔히 접할 수 있는 “<중증외상센터>의 가장 큰 장점은 여타 메디컬 드라마의 클리셰를 조금씩 빗겨나간다는 점”(티브이데일리)이라는 평가는 반만 맞는 말이다. 신파나 의사 직업군에 대한 선망과 미화가 거의 없다는 점에서 메디컬 드라마의 클리셰는 벗어나지만, 반대로 웹툰·웹소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이다 클리셰는 잔뜩 품고 있다.

즉 <중증외상센터>는 역시 응급센터를 다룬 수작 MBC <골든타임>보단 차라리 네이버웹툰 <참교육>에 훨씬 가깝다. 이런저런 제약 때문에 참된 교육과 참된 의술을 펼칠 수 없는 환경이 있고, 그 환경을 무시하고 막무가내로 행동하는 주인공이 있으며, 그가 온갖 트러블을 일으키고 다녀도 강력한 권력으로 무마해주는 정치인이 있다. 물론 <중증외상센터>가 체벌 정당화와 각종 혐오, 재현 왜곡으로 얼룩진 <참교육>만큼 반윤리적인 작품은 아니다. 다만 <참교육>의 나화진이 그러하듯, 강혁이 막말과 고성, 종종 폭력을 불사하면서도 스스로에 대해 한 치의 의심도 없고 실패도 없는 인물인 건 필연적이다. 그는 완벽하지만 성격이 나쁜 의사라 문제인 게 아니다. 그의 무례함, 좀 더 정확히는 자기가 옳다 믿는 흔한 한국 남성 꼰대의 성격이 그의 완벽함을 최종적으로 완성하는 게 문제다. 답은 내가 아니까, 너는 ‘닥치고’ 따라오면 돼. 하여 작품에서 강혁은 생명을 살리는 의사의 헌신에 대해 말하지만, 작품이 욕망하는 것은 세계에 대한 강혁의 헌신이 아니라 강혁의 지배다. 완벽한 존재가 이끄는 대로 이끌리고 싶다는 욕망. 이 드라마를 마음 편히 볼 수 있는 건, 우선 빠른 호흡으로 문제가 해소되는 속도감과 통쾌함 덕분이지만, 시민의 책무라는 짐을 쉽게 내려놓게 해주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 지점에서 백마 탄 초인 백강혁의 복음은 철저히 퇴행적이다. 글로벌 히트작으로서 <중증외상센터>의 완성도와 재미에 대한 간증만큼이나, 의심의 목소리 역시 필요한 건 그래서다.

<위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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