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테이블코인을 비롯한 디지털자산의 급속한 확산은 더 이상 부정할 수 없는 세계적 흐름이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여전히 블록체인 기술과 디지털자산, 즉 '코인'을 인위적으로 분리해 바라보는 경향이 뚜렷하다. 최근 벤처기업법 시행령 개정으로 무려 7년 넘게 중단됐던 가상자산사업자(VASP)의 벤처기업 인증이 재개됐지만, 여전히 정부 전반의 인식은 부정적이다. 연구개발(R&D) 과제 참여 금지, 해외 직접투자 신고 불가, 정책자금 지원 배제 등 제도적 장벽은 산업 성장의 발목을 잡고 있다.
문제의 핵심은 블록체인은 혁신적 기술로 우대하면서도, 코인은 단순히 투기 수단으로 낙인찍는 이분법적 사고다. 이는 기술과 산업의 본질에 대한 이해 부족에서 비롯된 것이며, 궁극적으로 국가의 디지털 경쟁력을 약화시킨다.
블록체인의 근간은 자율성과 투명성, 그리고 다수의 참여자가 형성하는 신뢰에 있다. 이 신뢰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게 만드는 동력이 바로 보상체계이고, 이는 코인을 통해 구현된다. 블록체인과 코인은 불가분의 관계로 존재한다. 따라서 코인을 배제하는 것은 블록체인 기술 자체를 부정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일부 기관에서 강조하는 프라이빗 블록체인은 겉으로는 블록체인의 외형을 갖췄지만, 본질적 가치와 철학은 상실한 반쪽짜리 모델에 불과하다. 코인 없는 블록체인은 자신이 가진 능력을 10%도 발휘하지 못한다. 결국 코인 없는 블록체인은 허상일 뿐이다.
물론 코인과 관련해 부정적 사례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를 일반화해 산업 전체를 폄훼하는 것은 잘못된 접근이다. 인터넷 초창기에도 범죄적 활용 사례가 있었지만 인터넷의 발전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았다. 마찬가지로, 생성형 인공지능(AI)이 가짜 이미지를 만든다고 해서 AI 기술 자체를 막아서는 안 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블록체인과 코인도 그 잠재력과 한계를 구분해 바라봐야 한다.
코인을 투기 수단으로만 인식하는 시각은 블록체인 생태계의 혁신 가능성을 차단한다. 이미 미국을 비롯한 주요국들은 코인을 결제 시스템 혁신, 자산관리 효율화, 국경간 거래 간소화 등 다양한 영역에서 경제·금융 혁신의 핵심 인프라로 활용하고 있다. 정부 차원에서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고 기업 참여를 확대함으로써 산업 생태계를 성장시키는 것이다. 한국 역시 개인 간 매매 중심의 구조를 넘어 기업과 제도가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 그래야만 코인에 덧씌워진 투기적 프레임을 벗겨내고 생산적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코인의 정당성을 둘러싼 소모적 논쟁이 아니다. 블록체인과 코인이 본질적으로 불가분의 관계임을 인정하고, 이를 국가적 차원에서 전략적으로 활용할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이를 통해 한국은 글로벌 디지털 경제 경쟁력을 강화하고, 미래 성장의 새로운 동력을 확보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사회 전반의 인식 전환이다. 정부와 산업계, 학계가 함께 협력해 제도적 기반을 정비하고, 올바른 활용 사례를 확산시켜야 한다. 그래야만 블록체인과 코인이 우리 경제에 실질적 가치를 더하는 혁신 자산으로 자리잡을 수 있다.
정구태 인피닛블록 대표 kevin@inbl.i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