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특고압 전자파에 노출된 배전노동자 ‘갑상선암’ 산재 인정

2025-01-31

십수년간 전기가 통하고 있는 상태의 전신주에서 송·배전선로 유지·보수작업을 하면서 전자파에 노출된 배전 노동자의 갑상선암이 업무상 재해라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배전 노동자에게 발생한 갑상선암이 대법원에서 산재로 인정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대법원 3부(주심 오석준 대법관)는 지난 9일 배전전기원 김정남씨(56)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제기한 요양 불승인 처분 취소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낸 것으로 31일 확인됐다.

김씨는 1995년부터 2015년까지 한국전력 하청업체에서 배전전기원으로 일했다. 1998년까지는 정전 상태에서 작업했지만 이후 약 18년간은 정전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활선공법으로 일했다. 활선공법은 배전전기원이 직접 충전부에서 작업을 하는 직접활선공법과 전기원의 안전을 위해 스틱을 이용하는 간접활선공법으로 나뉜다. 한전은 2016년부터 직접활선공법을 원칙적으로 폐지하고 간접활선공법을 단계적으로 도입했다.

직접활선공법으로 일해온 김씨는 2015년 11월 갑상선 유두상암 진단을 받고 근로복지공단에 산재 신청을 했다. 작업 시 특고압 전자파에 노출됐고, 살아있는 전기를 만진다는 압박감과 과도한 스트레스로 질병이 생겼다는 이유에서다. 근로복지공단은 2020년 3월 극저주파 자기장 노출과 갑상선암 발생 간 인과성에 대한 연구가 부족하다는 등의 이유로 산재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에 김씨는 근로복지공단의 요양급여 불승인 처분을 취소해달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1심 법원은 2022년 7월 김씨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극저주파 자기장 노출과 갑상선암 발병 사이의 인과관계가 의학적·자연과학적으로 명백하게 증명된 것은 아니라 해도 김씨가 전기원으로 일하면서 극저주파 자기장에 장기간 노출된 것이 갑상선암 발병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어 “근로자에게 책임 없는 사유로 사실관계 등이 제대로 규명되지 않은 사정에 관해 열악한 지위에 있는 근로자에게 증명책임을 엄격하게 요구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했다. 재판부는 약 18년간 하루 8시간 이상 2만2900볼트 고압 전류가 흐르는 활선을 다뤘던 김씨가 작은 실수라도 하면 치명적 감전 사고를 당할 수 있다는 스트레스 때문에 면역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점도 짚었다.

2심 법원은 지난해 6월 1심 판단을 뒤집었다. 재판부는 “극저주파 전자기장이 갑상선암의 발병 내지 악화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추상적인 가능성을 넘어 극저주파 전자기장과 갑상선암의 발병 사이에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다고 평가하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다시 김씨의 손을 들어줬다. 대법원은 “극저주파 전자기장 노출이 갑상선암 발생에 영향을 미치는지에 관한 연구결과가 충분하지 않아 현재 의학·자연과학 수준에서 인과관계를 명확하게 규명하는 것이 곤란한다는 것만으로 김씨 업무와 갑상선암 사이의 인과관계를 부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현재까지의 연구결과를 종합해 보더라도 극저주파 전자기장과 갑상선암 사이의 상당 인과관계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단정하기는 어려워 보인다”고 했다.

민주노총 건설노조는 성명에서 “김씨가 2015년 갑상선암 진단을 받은 지 10년 만에 산재가 인정됐다”며 “근로복지공단은 신속하고 공정하게 재해보상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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