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연간 쌀 소비량은 해마다 줄고 있다. 국가데이터처(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은 55.8㎏으로, 1990년(119.6㎏)과 비교하면 53% 감소했다. 그런데 이런 통계가 왜곡됐다는 지적이 나왔다. 1인 가구 증가 등으로 소비가 늘어나고 있는 햇반 등 즉석밥은 통계에 전혀 반영되지 않아 1인당 쌀 소비량이 지나치게 적게 잡혔다는 주장이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정일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2일 국가데이터처 등에서 제출 받은 자료에 따르면, 1인당 쌀 소비량 통계에는 즉석밥ㆍ급식ㆍ외식ㆍ가공품 소비는 모두 ‘0’으로 처리되고 있다. 1인당 쌀 소비량 통계에는 각 가계가 직접 구매해 각 가정에서 조리ㆍ소비한 양만 포함된다. 즉석밥으로 쌀을 많이 먹어도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은 전혀 늘지 않는다는 뜻이다.
실제 1인당 쌀 소비량은 매년 줄고 있지만 가공용 쌀 수요는 꾸준히 늘고 있다. 국가데이터처의 사업체 부문 연간 쌀 소비량 통계에 따르면, 2020년 65만t이었던 가공용 쌀 소비는 지난해 87만3000t으로 뛰었다. 특히 햇반과 같은 가공식품 형태의 쌀 소비가 빠르게 늘고 있다. 주로 즉석밥을 생산하는 업체들인 ‘기타 식사용 가공처리 조리식품 제조업’의 쌀 소비량은 2020년 10만2955t에서 지난해 16만2697t으로 58%가 증가했다.

정 의원실은 즉석밥, 떡, 술 등으로 가공식품과 외식ㆍ급식 등으로 소비한 쌀 등을 포함하면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이 현재 국가데이터의 통계보다 20㎏은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햇반 등 즉석밥을 통한 소비량을 14만t, 가공식품 64만t, 외식ㆍ급식 등의 소비량 20만t을 통해 자체 추산한 수치다. 정 의원 측은 “전국 급식 시설과 외식업계에서 사용되는 쌀의 양도 연간 수십만t 규모지만 공식 통계에는 반영되지 않아 실제 쌀 소비가 과소 계상되는 구조”라고 주장했다.
양곡소비량 조사는 농업 관련 통계 중 가장 중요한 통계로 꼽힌다. 정부는 그해 생산량과 소비량 조사를 통해 그해의 쌀 초과 생산량을 판단해 가격 안정 등을 위한 시장격리(정부가 쌀을 사들여 보관)를 하고 있다. 국가데이터처는 2023년 이후 통계 개선 방안 등을 논의했지만, 아직 외식 부문 등의 쌀 소비량 반영 체계는 마련되지 않았다. 정 의원은 “즉석밥, 술, 떡, 급식 등 실제로 국민이 소비하는 쌀이 모두 빠진 통계를 ‘1인당 쌀 소비량’이라 발표하는 것은 국민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일”이라며 “이런 부실 통계에 근거해 정책을 수립하면 농업 수급과 예산 정책이 왜곡될 수 있다”고 말했다.

최근 쌀값 급등도 이런 가공용 쌀 수요 증가가 원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 따르면 지난 10일 기준 쌀 20㎏의 평균 소매가격은 6만7351원으로 전년보다 27.1% 올랐다. K-푸드 열풍 등으로 냉동김밥 등의 수요가 늘어나며 식품 가공업체들이 밥쌀용 쌀을 사들이며 정부의 시장 격리 정책으로 가뜩이나 부족해진 시장 재고 소진이 더 빨라졌다는 주장이다.
다만 정부 측 설명은 다르다. 가공용 쌀 등의 수요가 쌀 정책에 완전히 제외된 건 아니라고 해명한다. 국가데이터처는 양곡소비량 조사를 할 때 가구 부문 양곡소비량과 사업체 부문 쌀 소비량을 따로 조사해 내고 있다. 정부는 그해 쌀 수요량 등을 전망할 때 이 두 부문의 쌀 소비량 등을 감안해 쌀의 시장격리 물량 등을 정하고 있다.
특히 정부는 가공용 분야의 쌀 수요 증가가 민간 분야의 쌀 소비 증가로 이어지는 건 아니라는 입장이다. 주정 등 가공업체들은 정부가 비축해놓은 후 2~3년 묵은 쌀(구곡)을 싼 가격에 사서 주로 쓰고 있다. 사업체 부문 쌀 소비량은 2015년 53만t에서 2024년 87만t으로 늘었는데, 정부의 구곡 공급 물량도 같은 기간 35만t에서 56만t으로 증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