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살던 뒤안에’, ‘눈 감은 채’ 등의 시를 남긴 정양 시인이 31일 지병으로 투병 끝에 별세했다. 향년 83세.
1942년 전북 김제에서 태어난 고인은 동국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교사로 일하던 1968년 대한일보 신춘문예에 시 ‘천정을 보며’가 당선되며 등단했다. 1977년에는 윤동주 시에 대한 평론 ‘동심의 신화’로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됐다.
고인은 ‘까마귀 떼’, ‘빈집의 꿈’, ‘살아 있는 것들의 무게’, ‘눈 내리는 마을’, ‘길을 잃고 싶을 때가 많았다’, ‘나그네는 지금도’, ‘철들 무렵’, ‘헛디디며 헛짚으며’ 등의 시집을 펴냈다. 모악문학상, 아름다운작가상, 백석문학상, 구상문학상 등 문학상과 교육부장관표창, 황조근정훈장을 받았다.
그는 군부 독재, 5·18 광주민주화운동 등 현대사의 격랑 속에서도 시대의 아픔과 인간의 내면을 섬세하게 조명하는 시를 썼다.
정 시인의 생애는 우리나라 현대사와 맥을 함께 한다. 그의 아버지는 사회주의 운동을 하다 6·25 때 실종됐다. 정 시인의 ‘절친’인 소설가 윤흥길은 이 가족사를 모티브로 유명한 ‘장마’를 써내기도 했다. 정 시인은 1971년 시월 유신의 충격으로 절필을 선언하기도 했다.
전북 지역에서 주로 활동했던 고인은 2016년 시인 안도현, 김용택 등 전북을 기반으로 하는 여러 문인과 의기투합해 지역 출판사인 ‘모악’을 차려 문학의 다양성과 출판의 지속성을 위해 노력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고인은 생전 출판기념회에서 “어려운 시는 쓰기 쉽고, 쉬운 시는 쓰기 어렵다”는 말로 담백하고 쉬운 시어로 삶의 본질을 포착하는 것이 시인에게 주어진 과제라는 점을 강조했다.
고인은 시인이자 교육자이기도 했다. 그는 1960년대 중·고등학교 교사로 학생들을 가르쳤고, 1980년부터 우석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를 맡아 후학을 양성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임정순씨, 아들 정범씨, 딸 정리경씨 등이 있다. 빈소는 연세대 용인장례식장에 마련됐다. 발인은 내달 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