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덕노의 식탁 위 중국] 중국의 대표 맛은 식초?...그 발달 배경과 역사

2025-12-18

흔히 한국을 대표하는 맛과 조미료는 매운맛과 고추장, 일본은 짠맛과 간장이라고 한다. 그러면 중국은 어떨까? 보통은 신맛(酸)과 식초를 꼽는다.

중국 음식이라면 일반적으로 기름에 볶거나 튀긴 음식을 떠올릴 뿐 신맛에 대한 인상은 뚜렷하게 남아있지 않은데 그럼에도 왜 식초를 중심 조미료로, 신맛을 대표 맛으로 꼽는 것일까? 중국인들에게 식초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식초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어느 곳에서나 음식 만들 때 들어가는 필수 조미료다. 하지만 중국 음식문화에서는 더욱 두드러지는 부분이 있다.

단순히 맛을 내기 위해 살짝 첨가하는 정도를 넘어 식초 맛을 유난히 강조한 요리가 적지 않다. 그만큼 식초를 많이 먹고 좋아한다.

그중 하나가 돼지 등심과 갈비를 설탕과 식초로 조리한 탕추리지(糖醋里脊)와 탕추파이구(糖醋排骨)다. 우리 탕수육(糖醋肉)의 원조가 되는 음식이다.

뿐만 아니라 생선도 식초로 조리한다. 탕추위(糖醋魚)가 그것이고 탕수가치(糖醋茄子)처럼 채소 요리도 있다.

식초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신 맛을 강조한 수프인 쏸라탕(酸辣湯)과 국수인 쏸라펀(酸辣粉)도 있다.

탕추 요리나 쏸라 음식처럼 두드러지지는 않지만 생선 양념처럼 조리했다는 어향가지(魚香茄子), 채소를 차갑게 무친 량반차이(凉拌菜) 여름철에 많이 먹는 오이무침(拍黄瓜) 등도 알게 모르게 식초가 중심 조미료다.

중국에는 이렇듯 식초를 핵심 조미료로 사용한 음식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게다가 중국 사람들, 만두 먹을 때도 식초 간장에 찍어 먹고 국수를 먹어도 식초 넣은 간장이나 고추기름 등으로 간을 맞추니 하루 식사에서 식초가 빠지는 날이 드물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이런 우스갯소리까지 생겼다. 중국에서 식초를 제일 많이 먹는 지역은 북방의 산서성(山西省)이다. 이곳 사람들, 옛날부터 전쟁이 나면 전선으로 떠날 때 총칼은 챙기지 않아도 식초가 든 항아리는 빼놓지 않고 갖고 갔다고 한다.

전쟁터에서 목숨을 지켜 줄 총칼보다 식초를 더 소중하게 여겼다는 것이니 식초가 일종의 생명줄이었던 셈이다. 그런 만큼 중국에서 식초는 약으로도 쓰였다. 물론 중국뿐만 아니라 우리나 서양 의학서에도 식초를 약으로 썼다는 기록이 있지만 중국은 유별났던 것 같다. 우리는 감초를 보고 약방에 빠지지 않는다고 하지만 중국에서는 식초를 그렇게 여겼다.

예컨대 청나라 건륭황제 때 황후가 병이 났다. 아무리 치료해도 병이 낫지 않자 황실 어의가 전국의 명의를 불러 약을 짓게 했다. 이때 만든 약 20종류에 모두 식초가 사용됐다고 한다.

중국인들 왜 이렇게 식초를 좋아하고 많이 먹게 된 것일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기후 풍토도 그중 하나로 꼽는다. 한국의 무덥고 습한 여름과 추운 겨울로 인해 고추를 사용한 매운 음식과 고추장이 발달한 것처럼 중국도 날씨와 풍토, 음식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중국, 특히 중원을 포함한 화북 지방의 수질은 석회 성분이 많이 녹아 있는 알칼리성이다. 또 날씨도 상당히 건조한 편이다. 더해서 국수와 만두 등 밀가루 음식을 주식으로 먹는 분식 문화권이다. 때문에 식초를 통해 알칼리성 수질을 중화시키고 밀가루 음식의 소화를 도우며 식욕을 촉진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중국에서 식초를 약으로까지 삼으며 애지중지 여겼던 이유, 식초 문화가 발달한 배경이다.

중국에서는 언제부터 식초를 광범위하게 먹었을까? 흔히 고대 주나라 때부터로 『주례』에 나오는 식해를 더 발효시킨 것이 식초의 원조라고 한다. 물론 이것이 중국 최초의 식초일 수는 있겠으나 극히 일부 상류층에서만 사용했을 것이다.

반면 대중적으로 널리 퍼진 것은 송과 원나라 무렵일 것으로 추정한다. 12세기 남송 때 문헌인 『몽양록』에 황실에 식초 창고인 어초고(御醋庫)를 두었다는 기록과 시장에서 식초를 팔았다는 기록이 보인다. 아마 이 무렵 양조법의 발달로 식초가 상류층의 조미료에서 벗어나 평민들의 식탁에까지 오른 것이 아닌가 짐작된다.

참고로 중국에서 식초를 먹는다(吃醋)는 말은 질투하다 라는 뜻으로 쓰인다. 이 말의 어원에는 유래가 있다. 당 태종이 개국공신 방현령에게 미녀를 하사했다. 그러자 황제의 명을 거절할 수 없었던 방현령이 부인의 성질이 대단해 도저히 첩을 들일 수 없다며 핑계를 댔다.

이에 당 태종이 부인을 궁으로 불러 식초가 든 단지를 내주며 방현령의 축첩을 허락하든지 아니면 황제의 명을 거역했으니 단지에 든 독약을 마시라고 다그쳤다. 그러자 부인이 냉큼 단지 속 액체를 마시며 죽어도 안 된다며 버텼다.

식초를 마신다는 말이 질투하다는 뜻으로 쓰이게 된 유래라고 하는데 뒤집어 보면 식초를 그만큼 소중하게 여겼다는 의미로도 해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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