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소녀 애순이 좋아했던 노스탤지어, 마케팅서도 떴어요

2025-04-02

2025년 창립 50주년을 맞이한 마이크로소프트는 역사적 순간을 되돌아보고 인공지능(AI)의 미래를 제시하는 다양한 행사를 진행 중이다. 지난달에는 기념용 바탕화면을 배포했는데, 전설적인 카드 게임 솔리테어(Solitaire)를 비롯해 워드 프로세서, 엑셀 스프레드시트의 구식 디자인을 그대로 사용해 ‘촌스럽지만 추억에 빠져들게 한다’는 반응이다. 윈도 운영체제의 버전별 바탕화면과 사운드 변천사도 화제다. 특히 윈도xp의 광활한 들판 화면과 청명한 시작 소리에 애정을 지닌 사람이 많다. 페이스북·유튜브도 20세를 넘겨, 디지털 시대를 이끌어온 테크 기업들이 어느새 고객과 추억을 나누는 사이가 됐다.

과거 소환해 위로와 안정감 추구

고객과 추억 쌓으면 연결감 강해

개도국보다 선진국에서 더 효과

지난 시절을 회상하며 느끼는 노스탤지어는 ‘씁쓸하면서도 달콤한(bittersweet)’ 복합적인 감정이다.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 과거를 소환하는 노스탤지어 마케팅은 더욱 빈번해졌다. 전환기를 맞은 모빌리티 업계에서는 추억 속 클래식 모델을 미래 지향적으로 재해석하는 시도가 눈에 띈다. 스텔란티스와 폭스바겐은 1950년대 문화의 아이콘으로 인기를 끌었던 피아트 500과 마이크로버스를 전기차로 재탄생시켰고, 포드는 머슬카의 상징인 카프리(Capri)를 30년 만에 재출시하며 ‘레젠드가 돌아왔다’는 광고 캠페인을 벌였다.

2024년 미국 패션업체 제이크루(J.Crew)는 2017년 단종했던 종이 카탈로그를 부활시켜 우편으로 배송하기 시작했다. 세련된 스타일의 사진이 가득했던 제이크루 카탈로그는 1980년대와 90년대 미국 젊은이들이 사랑하는 패션 아이콘이었다. 패스트패션 브랜드의 공세와 온라인 쇼핑의 확산으로 사라졌던 카탈로그가 90년대 스타 데미 무어를 주인공으로 재등장하자 오랜 고객들은 열광했다. 고급스러운 캐주얼이란 정체성을 회복한 제이크루는 2024년 매출 30억 달러를 기록하며 제2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일본시장 공략한 네슬레의 장기전

고객과 오랜 시간을 보낸 장수 브랜드는 추억을 공유하는 애착의 대상이 된다. 경쟁에서 생존하는 과정에서 고도의 노하우를 축적했을 것으로 기대되어 신뢰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이런 이유로 오랜 업력을 부각하는 전략이 종종 사용된다. 하인즈와 진로소주는 케첩과 소주병에 ‘EST. 1869’, ‘Since 1924’를 새겨넣는다. 아웃도어 브랜드 에디 바우어(Eddie Bauer)는 2023년 로고를 단순화하는 리브랜딩 과정에서 전통을 중시하는 밀레니얼 세대의 성향을 고려해 공식 마크에 ‘EST. 1920’를 유지하기로 했다. 미국 최초로 특허를 받아 생산한 구스다운 재킷을 2차대전 당시 미군에게 공급했던 스토리도 재조명했다.

인류학 분야의 석학인 클로테르 라파이유(Clotaire Rapaille)는 어린 시절 경험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특정 제품, 브랜드에 관한 직간접적인 경험이 초기 기억(Early Memories)으로 각인되어 평생의 소비성향과 행동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그는 1970년대 일본에 진출한 네슬레가 막대한 투자에도 차(茶) 문화의 벽을 넘지 못해 커피 시장 개척에 곤욕을 치를 때 파격적인 해결책을 제시했다. 커피에 관한 향수가 없는 성인을 대상으로 무의미한 마케팅을 중단하고 아동용 커피 향 초콜릿으로 미래의 커피 소비자를 양성하라는 것이었다. 인내의 길을 택한 네슬레는 10여 년 후 결실을 이뤘다. 커피 향 킷캣을 먹으며 자란 아이들이 큰 커피 시장을 형성했고, 네스카페는 일본 커피 시장의 리더로 자리 잡았다.

디즈니, 크루즈를 미래 사업으로

소비자는 향수를 자극하는 제품이나 서비스에 조건 없는 호감을 느끼고 높은 가격을 기꺼이 지불하기도 한다. 친숙감과 연결감이 기업의 새로운 시도와 프리미엄 전략의 효과성을 높여주는 셈이다. 풍부한 스토리와 다양한 캐릭터로 팬덤을 확보한 디즈니는 크루즈 사업을 미래 핵심 사업으로 삼아 향후 10년간 120억 달러를 투자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가족여행, 신혼여행 등 다양한 고객의 욕구에 부합하기 위해 디즈니 매직, 드림, 어드벤처 등 각기 다른 테마를 지닌 크루즈 라인을 확보하고 운항 지역을 전 세계로 확장 중이다. 디즈니 크루즈는 경쟁사 대비 비싼 가격에도 이용객의 80% 이상이 재방문 의향을 보일 정도로 만족도가 높다고 한다.

차별화가 어려운 코모디티 시장에서도 고객과 추억을 쌓으며 강한 연결감을 형성하면 소모적인 경쟁을 피할 수 있다. 1889년 창업한 몰튼솔트(Morton Salt)는 1914년부터 사용한 우산 쓴 소녀가 그려진 용기가 매개체가 되어 미국은 물론 전 세계 소비자에게 친숙한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100년이 넘도록 유지된 “비가 와도 뭉치지 않는다(When it rains it pours, 원래는 습해도 소금이 퍼붓듯이 잘 흩어진다는 의미로 쓰였지만 나중엔 비가 오면 억수처럼 쏟아진다는 표현으로도 쓰임)”는 슬로건과 시대에 따라 미세하게 변화된 소녀의 모습은 포스터, 머그잔 등 빈티지 소품으로도 제작돼 수집가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한국 젊은이, 브랜드 역사에 관심 커

노스탤지어는 개발도상국보다 선진국 시장에서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으로 설명된다. 영국 리즈대학의 마틴 하인버그(Martin Heinberg) 교수가 신흥국(중국)과 선진국(일본) 소비자를 대상으로 진행한 연구에서 노스탤지어 마케팅의 효과는 선진국이 유의미하게 큰 것으로 나타났다. 급성장하는 시장에서 사람들은 더 나아질 것으로 예상되는 미래에 초점을 두지만, 성장세가 멈춘 선진국에는 과거 행복했던 시절을 뒤돌아보는 소비자가 많기 때문이다.

선진국 한국을 경험하며 성장한 젊은 층은 한국 기업에 대한 기대 수준이 높고 브랜드 역사와 전통에도 관심이 많다. 새로운 제품이 쏟아져 나오는 환경 속에서 익숙하고 검증된 브랜드에 대한 호감도가 높아지기도 한다. 경제적, 사회적인 불확실성과 불안감이 커질수록 지난날을 떠올리며 위로와 안정감을 얻고자 하는 마음이 커진다. 과거와 미래, 고객과 브랜드를 연결하는 노스탤지어는 단편적인 마케팅 소재가 아닌 기업의 성장 잠재성을 확대하는 밑바탕이 된다.

최순화 동덕여대·국제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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