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약 900억원의 자금을 모집한 뒤 전액 손실로 끝난 ‘벨기에펀드’ 사태를 둘러싸고 금융감독원이 판매사들에 대한 현장 검사에 들어갔다. 불완전판매 의혹이 제기된 가운데, 이찬진 금감원장이 취임 후 강조해온 ‘소비자 보호 강화’ 방침이 첫 시험대에 오른 셈이다.
15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감원은 이날부터 벨기에펀드를 판매한 한국투자증권, KB국민은행, 우리은행 등 3곳에 대해 현장 검사에 착수했다. 한국투자증권이 약 589억원을 판매한 최대 판매사이며, 국민은행과 우리은행은 각각 200억원, 120억원 규모를 판매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투자자 민원이 잇따르고 사회적 논란이 커져 현장 조사를 시작했다”며 “상품 판매 과정에서의 불완전판매 여부를 집중 점검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펀드는 2019년 한국투자리얼에셋운용이 설정한 상품으로, 벨기에 정부기관이 장기 임차 중인 현지 오피스 건물의 임차권에 투자하는 구조였다. ‘임대율 100%’, ‘정부기관 임차로 안정적인 수익’ 등을 내세워 투자자를 모았지만, 금리 급등과 유럽 부동산 경기 악화로 매각에 실패하며 전액 손실로 귀결됐다.
한국투자리얼에셋운용은 올해 3월 자산운용보고서에서 “연내 펀드를 상환할 예정이나 투자자에게 분배될 금액은 없을 것”이라고 공시했다. 사실상 원금 회수 가능성이 없음을 공식화한 것이다.
피해 투자자들은 당시 판매사들이 “절대 손실이 날 리 없다”는 식의 권유를 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판매 과정에서 원금 보장을 암시하거나 위험성을 제대로 설명하지 않은 정황이 드러날 경우, 배상 책임이 인정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현재 한국투자증권은 자율 배상 절차를 진행 중으로, 피해자에게 20~50% 수준의 배상률을 적용하고 있다. 하지만 금감원 조사를 통해 불완전판매가 공식 확인될 경우, 배상 비율과 의무 이행 범위가 확대될 전망이다.
특히 이찬진 금감원장이 취임 이후 첫 번째로 직접 챙기는 대형 소비자 피해 사례라는 점에서, 금감원의 조사 강도는 상당히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 원장은 최근 금융투자업계 CEO 간담회에서 “직원 본인이 이해하지 못하거나 가족에게 권하지 못할 상품은 팔지 말라”며 “투자자가 합리적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설명 의무를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금융당국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편면적 구속력’ 제도 도입을 추진 중이다. 이는 금감원이 내린 분쟁조정안을 소비자가 수락할 경우, 금융사가 동의하지 않아도 재판상 화해 효력이 발생해 반드시 이행해야 하는 제도다. 당국은 소액 피해자들이 장기 소송에 휘말리지 않고 신속히 구제받을 수 있도록 제도화를 서두르고 있다.
전액 손실이라는 초유의 사태에 소비자 신뢰가 흔들리는 가운데, 이번 금감원 조사가 불완전판매 관행을 바로잡는 계기가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