쇳물은 멈추지 않는다
“바닷속까지 감사했다”
영일만의 포항제철소는 황량한 모래밭 위에 세웠고, 광양만의 광양제철소는 바다를 메운 인공부지 위에 세웠다. 그래서 광양제철은 바다를 매립한 뒤 연약지반을 개량해야 했다.
바다 복판을 가로질러 장장 13.6㎞에 걸쳐 이뤄지는 호안(둑) 축조 공사. 이는 매립 부지를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한 관건이었다. 공사가 잘못되면 밀물이나 홍수에 둑이 무너질 수 있고, 구멍이라도 생기면 어느 순간에 뻥 뚫려 바닷물이 안으로 밀려들 수 있었다.
그래서 호안 축조는 설계부터 치밀하게 했다. 본체와 파도를 막아줄 외벽, 미세한 구멍이나 토사 유출을 방지하는 방사필터 등으로 구분해 구조를 달리 했다. 부분마다 쓰는 석재도 달랐다. 외벽에는 튼튼한 바위, 방사필터에는 고운 자갈이 필요했다. 석재는 매립할 바다에 있는 섬들을 폭파해 조달했다. 이런 방식은 공사를 쉽게 하지만, 불량 석재가 섞여들 위험도 있었다. 나는 이게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1983년 여름, 나는 감사팀 한종웅에게 호안 축조공사를 살펴보라고 지시했다.
포항에 있던 한종웅이 광양에 와 보니 호안은 이미 길게 뻗어 있었다. 만조 때 호안은 바다 위의 외길처럼 신비스러운 풍경을 연출했다.
1주일 뒤 열린 임원회의에 나도 참석했다. 한종웅이 감사 결과를 보고했다. 곳곳에 불량 석재가 적지 않더라는 요지였다.
“시공 상태를 모두 확인했어?”
내 질문에 한종웅이 어리둥절해 했다.
“바닷속 시공 상태도 점검했느냐 말이야?”
“바닷속까지는….”
나는 혀를 끌끌 찼다.
“둑이 무너지면 물속에서부터 터지지 물 밖에서 터지나!”
그들은 다시 광양만으로 내려가야 했다. 이번엔 아예 스쿠버 장비를 갖추고 훈련까지 받았다. 파도가 소용돌이치는 광양만 바다 밑은 이들 돌팔이 잠수부들에겐 위험하기 짝이 없었다. 그러나 다른 방도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