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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억 대작 드라마 ‘별들에게 물어봐’(tvN, 이하 ‘별물’)의 흥행 실패가 충격적이다. 제작사 주가도 휘청거리게 만들었다.
드라마 불패 신화의 배우 공효진이 주연을 맡고, 국내 최초로 우주 정거장을 배경으로 하는 등 흥미를 끌 요소는 충분히 있었다. 하지만 뚜껑을 열자마자 기대는 우려로 바뀌었다. 시청률은 1~2%대에 머무른 채 반등하지 못했고 다음 주 종방을 앞뒀다.
500억 들인 드라마 흥행 실패
뜬금없는 설정에 대중들 외면
현실과의 접점 더욱 고민해야
드라마는 왜 정상 궤도에 진입하지 못한 채 추락한 걸까. 재벌가의 대를 잇기 위해 수백억 원의 돈을 들여 우주에서 인공 수정을 시도한다는 설정 자체가 문제였다. 요즘 사람들의 정서와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
남녀 주인공의 로맨스도 뜬금없었고, 우주에서의 초파리 교미와 실험용 쥐 심장 수술은 실소를 자아냈다. 우주에서 표류하던 서사가 안드로메다로 가버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중력 공간에서의 일상을 표현하기 위해 특수 효과에 들인 돈만 해도 100억원에 가깝다.
이 드라마가 시청자 마음에 안착하지 못하는 걸 보면서 서사도 ‘중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뮤지컬 ‘위키드’의 대표곡 ‘디파잉 그래비티’ 처럼 중력을 벗어나 자유롭게 날고 싶은 욕망은 누구나 있다. 하지만 중력 없이 살아보면 불편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중력이 있기에 집을 지을 수 있고, 식물도 뿌리 내릴 수 있다. 물건을 내려놓고 양손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것도 중력 덕분이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중력은 인간의 삶을 안정케 하는 힘이다.
서사도 마찬가지다. 최첨단 공간을 보여주고, 중력을 초월한 로맨스를 표방한다 해도 이야기는 중력처럼 시청자 마음을 붙들어 매야 한다. 현실에 발붙인 서사가 중요하다는 얘기다. ‘별물’의 실패로 국내에서 우주·SF 소재는 흥행하기 힘들다는 얘기가 또 나오고 있지만, 문제는 장르가 아닌 서사에 있다.
할리우드 영화 ‘그래비티’는 어린 딸을 잃은 뒤 희망을 잃고 살아가던 주인공이 우주에서 삶의 의지를 회복하고 지구로 귀환하는 과정을 그렸다. 천신만고 끝에 지구로 돌아온 주인공이 바닷가에서 두 발로 일어나 걸어가는 마지막 장면은 감동 그 자체다. 중력을 견뎌가며, 두 발로 뚜벅뚜벅 나아가는 것. 그게 우리의 삶 아닌가.
또 다른 SF 명작 ‘인터스텔라’는 웜홀·블랙홀 등 물리학적 개념을 시각화하면서도 가족·사랑·희생이라는 인류 공통의 테마를 놓치지 않았다. 극한 상황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가능성을 찾아내는 도전 정신을 그려냈다. 두 영화의 성공이 의미하는 바는 뭘까. 판타지적 상상력, 최첨단 시각효과보다 더 중요한 건 관객의 마음을 파고드는 서사라는 것이다.
‘별물’과 같은 시간대에 편성돼 시청률·화제성 모두 우위를 보인 경쟁작들을 보면, ‘별물’이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지난주 종영한 ‘나의 완벽한 비서’(SBS)는 사장과 비서의 로맨스물이지만, 우리 사회의 고단한 현실이 곳곳에 녹아 있다. 헤드헌터라는 여주인공의 직업상 직장을 매개로 펼쳐낼 수 있는 사람 이야기가 다양하기 때문이다.
우연히 양반이 된 노비 출신 여성이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 ‘옥씨부인전’(JTBC)은 시대극의 외피를 둘렀지만, 이야기는 지금 우리 사회의 문제점들을 떠올리게 한다. 화제의 넷플릭스 드라마 ‘중증외상센터’도 재미 못지않게 의미 또한 묵직하다. 응급 의료의 열악한 현실을 뼈아프게 그려내면서, 사람의 목숨을 구하는 게 의사의 소명이란 당연한 사실을 일깨운다.
서사는 장르와 상관없이 우리의 삶과 현실을 지향해야 한다. 이야기가 뜬구름처럼 떠돌지 않고, 사람들의 마음에 안착하려면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지금 무슨 이야기를 할 것인가, 요즘 사람들은 어떤 이야기를 듣고 싶어할까, 이야기를 통해 어떤 시사점을 줄 것인가 등을 치열하게 고민해야 한다. 사람들의 마음을 잡아끄는 서사의 중력은 거기서 나온다.
“대중이 스타보다 이야기를 중시하는 추세다. 스타 캐스팅에 목매기보다는 이 시대 관객이 정말 필요로 하는 이야기가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는 전찬일 영화평론가의 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변호사가 법정 드라마를 쓰고, 의사가 메디컬 활극을 선보이는 시대다. 경험에서 우러난 현실적인 설정과 에피소드에 시청자들이 공감하고 열광한다. 현실과의 접점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안 그래도 살기 힘든 세상이다. 사람들이 현실이란 땅 위에 굳건히 두 발을 딛고 살아갈 수 있도록 위로하고 격려해주는 콘텐트가 더욱 많아졌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