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축·재처리에 의한 '핵잠재력' 보유가 가장 큰 변화
경제·환경적 효과는 허구...핵무장 아니면 불필요
'핵잠재력 보유'와 '핵무장'은 전혀 다른 차원 문제
혼란 막으려면 농축·재처리 '국민적 이해' 높여야
[서울=뉴스핌] 유신모 외교전문기자 = 정부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설득해 핵연료 제조를 위한 '우라늄 농축'과 사용후핵연료 '재처리'가 가능하도록 현행 한·미 원자력협정을 수정 또는 개정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한 것을 외교적 성과로 꼽고 있다. 국민 여론도 이를 환영하고 있으며, 실제로 이재명 정부 지지율도 높아진 것으로 분석된다. 그러나 이게 외교적 성과인지 여부를 평가하려면 농축·재처리로 한국이 얻을 수 있는 실익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파악해야 한다.
가장 의미있는 변화는 한국이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잠재력'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정부 관계자가 들으면 질색을 할 소리지만, 사실이 그러하다.

정부는 농축·재처리에 부수적으로 따라오게 되는 '핵 잠재력'에 대해서는 "전혀 의도하고 있지 않다"고 거리를 둔다. 정부는 산업적 차원에서 우라늄을 농축해 핵연료를 직접 제조하는 것이 경제성과 에너지 안보 차원에서 필요하고, 사용후핵연료가 포화 상태여서 재처리가 시급하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농축·재처리로 경제성이나 핵연료 수급, 환경 문제 등에서 긍정적인 효과를 얻는다는 것은 허구에 가깝다.
핵연료를 직접 제조하는게 경제성이 있다는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 핵연료는 제조하는 것보다 구매하는 것이 훨씬 싸다. 이 시장 구조가 변할 일은 없다. 만드는 것이 더 싸다면 모든 나라가 농축을 하겠다고 나설 것이므로 핵비확산체제가 무너진다. 지금과 같은 시장 구조는 핵비확산 차원에서 유지될 수 밖에 없다.
한국은 핵연료의 40% 정도를 러시아에서 수입한다. 일각에서 러시아가 공급을 중단한다면 문제라고 우려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기 어렵다. 핵연료는 희토류처럼 무기화할 수 있는 독점 품목이 아니어서 러시아가 공급을 중단해도 다른 나라가 생산할 수 있다. 미국도 핵연료 상당 부분을 러시아로부터 수입하고 있다. 한국이 농축 권한을 얻는다 해도 '연구용 농축 시도'라면 모를까 핵연료를 조달하기 위한 농축은 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재처리도 정부 주장과 달리 환경 문제나 폐기물 관리와는 무관하다. 재처리를 위해 사용후핵연료를 해체하면 그 안에 들어있는 온갖 방사성 물질을 따로 관리해야 하기 때문에 핵폐기물 관리가 오히려 더 어려워진다. 재처리로 만든 재활용 핵연료는 일반 핵연료에 비해 서너 배 비싸기 때문에 '재처리=재활용'이란 주장은 말이 안 된다.
재처리 시설 부지를 확보하는 것도 문제다. 저준위 폐기물 처리 부지를 구하는데도 나라가 휘청거릴 정도로 지역의 반대가 심했는데 사용후핵연료를 해체하고 방사성 물질을 다루는 재처리장을 어디에서 구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재처리를 해서 부피를 줄이지 못하면 원전 가동을 중단해야 한다는 것도 낭설이다. 폐기물 관리를 위해 사용후핵연료를 재처리하는 나라는 전 세계에 하나도 없다. 사용후핵연료 관리 문제는 재처리가 아니라, 핵폐기물 처분장 부지를 확보해야 풀린다. 이는 재처리와 무관한 국내 문제다. 따라서 핵무기를 만들 목적이 아니라면 재처리를 해야할 이유는 없다.
결국 한국이 농축·재처리 권한을 갖는다고 해도 실제로는 농축도, 재처리도 하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렇다면 왜 농축·재처리가 필요한지 생각해봐야 한다.
정부가 농축·재처리를 추구하는 또 다른 명분은 일본이다. 적어도 일본과 같은 수준의 권한은 가져야 한다는 논리다. 그러나 경제적·환경적 측면에서 일본의 원자력 정책은 실패한 정책이다. 이를 한국이 답습할 필요는 없다. 입지도 않을 옷을 '옆 집 아이가 갖고 있으니 나도 사야겠다'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일본은 농축·재처리 권한을 갖고 있지만 실제로는 하지 않는다. 핵연료는 수입에 의존하고 있고 재처리 시설은 줄잡아 100조원에 가까운 막대한 돈을 들이고도 가동하지 못하고 있다. 그 비용은 전기료에 포함돼 고스란히 일본 국민들이 부담하고 있는 중이다. 일본의 원자력 정책은 프랑스에 '위탁 재처리'해 얻은 수십톤의 플루토늄을 남겼다. 한국이 일본의 '실패한 원자력 정책'을 따라가서 얻을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천문학적 규모의 예산을 필요로 하는 '핵잠재력 보유'라는 심리적 위안일 것이다,
그러나 핵잠재력을 가졌다는 것과 실제 핵무기를 만드는 것은 완전히 다른 차원의 이야기다. 핵무장을 하기 위해 중요한 것은 핵물질 확보나 기술력이 아니라 한·미 동맹과 국제비확산체제 존중 여부에 대한 결단, 그리고 국제사회의 제재와 비난을 감수하고라도 핵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는 국내적 합의다. '농축·재처리만 할 수 있으면 수개월 안에 핵무장을 할 수 있다'는 믿음은 국제정세와 한국의 안보·경제적 환경을 깡그리 무시한 매우 위험하고 안일한 인식이다.
조만간 한·미는 원자력 협정을 수정 또는 개정하기 위한, 결코 쉽지 않은 협상을 시작할 것이다. 협상 과정에서 일어나게 될 많은 일들은 공개되지 않을 것이며 그에 따른 오해와 혼란이 발생할 것이다. 한·미 동맹이 흔들릴 정도로 광풍이 불었던 2010~2015년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 과정을 되풀이 하지 않으려면 농축·재처리 권한 확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로 인해 얻을 수 있는 실익이 무엇인지 등에 대한 국민적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opento@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