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역사에서 벌어지는 전쟁은 종종 교역의 형태를 바꾼다. 가장 비이성적인 전쟁의 한복판에서, 가장 냉정한 계산이 오간다. 평소에는 상상하기 어려웠던 거래도 전시엔 가능해진다.
우크라이나 전쟁도 마찬가지다. 국경을 넘어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를 위해 북한은 병력과 포탄, 미사일 등을 제공했다.

북한산 포탄 수백만 발과 1만이 넘는 북한군 병력이 선박과 비행기로 북·러 국경을 넘었고, 그 대가로 북한은 실전 데이터와 첨단 무기를 손에 넣을 모양새다. 거래는 조용히 이뤄지고, 효용은 실전에서 검증된다.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가 무력화되는 상황에서 우크라이나는 북한 군수산업의 발전을 촉진하는 불쏘시개가 되고 있다. 북한은 러시아를 앞세워 가장 은밀한 방식으로 미래 전쟁을 준비하고 있다.
◆수백만발의 포탄, 양국의 공생을 상징한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갑작스레 밀착한 북한과 러시아 관계에 대해 새뮤얼 퍼파로 미국 인도태평양 사령관은 “상대의 약점을 보완해 상호 이익을 도모하는 거래적 공생 관계”라고 불렀다. 이해관계가 두 권위주의 정권을 끈끈하게 묶어주는 연결고리가 된 셈이다.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는 막대한 물량의 포격전을 통해 우크라이나군을 압박했다.
영국 안보연구기관 오픈소스센터(OSC)의 최근 연구에 따르면, 전쟁 초기 러시아군은 하루에 최대 3만8000발의 포탄을 쐈다. 우크라이나군의 포탄 발사량이 하루 최대 9000발에 불과했던 것과 비교하면, 우크라이나군을 압도할 수준이다.

러시아는 이같은 포격전으로 도네츠크 등에서 일부 성과를 거뒀지만, 포탄 재고는 급격히 감소했다. 2023년에 포탄 생산 능력을 크게 늘렸지만 탄약 부족으로 대규모 화력 유지에 어려움을 겪었다.
북한은 러시아의 빈틈을 파고들었다. 포병 화력을 중시하는 옛소련 전쟁개념을 유지하고 있던 북한은 냉전 시절부터 122·152㎜ 포탄과 대구경 로켓탄 등을 대량생산할 군수산업 기반을 갖췄다.
냉전 이후 러시아와 동유럽에서 옛소련 무기가 대량으로 저렴하게 풀리면서 북한산 무기 수요가 급감, 북한은 군수공장 가동률 유지가 어려웠다. 핵·미사일 개발에 인력과 자원이 집중되면서 많은 비용이 소요되는 재래식 무기 개발이 지연됐고, 군수공장 가동도 영향을 받았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가 직면한 포탄 부족 문제는 러시아로 하여금 북한에 접근하도록 했고, 북한은 이를 군수산업 활성화에 적극 이용했다.
한국국방연구원(KIDA)의 ‘북·러 군사협력에 의한 북한 군수산업 영향과 군사능력 변화’에 따르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023년 7월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부장관을 만난 직후 8월부터 군수공장 현지지도에 나섰다.
김 위원장이 방문한 군수공장은 포탄, 미사일, 저격총, 통신기기, 장갑차공장 등이 포함되었다. 이 과정에서 무기 증산과 공장 현대화를 계속 지시했다.

이와 관련해 북한전문매체 데일리NK는 최근 “단거리 탄도미사일과 방사포(다연장로켓포) 등을 생산하는 평안북도와 자강도 일부 군수공장들이 24시간 가동체제에 들어갔다”고 전했다.
해당 무기들은 러시아에 공급돼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쓰인 것으로 확인됐거나 러시아로 넘어갈 가능성이 큰 것들이다.
실제로 북한은 최근까지 러시아에 수백만 발의 포탄과 단거리 탄도미사일 수백기를 공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는 포탄 수요의 50%를 북한에서 충당함으로써 우크라이나군을 압도할 만한 화력전을 지속할 수 있게 됐다.
북한은 러시아에 단거리 탄도미사일을 공급, 실전 데이터를 확보하면서 기술적 개선도 이뤄냈다.
러시아는 지난해 중반부터 KN-23 단거리 탄도미사일을 하르키우, 수미 등에 수십 발 이상 발사했다. 일부 미사일은 집속탄이 장착됐다.

처음에는 오차가 500~1500m를 넘었지만, 지난해 말부터는 50~100m로 대폭 향상됐다. 키릴로 부다노우 우크라이나 국방정보국장은 “초기에 정확도가 낮았으나, 러시아 전문가들의 지원으로 개량 작업이 진행돼 충분한 정확도를 갖췄다”고 분석했다.
북한으로선 러시아의 고급 기술 피드백을 기반으로 실제 탄도미사일 성능을 현장에서 개선하는 셈이다. 북한이 우크라이나를 사실상의 무기 실험장으로 삼는 셈이다.
이같은 양상은 북·러의 거래를 단순한 무기 거래로 보기 어렵게 한다. 러시아는 전쟁을 지속하는데 필요한 포탄과 미사일을 받고, 북한은 한반도 전쟁을 위한 기술을 얻는다.
실제로 러시아의 도움으로 성능이 높아진 KN-23이 대량생산되면 휴전선 이남 지역에 대한 위협 수준이 더 높아진다.
러시아에 포탄과 미사일을 공급한 북한은 개선된 생산기술과 러시아에서 얻은 실전데이터 등을 토대로 양질의 포탄과 미사일을 제작해 새롭게 비축할 수 있게 됐다. 또한 북한군이 필요로 하는 호위함이나 전술미사일 발사차량 등 재래식 전력을 강화할 기반도 다지는 효과가 있다.

◆러시아를 움직인 포탄
러시아는 북한으로부터 막대한 양의 포탄을 받은 대가로 지대공미사일(SAM) 등 첨단 방공장비를 제공할 것으로 알려졌다.
새뮤얼 퍼파로 미국 인도태평양 사령관은 지난 10일 미 상원 군사위원회 청문회에서 북한 무기의 러시아 공급과 관련해 새로운 정보를 입수했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러시아가 줄 방공체계는 확인되지 않았으나, 최상급보다 한 단계 낮은 급(second-tier)이라도 북한의 공중 방어 능력을 키울 것이라고 설명했다.
북한은 노동당 7차 대회 직후부터 지대공미사일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다. 외형적으론 러시아산 S-300이나 판치르(Pantsir)-S1과 유사한 것들이 있다.
지난 3월 20일 신형 지대공미사일 시험발사에 성공했다고 주장하며 양산에 들어갈 것이라고 밝혔고, 지난해 2월과 7월에도 지대공미사일 시험발사를 실시한 바 있다.

북한의 개발 프로그램에 러시아 기술이 추가되면 북한 방공망 탐지거리와 생존성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다.
러시아가 제공할 수 있는 방공체계로는 S-300이 있다. 중장거리 방공 능력을 제공하는 S-300이 북한에 반입되면 기존의 구식 방공체계를 대체하거나 보완할 수 있다. 특히 고고도 요격능력을 강화해 제한적이나마 다층 방어망을 구성할 수 있다.
무인기와 F-35 스텔스기 침투에 대비하고자 토르(Tor)-M2나 판치르(Pantsir)-S1이 제공될 가능성도 있다.
토르(Tor)-M2는 단거리 지대공 미사일 체계로 고속 기동성과 전자전 대응 능력을 갖췄다. 무인기 및 순항미사일 대응 능력을 높여 북한의 전술적 방공 능력을 강화할 수 있다.
판치르(Pantsir)-S1은 자주식 단거리 방공체계다. 30㎜ 기관포와 지대공 미사일을 결합해 저고도 항공기, 무인기, 순항미사일 등을 요격한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무인기 요격이 매우 중요하다는 점을 인식한 북한으로선 현실적인 옵션이 될 수 있다.

첨단 레이더를 확보할 가능성도 있다. 적기를 먼 거리에서 정확하게 탐지·추적하는 것은 방공 전투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다. 러시아산 레이더가 제공될 가능성은 충분하다.
이는 한미 연합군의 공중 우위에 대한 대응 능력을 강화하고, 북한의 전략적 자율성을 높이는 데 기여할 수 있다.
지난 2014년부터 러시아군에 배치된 네보(Nebo)-M 장거리 탐지 레이더는 최대 600㎞ 떨어진 공중 표적을 탐지한다. 스텔스기와 탄도미사일 탐지가 가능하다.
2010년대 초반부터 러시아군에 배치된 감마(Gamma)-DE 중고도 탐지용 레이더는 스텔스기 탐지에 효과적이다. 최대 200개 표적을 추적할 수 있으며, 기동성이 뛰어나다.
북한은 지금 러시아의 전쟁에 재래식 무기를 보내고, 기술과 데이터를 얻어 미래의 전쟁을 준비하고 있다. 러시아는 전장을 제공하고, 북한은 그 전장을 실험실로 쓴다.
이 모든 과정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동북아 안보에 새로운 파장을 만드는 시작점인 이유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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