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산책] 자유무역 시대의 종언

2025-04-20

인류 역사상 제한 없는 자유무역 시대가 두번 있었다. 하나는 영국을 중심으로 형성된 고전적 세계시장으로 1840∼1875년에 걸쳐 존재했다. 이 시기는 크게 볼 때 세계의 선진지역과 개발도상국 모두가 선택의 여지없이 영국의 고객으로 있던 시기였다. 세계 최초의 산업혁명으로 영국이 세계 공장의 지위를 누리면서 무엇을 교역하든 영국은 손해 볼 게 없던 시절이었다.

그러다가 독일과 미국이 영국을 추월하면서 자유무역 정책은 후퇴했다. 이후 보호무역의 대두와 함께 두차례의 큰 전쟁을 겪었고, 2차 대전 이후 자유무역을 복원하려는 노력이 오랫동안 힘들게 추진됐다. 그러한 노력의 정점에서 냉전체제 와해의 전후 시기에 등장한 신자유주의가 또 한번의 제한 없는 자유무역 시대를 열었다. 새롭게 등장한 정보산업에서 미국의 압도적인 우위가 그 배경이었다.

이러한 자유무역은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첫 임기를 시작했던 2017년 이전부터 흔들리고 있었는데,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가속화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많은 나라와의 거래에서 미국이 손해를 보고 있다고 불평을 하며 그 대가를 받아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지난해 다시 한번 대통령에 당선된 트럼프가 지금 세계를 상대로 벌이고 있는 관세전쟁은 여기서 비롯됐다.

얼마 전 미국은 세계 대부분의 나라에 대해 기본관세 10%를 매겼다. 주요 국가별 상호관세는 ▲한국 25% ▲중국 125% ▲유럽연합(EU) 20% ▲베트남 46% ▲대만 32% ▲일본 24% 등이다. 한국과 같이 미국에서 큰 무역흑자를 누리는 국가들에 대해서는 90일의 유예가 주어지긴 했지만 높은 상호관세를 부과했다. 대미 흑자를 누리는 국가들은 비관세장벽 등으로 무역에서 반칙을 쓰기 때문에 이를 상쇄하기 위해 관세를 매겨야 한다는 논리다.

트럼프식 관세가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는 예단하기 어렵지만 과거와 같은 자유무역 시대로의 회귀는 기대하기 어려워 보인다. 그리고 미국이 주도했던 자유무역 시대가 끝나는 것은 미국 경제력이 압도적 우위를 상실한 것과 깊은 연관이 있다. 이것은 역설적이지만 미국이 제공한 지나칠 만큼의 관대했던 자유무역 환경 속에서 고도의 성장을 이룬 중국의 부상이 근저에 자리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파괴적인 관세전쟁은 세계의 어떤 나라에도 이익이 되지 않는 것은 명확하다. 특히 보호관세가 미국의 무역적자를 개선하고 미국에 일자리를 늘려줄 것이라는 주장은 경제학자들의 동의를 얻는 데 실패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트럼프 대통령이 세계를 향해 던진 관세전쟁은 세계 경제질서의 재편을 촉진하는 강력한 계기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상호관세 부과의 집중 타깃이 된 나라들은 EU와 동아시아 국가들이다. 이들 지역은 미국 다음으로 선진화된 곳이다. 미국이 시장을 제공하는 데 인색할수록 세계는 상호시장을 위한 모색을 강화하지 않을 수 없다. 아시아와 EU가 큰 틀의 대화를 시작하고, 동북아에서 한·중·일이 그동안 중단했던 자유무역협정(FTA)을 다시 이야기하는 것이 그러한 신호다.

미국과 중국 양쪽을 주력 수출시장으로 갖고 있는 한국은 전세계 그 어떤 나라들보다도 힘든 고통의 시간을 보낼 것으로 보인다. 미국과의 협상을 통해 관세압박을 풀어가야 할 뿐만 아니라 중국시장의 침체와 과잉생산이 우리에게 미칠 파급에도 대응해야 하기 때문이다. 냉철한 지혜와 용기로 격변의 시기를 잘 헤쳐 나가야 할 때다.

김대래 신라대 글로벌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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