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장호의 사자성어와 만인보] 허심구교(虛心求敎)와 구양수(歐陽脩)

2024-09-23

취옹정은 도연정(陶然亭), 애만정(愛晩亭), 호심정(湖心亭)과 함께 중국의 이름난 정자 가운데 하나다. 구양수(歐陽脩, 1007-1072)가 40세에 지은 서정적인 산문 ‘취옹정기(醉翁亭記)’는 중국 문학사의 영롱한 한 페이지다. 이에 대한 후학(後學) 소동파의 댓글도 꽤 흥미롭다.

‘마신 술 많지도 않았는데, 어찌 그리 취할 수 있었소? 고령도 아닌데, 또 어찌 자신을 늙은이라 칭했소?’ 소동파는 스승 구양수에게 간접적으로 이렇게 묻고 있다. 취옹정에 오르면 소동파의 이 뛰어난 글귀를 볼 수 있다. 읽는 이로 하여금 문득 사색에 빠지게 하는 문구다.

이번 사자성어는 허심구교(虛心求敎)다. 첫 두 글자 ‘허심’은 ‘마음을 비우다’라는 뜻이다. 뒤의 두 글자 ‘구교’는 ‘가르침을 구하다’라는 뜻이다. 이 둘이 합쳐지면 ‘마음을 비우고 가르침을 구하다’라는 의미가 성립한다. 구양수가 ‘취옹정기’를 쓰던 무렵의 한 일화에서 유래했다.

구양수의 어린 시절은 유복하지 못했다. 쓰촨(四川) 성의 한 지방관을 지내던 부친을 4세에 여의었다. 구양수가 출생했을 때 부친은 이미 고령이었기 때문이다. 학동 시절 매우 가난하여 정규 교육을 받지 못하고 독학했다. 총명했던 그는 어려서부터 한유(韓愈)의 문장에서 매력을 발견하고 깊이 빠져들었다. 17세에 처음으로 과거를 보았으나 관운(官韻)에 부합하지 않은 답안지를 제출해 탈락했다.

훗날 장인이 되는 서언(胥偃)의 문하로 들어간 구양수는 더욱 학습에 매진하여 23세에 진사에 합격한다. 하지만 중앙 정부 관료이던 29세에 개혁파 범중엄(范仲淹)을 나서서 옹호하다가 지방관으로 좌천됐다. 범중엄이 다시 중용되자 그는 긴 좌천 시절을 마감하고 중앙 정부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이후 비록 정적의 비방으로 한 차례 더 지방관으로 좌천되는 아픔을 겪지만, 중앙 정부로 복귀했고 인종(仁宗)의 두터운 신임을 받으며 순탄하게 고위 관료로 승진했다. 과거를 감독하는 직책을 맡았을 땐 젊은 소동파를 발굴했다. 부재상(副宰相) 시절엔 개혁가 왕안석(王安石)을 기용했다.

문장에 있어, 구양수는 한유와 함께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의 일원이다. 그는 당나라의 한유가 시작한 ‘고문(古文) 운동’을 적극적으로 계승했다. 후학인 소동파, 증공(曾鞏), 왕안석 등 걸출한 문장가들도 ‘백락(伯樂)’의 안목을 가진 구양수의 도움으로 세상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평소 구양수는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많이 보고, 많이 쓰고, 많이 생각하는’ 3다(三多)에 힘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구양수가 안후이성(安徽省) 저주(滁州)의 태수로 근무하던 시절의 일이다. 하루는 평소 친하게 왕래하던 낭야사(琅瑘寺)의 한 스님이 정자를 지었다고 그를 초청했다. 구양수는 정자의 이름을 ‘취옹정’으로 지어주고는, 귀가하여 그 유명한 ‘취옹정기’라는 산문을 쓰기 시작했다. ‘취옹’은 구양수 자신이 지은 호(號) 가운데 하나다.

글을 완성한 후, 그는 바로 성문에 붙이지 않고 사람들의 조언을 청취하는 ‘허심구교’의 시간을 갖는다. ‘낭야산(琅瑘山) 남문에 올라가서 주위 전경을 한번 둘러보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이때 한 나무꾼이 나타나 구양수에게 말했다. 이 말을 듣고 가슴이 철렁한 구양수가 직접 낭야산 남문에 올라 사방을 둘러보니 과연 자신의 표현에 문제가 있었다. 그는 상상하여 장황하게 묘사한 도입부 구절을 ‘환저개산야(環滁皆山也)’라는 간략한 5글자로 수정했다. ‘저주성을 빙 둘러 산들이 에워싸고 있구나’라는 의미다. 그가 강조한 ‘3다’ 가운데 ‘많이 보고, 많이 생각하라’는 부분의 의미를 조금 확장된 각도에서 음미하게 해주는 에피소드이기도 하다.

자신의 마음을 비우고 타인에게 가르침을 구하는 것은 누구에게도 쉬운 일이 아니다. 아마도 지위가 높거나 학식이 깊을수록 누군가와 ‘더불어 많이 생각하는’ 이 일이 더 계면쩍고 힘들게 느껴질 것이다. 조언해주는 이의 사회적 지위가 낮거나 학식이 부족하다고 판단되는 상황이라면 귀 기울이기가 더 어려울 것이다. ‘허심구교’ 이 ‘꽉 찬’ 4글자에서 구양수의 비범함을 새삼 실감하는 이유다.

홍장호 ㈜황씨홍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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