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초 대통령께서 공개적으로 발표하기 훨씬 이전부터 추진해오던 정책입니다.”
밸류업과 대왕고래 프로젝트 관계자들은 이구동성으로 이렇게 말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기 위한 밸류업(기업가치 제고계획) 프로그램이나 동해 시추 사업인 대왕고래 프로젝트가 윤석열 대통령이 ‘숟가락을 얹기’ 수년 전부터 당국 등이 추진해왔다는 얘기였다.
과정이야 어찌 됐든 취지는 좋았다. 이제 국장은 개미가 외면하는 증시가 돼버렸다. 이를 되돌리기 위한 밸류업은 만시지탄이었다. 특히 부동산 가격 폭등으로 계층 이동 사다리가 끊긴 청년들을 위한 자산 증식 통로를 제공한다는 의미도 있다.
에너지 자립은 어떤가.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에서 석유 시추는 가슴을 뜨겁게 만든다. 더구나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에너지 대외 의존도가 높아져 우리 경제는 국제 유가에 더 취약해진 상황이었다.
하지만 결과론적으로 윤 대통령이 민생과 직결된 국가적 프로젝트에 진심이었는지 의문이다. 그는 스스로 내건 국정과제를 계엄령 선포로 모두 무위로 돌려 버렸다.
우리 경제는 도널드 트럼프 2기 출범을 앞두고 미국의 고관세 정책, 반도체 경쟁력 약화, 내수 둔화 등으로 어려움을 겪어왔다. 계엄령이 없었다 해도 난제 극복이 쉽지 않았다. 하지만 윤 대통령의 시대착오적 계엄령으로 그가 그토록 원했던 자본시장 육성, 에너지 자립은 직격탄을 맞게 됐다.
역대 대통령은 민생 문제를 가장 중요한 현안에 두고 정치를 했다.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자신이 속한 진영의 반대를 무릅쓰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추진했고, 이명박 전 대통령도 숱한 반발을 딛고 4대강 사업을 해냈다. 그 과정에서 설득, 협치, 때로는 정공법 등 리더십을 발휘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윤 대통령은 계엄령으로 자신이 신줏단지처럼 떠받들던 정책을 스스로 헌신짝처럼 버린 셈이 됐다. 민생을 진정 엄중하게 생각했다면 계엄 카드는 절대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밸류업도, 에너지 자립도 퇴행의 운명을 맞을까 두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