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 축구인들을 만나면 걱정스런 이야기를 많이 한다.
“국가대표팀이 예상보다 부진하다.”
“국내프로축구에서도 새로운 슈퍼스타가 없고 인기를 주도하는 빅클럽들도 주춤하고 있다.”
“형편없는 잔디 때문에 플레이 수준이 떨어졌고 부상자도 많다.”
“손흥민, 이강인, 김민재, 황희찬 등 간판 해외파들 활약이 미비하다.”
“심판 판정에 대한 불만, 들쭉날쭉한 기준도 한몫했다.”
“축구계를 향한 날선 비판 여론 때문에 축구계는 춘래불사춘이다.”
프로야구에는 관중이 폭발하는 반면, 프로축구 입장객은 정체됐거나 다소 감소했다. 위의 전언들처럼 축구 인기가 떨어진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작용하고 있다. 누구 하나만의 책임이 아니고 누구 하나만의 힘으로 해결될 것도 아니다. 냉정하게 말해 하락세를 이겨낼 뾰족한 묘수도 당장은 없는 것 같다.

현재 한국축구에 사실상 유일한 희망을 던지는 것은 무엇일까. 아마 적잖은 팬들이 광주FC를 뽑을 것이다.
광주는 K리그 1부 구단 중 연봉이 적은 구단 중 하나다. 클럽 규모, 인프라, 관중 숫자 등에서는 스몰 클럽임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런데 그런 광주의 영향력은 점점 커지고 있다. 광주는 이번 시즌 국내리그에서 대전에 이어 2위다. 그보다 더 놀라운 것은 한국구단 중 유일하게 아시아챔피언스리그 8강에 올랐다는 것이다. 울산 HD, 포항 스틸러스는 중도 탈락했다.
광주는 한국 시각 오는 26일 오전 1시 30분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사우디 강호 알 힐랄과 8강전 단판승부를 벌인다. 트랜스퍼마르크트 분석에 따르면, 알 힐랄 시장가는 1억8000만 유로, 광주는 860만 유로다. 광주가 21분의 1수준이다. 연봉 총액으로 따지면 광주는 30분의 1 정도로 더 떨어진다. 이번 시즌 사우디 프로 리그 2위를 달리는 알 힐랄은 지난 2월 브라질 수퍼스타 네이마르와 결별하긴 했지만, 맨체스터 시티 전성기를 이끈 포르투갈 국가대표 주앙 칸셀루(31)를 비롯해 후벵 네베스(28·포르투갈), 알렉산다르 미트로비치(31·세르비아), 칼리두 쿨리발리(34·세네갈) 등 유럽 5대 리그 출신 선수들이 뛴다.
객관적인 전력 열세, 원정의 부담감 등으로 인해 광주가 승리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기는 어렵다. 글로벌 축구 전문 매체들은 알 힐랄 승리 확률 75%, 무승부 확률 15%, 광주 승리 확률 10% 정도로 본다. 베팅업체들도 알 힐랄 승리에 1.3배, 무승부에 5배, 광주 승리에 10배 정도 배당률을 책정했다. 배당률이 높다는 것은 그만큼 실현 가능성이 낮다는 의미다.
그런데 축구는 연봉이 높다고, 스타들이 많다고 다 이기는 게 결코 아니다. 약체가 강하고 끈질질기게 강호를 쉼없이 괴롭힌다면 승부는 벌일만하다. 한국이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보여준 플레이가 그랬고 한국이 포르투갈, 스페인, 이탈리아를 꺾고 4강까지 간 힘이었다. 광주 이정효 감독은 출국에 앞서 “우승 상금 1000만달러(약 142억원)로 클럽하우스를 새로 짓고 웨이트 트레이닝 시설도 바꾸고 싶다”고 말했다. 상금은 대부분 서남아시아(중동) 국가 기업들이 아시아축구연맹에 낸 현찬금이다.
지금까지도 아시아 무대에서 광주는 용맹했고 거침이 없었다. 박수받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다. 그래도 광주가 몇 번 더 승전고를 울리기를 바란다. 그게 침체된 한국축구에도 큰 희망과 용기, 자신감을 불어넣는, 반등하는 힘이 될 것이다. 축구에서 승부를 가를 힘을 가진 존재는 관중도, 심판도, 날씨도, 시차도 아닌 그라운드에서 뛰는 11명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