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된다는데 은행은 안된대요"…'대출 성지' 찾는 시민들

2025-05-20

오는 6월 결혼을 앞두고 청약에 당첨된 이모(29)씨는 디딤돌 대출을 받으려다 곤경에 처했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에선 대출에 문제가 없다는 ‘적격’ 판정을 받았지만, 10곳이 넘는 은행에서 모두 거절당했기 때문이다. 이씨는 “부부가 이직을 준비 중이라 당장 소득이 없다는 점을 충분히 설명하고 적합 판정을 받았다”며 “정부가 된다고 한 대출을 왜 은행에서 안 된다고 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디딤돌·버팀목 등 정책대출 심사에서 ‘적격’ 판정을 받고도 은행에서 대출을 받지 못하는 사례가 늘며 혼란을 겪는 이들이 늘고 있다. 국회 교통위원회 소속 권영진 국민의힘 의원이 HUG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정책대출 심사에서 ‘적격’ 판정을 받은 41만 298건 가운데 전체의 약 30%에 해당하는 12만 7218건이 실행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대출을 거절당한 사유는 다양했다. HUG 홈페이지에 접수된 민원을 살펴보면 “제휴 은행에 대출을 문의했는데 주거래은행이 아니라며 대출을 거절 당했다”거나 “한 달 전 상담에서 된다고 해 진행했는데, 갑자기 한도가 소진되었다며 대출해주지 않았다”는 등의 내용이었다. 심지어는 “은행원이 이 대출을 해주면 은행 손해가 막심해 접수할 경우 윗분들에게 혼난다며 거절한 적도 있다”는 주장도 있었다.

이런 현상이 반복되자 디딤돌·버팀목 대출을 잘 해주는 은행 지점을 ‘대출 성지’라고 부르며 SNS·유튜브 등에서 공유하는 현상도 벌어졌다. 대출 성지로 지목된 한 시중은행 직원 담당자 A씨는 “원래 실행이 가능한 상품이고 기준에 맞춰 해줬을 뿐인데 그렇게 알려져 당황스럽다”며 “일이 많아져 부담스러운 측면도 있다”고 했다.

은행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정책대출이 일반 상품에 비해 이자율이 낮아 상품을 많이 팔아도 이득을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정부는 정책 대출을 취급하는 은행에 정책 대출 금리와 시중 금리와의 차이를 보전(이차 보전)해준다. 하지만 은행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정책 대출을 취급하는 시중은행 관계자 B씨는 “이차보전은 해주지만, 보전 상한선이 낮아 이윤이 많이 남지 않는 건 사실”이라며 “금융 당국에서 기금 대출도 가계 대출로 책정해, 이윤이 더 남는 자체 대출을 취급 못하는 문제도 있다”고 덧붙였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HUG 적격심사는 최소한의 자격을 보는 것이라 은행이 요건을 보고 거절할 수 있다”며 “일부 은행에서 이차보전 문제를 지적하지만 이는 시중은행 금리가 높았던 2022~2023년의 문제고 지금은 모두 해소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대출 한도 소진 탓에 자체대출을 취급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일부 불만이 있는 것 역시 알고 있다”면서도 “기금 대출 취급에 따른 위탁 수수료를 지급하고 있고, 신규 고객 모집 효과도 있으므로 이득이 없다고 볼 순 없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정부 역할이 확대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합수 건국대 부동산대학원 겸임교수는 “정책 대출은 본질이 복지인 만큼 공적 성격을 강화해야 한다”며 “은행에서 정책대출 때문에 일반 대출을 취급하기 어렵다면 한도에서 정책 대출을 제외하거나, 이차보전을 확대하는 등 은행이 정책 대출을 적극적으로 취급할 유인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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