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5월 나치 독일의 무조건 항복으로 유럽에서의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났다. 3대 연합국인 미국·영국·소련(현 러시아)은 사전에 합의한 대로 독일을 분할 점령했다. 2차대전 초반 독일에 패배한 프랑스도 막판에 전승국 대열에 합류하며 점령에 동참했다. 전체 독일 영토와는 별도로 수도 베를린 역시 4개국이 나눠 점령했다. 훗날 미국·영국·프랑스 점령 구역이 합쳐져 서독 그리고 서베를린이 되었다. 소련 점령 구역은 동독 그리고 동베를린으로 변했다.
분단 초기만 해도 동베를린 시민이 서베를린으로 이동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다 보니 공산주의 체제와 소련의 통제에 환멸을 느낀 동독 주민들이 동베를린을 거쳐 서베를린, 결국은 서독으로 탈출하는 일이 빈번히 발생했다. 가뜩이나 서독보다 영토가 좁고 인구도 적었던 동독 정부는 강한 위기감을 느꼈다. 급기야 동독은 1961년 8월 동베를린과 서베를린 사이에 장벽을 쌓았다. 수십년간 동서 냉전의 상징으로 통했던 베를린 장벽의 등장이었다.
동독 정부는 베를린 장벽 옆에 무장한 경비병을 배치했다. 장벽을 넘어 서베를린으로 탈출하려는 이들은 경비병이 쏜 총에 맞아 죽을 각오를 해야 했다. 실제로 냉전 기간 장벽을 넘으려다가 사살된 사람만 최대 200명으로 추산된다. 1987년 서베를린을 방문한 로널드 레이건 당시 미국 대통령은 브란덴부르크 문(門)과 베를린 장벽 앞에서 행한 연설을 통해 당시 소련 공산당 서기장 미하일 고르바초프에게 “미스터(Mr) 고르바초프, 이 문을 여시오. 이 장벽을 부수시오”라고 외쳤다.
지금으로부터 꼭 35년 전인 1989년 11월9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 자유와 민주주의를 향한 동독 주민의 열망이 굳게 닫혀 있던 장벽의 문을 활짝 연 것이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장벽 붕괴 35주년을 맞아 발표한 메시지에서 “1989년 가을 자유의 승리는 전체 유럽의 승리였다”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우리는 어떤가. “남북은 적대적인 두 국가”, “통일을 하지 않겠다”라며 한반도의 긴장 수위를 계속 고조시키는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행태에 한숨이 절로 날 뿐이다.
김태훈 논설위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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